지난 3일 경기 남양주시 호평중학교 민주시민교육담당 황윤신 교사가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워크북을 지도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한겨레>가 혁신학교 도입 10년을 맞이해 4월부터 교육공동체 현장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가 혁신학교 교육 과정의 핵심이다. 자기 주도적 역량을 가진 학생을 키워내는 데 목표가 있다.
혁신학교 시리즈 네 번째 주제로 ‘민주시민 교육’을 꼽아봤다. 경기도교육청이 2014년 시작해 2017년 연구·개발을 끝낸 시민교육 교과서는 2019년 현재 전국 11개 시·도 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있다. 지난 3일 혁신학교 10년 차를 맞이한 경기 남양주시 호평중학교의 민주시민 교육 수업현장을 찾았다.
지난 3일 경기 남양주시 호평중학교 민주시민교육담당 황윤신 교사가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워크북을 지도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 “소통의 걸림돌은 무엇일까?”
기자가 도착한 때는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북적이는 복도를 지나 호평중 2학년 2반 교실에 들어섰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이 학교 민주시민 교육 담당 황윤신 교사가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이하 민주시민 교과서), 활동지 등 자료와 함께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책상 위에 민주시민 교과서와 관련 활동지를 정리한 개인 파일을 하나씩 놓아뒀다.
“화면을 한번 볼까요? 한 노인이 어린아이와 눈을 맞추며 귀 기울여 듣고 있지요.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라는 마음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데 일상에서 우리는 종종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경험을 합니다.”
황 교사는 민주시민 교과서 14쪽에 나온 내용을 사진 자료를 통해 설명하며 수업을 열었다. ‘민주시민에게 필요한 소통 능력, 경청’ ‘공동체를 위한 약속’ 등에 대해 배우는 단원이었다. 공감 능력, 적극적 청취,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때 적절한 태도 등을 실습해보는 미션이 주어졌다. 수업 목표는 각 모둠에서 아이들이 소통 촉진자가 되어보는 것이었다.
경기 남양주시 호평중학교 2학년 교실에 붙어 있는 급훈. 김지윤 기자
4∼5명이 한 모둠이 되어 활동지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민주시민 교과서 14~15쪽 ‘생각 키우기’ 단원을 펼친 뒤 아이들은 일곱 가지 사례별로 토의하기 시작했다.
“보기 1번 ‘야, 너 옷이 그게 뭐냐?’를 봐. 이 말을 직접 들으면 어떨 것 같아? 이 문장의 어떤 점이 의사소통의 걸림돌이 되는 걸까?” 임준섭 학생의 말에 김수빈 학생이 답했다. “옷의 개성, 취향이나 나 자신이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겠지. 그리고 대화를 시작할 때 ‘야’라고 퉁명스레 말하는 것보다는 이름을 불러주는 게 의사소통에서는 중요한 것 같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평소 문자로만 주고받는 대화 방식에 익숙한 10대들에게, 얼굴을 마주하며 상대방 표정과 마음을 살펴보는 게 더 필요해졌다고 황 교사는 설명했다.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이야말로 민주시민이 가져야 할 소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민주시민 교과서에는 이렇게 아이들이 자신의 실생활을 돌아보며 상호작용의 중요성, 다양한 대화 방식 등을 고민해볼 수 있는 단원들이 있다. ‘교복 입은 시민’을 훗날 우리 공동체의 ‘동료 시민’으로 키워내는 수업인 것이다.
경기 군포시 산본고등학교 교사들의 ‘전교사 교육과정 재구성’ 회의 모습. 혁신학교 교사들은 민주시민교육에 방점을 찍고 교과융합 등 교육과정 재구성에 힘쓴다. 김현옥 교사 제공
■ 전국에서 처음 만든 민주시민 교과서
호평중 민주시민 수업 사례에서 봤듯이 민주시민 교과서는 암기 중심으로 구성돼 있지 않다. 그럴 수도 없다. 학생들이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 걸맞은 공동체의 한 시민으로서 생각하고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인권, 노동, 평등, 다양성, 평화, 연대, 환경, 미디어, 선거, 참여 등의 주제를 모두 다루기 때문이다. 생활밀착형 수업인 만큼 주제를 이해하는 방식도 자료를 해석한 뒤 의견 말하기, 글쓰기, 체험·실습하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해당 교과서는 민주시민 교육을 고민해온 경기도교육청을 중심으로 교실 현장의 베테랑 교사들이 연구·집필진으로 참여해 완성했다. 올해 서울을 비롯한 전국 11개 시·도에서 경기도교육청이 승인한 시민교육 교과서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2015년 서울시교육청과 업무협약을 맺어 사용 승인한 뒤 광주, 강원, 충남, 전북, 세종, 충북, 전남, 경남, 인천으로 이어졌고, 올해는 울산광역시까지 시민교육 교과서 활용 지역이 확대됐다.
