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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독서 문화 정착? 정말로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등록 2019-04-29 19:43수정 2019-04-29 19:46

지난 3일 광양공공도서관에서 ’학생·교사 1년 동안 함께 읽기’ 워크숍을 했다. 황왕용 교사 제공
지난 3일 광양공공도서관에서 ’학생·교사 1년 동안 함께 읽기’ 워크숍을 했다. 황왕용 교사 제공
‘학교에 독서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표현은 어쩌면 흔한 말입니다. 진부한 말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곱씹어볼수록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3월 교직원 회의 시간에 벌떡 일어나서 여러 선생님 앞에서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교직원 회의 시간에 다소 특이한 행동이었지요. 게임은 <독서교육, 어떻게 할까>(김은하 지음)라는 책 25쪽에 나온 내용을 변형해서 진행했습니다. 세자리 숫자 10개를 불러드리고 외우는 분에게 선물을 드리는 일이었지요. 368, 747, 848, 543, 641, 343, 973, 274, 378, 693.

많은 선생님께서 실소를 터뜨리더니 포기했습니다. 곧바로 말을 이었습니다. “다섯번째 숫자를 부를 때 선생님의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이 ‘독서’라는 행위를 하는 학생의 마음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독서뿐만은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선생님들, 주변 다섯분과 함께 팀이 되어 외워보겠습니다. 팀을 만들고 작전을 짜야겠지요?”

선생님들은 어색하게 팀을 만들고, 역할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숫자를 다시 한번 불러드렸습니다. 개인전으로 할 때와는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고, 정답에 도전하는 팀도 생겼습니다. 바로 말을 이었습니다. “어려운 과제나 독서를 할 때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에서 그 방법을 계획해봤는데요.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학생이 2~4명의 팀을 구성하면 선생님께서 그 학생들과 같은 팀이 되신 뒤 1년 동안 ‘함께 읽기’를 하시면 됩니다. 방법은 어렵지 않고, 이번 기회에 학생들과 책 이야기도 나누시고, 인생 이야기도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신청은 내일까지 메신저로 해주시면 됩니다.”

학생들에게도 함께 읽기를 홍보했고, 44개 팀(160명)이 신청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도서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마음으로 이해해주셨는지 40명이 조금 넘는 정원 가운데 34명이나 신청해주셨습니다. 선생님과 학생 팀 짝을 짓다 보니 아쉽게도 10개 팀은 함께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 질문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학생들끼리 하면 44개 팀 모두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선생님과 함께해야 하나?” 저도 고민한 지점입니다. 그러나 ‘더불어 책 읽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선생님이 함께하셔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한가지 있습니다.

예전에 한 학생이 시 교육지원청에서 운영하는 독후감 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읽고 쓴 독후감이었습니다. 독후감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그 학생과 나눈 이야기에서 다소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주인공처럼 장애인이 아니어서 다행이고… 저는 저렇게 못 살아요. 솔직히 인간적으로는 살아야지요.” 저는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할 여유를 주어야 했습니다. “네가 건강하게 태어나서 자라는 건 참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이야. 그런데 한가지만 물어볼게. 장애인으로 살면 인간적으로 살지 못하는 건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 학생은 며칠 뒤 생각이 짧았다면서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친구들끼리 생각을 보완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지만,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거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생각을 전개하는 것은 교사와 함께할 때 극대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사와 함께하는 책 읽기가 필요했습니다. 교사와 함께하면 책 읽는 학교 문화 정착도 쉬우리라 생각했습니다.

지난 3일 교사와 학생을 초대해서 워크숍을 했습니다. 1년 동안 어떤 방법으로 함께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프로그램의 진행 목적, 팀원 간 친해지는 시간, 1년 동안 어떤 책을 읽을지 팀 토의 등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5월부터 팀별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겠지요. 11월이 되면 그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장을 마련해보려고 합니다. 독서를 통해 학교공동체에 다양한 에피소드가 쌓이면, 독서 문화 정착이 마냥 추상적인 말만은 아니겠지요?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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