경기도교육청 인정 도서인 시민교육 교과서는 3종 10권이다.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4권, <평화 시대를 여는 통일시민> 3권, <지구촌과 함께하는 세계시민> 3권이다. 세 종류의 교과서는 초·중·고등학교용으로 개발했는데,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의 경우 초등 3~4학년용과 5~6학년용으로 나뉘어 있다.
이 교과서들은 학교와 교사가 원하는 경우, 기존 사회과 교육과정의 보조교재로 활용하거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 선택교과로 편성해 활용할 수 있다. 김광옥 경기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장은 “민주시민 교과서는 우리 시대의 사회적 쟁점을 토론하면서 시민성을 키울 수 있는 교재다. 시민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마련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과서를 보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체계적이고 다양한 수업 사례, 연수 등을 통해 민주시민 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도 교육청 차원에서 실천 과정도 함께 공유해 나갈 예정이다.
경기 군포시 산본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배우는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 학년별 워크북은 산본고에서 직접 만들었다. 김현옥 교사 제공
■ 사회 나가기 전 꼭 필요한 수업
민주시민 교과서는 교실 수업 곳곳에서 활용한다. 국어와 사회, 수학, 미술 등 다양한 과목과 융합 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나 현상을 두고 하나의 결론만을 내리지 않는 게 특징이다. 그게 민주시민 교육의 핵심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그 문제에 대한 논쟁 방법이나 관점을 세우는 방식 등을 배워간다.
교과서 개념을 외운 뒤 다섯 가지 보기 가운데 정해진 답을 고르고 70점, 90점 줄 세우는 게 옛날 방식이라면, 민주시민 교과서는 ‘어떤 사회든 논쟁과 토론, 협력과 합의를 통해 발전한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가르친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고등학교 김현옥 교육과정혁신부장은 “민주시민 수업 시간에 교사는 아이들에게 관련 배경 지식이나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입장 등 최대한 많은 정보를 준다. 정답이 없는 문제일수록 토론 시간은 뜨거워진다”며 “이런 교육을 통해 학생들 자신이 무엇을 주장하고 설명할 수 있는지,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지 등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열아홉 살 이후 학교 밖 세상을, 교실 안에서 직면하고 고민해보는 것이다.
5년 차 혁신학교인 산본고등학교는 민주시민 교과서를 활용해 주제별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한다. 고교용 민주시민 교과서 132~135쪽 ‘노동과 가치’를 배우는 단원에서는 전태일 열사 관련 영상이나 최저임금을 다룬 뉴스, 기사, 책 등을 통해 좀 더 현실적으로 ‘노동하는 시민’에 대해 배운다. 이를테면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서 펴낸 ‘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 속 몇 문장을 인용해 10대 아르바이트생의 노동 환경을 살펴보고 대안을 알아보는 식이다.
‘한 시간 일하면 햄버거를 몇 개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올해 최저임금을 다룬 기사를 읽은 뒤 직접 계산해본다. 빅맥 지수(미국 맥도널드 햄버거 ‘빅맥’ 판매 가격을 기준으로 각국의 상대적 물가 수준과 통화가치를 비교하는 지수)를 통해 노동과 경제를 공부하고, 각 나라의 노동 시간이 얼마나 긴지 등을 공부한다. 세계인권선언 제23조를 인용하며 ‘동일 노동, 동일 임금’에 대한 의미도 톺아본다. 모둠별 프로젝트로 청소년 노동 인권을 지키기 위한 홍보문 만들기 또는 ○× 퀴즈 대회 등을 연다.
김현옥 교사는 고교 졸업 뒤 대학이나 직장 등 ‘실제 세상’에 나갈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게 민주시민 교육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스무 살 성인이 된 뒤 당장 자취방 계약하는 법, 근로계약서 쓰는 법 등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김 교사는 “초중고 시기에 민주시민 교과서를 통해 아이들이 권리 주체로 서보는 연습이 필요하다”며 “노동뿐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 다문화 이해도 이 분과에서 공들여 다룬다”고 덧붙였다. 공교육 현장에서 민주시민 교육을 충분히 해야 아이들을 한 명의 ‘동료 시민’으로 키워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지난 3일 경기 남양주시 호평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개발한 이 교과서는 전국 11개 시·도 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있다. 김지윤 기자
지난 3일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교과서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개발한 이 교과서는 전국 11개 시·도 학생들이 함께 배우고 있다.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