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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도서관 경기장’에서 책 월드컵을 해보자!

등록 2019-04-15 19:44수정 2019-04-15 20:00

지난 1일 학생들이 ‘책 월드컵’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황왕용 교사 제공
지난 1일 학생들이 ‘책 월드컵’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황왕용 교사 제공
학교도서관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저에게 가끔 질문합니다. 여전히 사서교사가 무엇인지, 왜 교사여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계신 분이 많습니다.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을 받을 때, 의문부호를 가진 분을 만날 때면 저에게 객관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합니다. 화두로 던진 문장은 이럴 때 저에게 던지는 질문이지요. 가끔 이런 질문을 통해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더 고민해보기도 합니다.

이번 ‘책 월드컵’ 수업도 위와 같은 사연으로 계획되었지요. 학생들에게 더 다양한 책을 쉽게, 쉬운 방법으로 깊게, 깊은 것은 즐겁게 하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이자 제가 운영하는 학교도서관이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수업은 간단합니다. 두 시간이 한 세트인 수업으로 일주일에 한 차시, 두 주 동안 운영합니다. 첫 시간은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책 두 권을 빌리게 됩니다. 책 선정할 때 참고하면 좋은 점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자유롭게 책을 빌리고 읽는 시간을 줍니다. 책은 두 권을 다 읽을 필요 없이 한 권만 읽으면 됩니다. 책을 두 권 빌리는 이유는 책 선정 실수에 대한 보완책입니다. 선정한 책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덮고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알려주고 두 권 중 한 권만 읽어 오도록 합니다.

두 번째 시간은 토론 및 발표 수업입니다. 네 명이 한 모둠이 되어 모둠의 대표 책을 선정할 수 있도록 토론 시간을 줍니다. 토론 전 네 명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시간을 30초 정도 주면 좋습니다.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지만 눈을 마주 보며 얼굴을 바라본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이 시간에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지요. 그리고 눈이 가장 큰 친구를 뽑아달라고 합니다. 그 친구에게 토론 진행 임무를 맡깁니다.

토론 진행자의 역할은 간단합니다. 돌아가면서 책 읽었던 경험과 이 책이 우리 모둠의 대표 도서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발표시킵니다. 그때 진행자는 반드시 ‘오, 아, 그렇구나!’ 등의 호응을 해야 합니다. 이 호응은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모두가 편하게 발표할 수 있는 아주 결정적인 한마디가 됩니다. 발표가 끝나면 의견을 종합하여 대표 도서를 선정하고, 대표 도서를 독서카드에 정리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수업 종료 20분을 남겨두고 모둠별 발표를 시작해야 합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토너먼트 프로그램을 통해 토너먼트 대진표를 적어두고 순서대로 발표합니다. 공정한 대진을 위해 토너먼트 대진을 무작위로 섞어주셔야 합니다. 발표하기 전 추상적이고 단순한 표현은 지양하고, 구체적인 사건, 인물, 새로 알게 된 흥미로운 내용 위주로 발표하도록 지도합니다. 또한 발표에는 반드시 책 제목과 저자명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한 소녀가 흐르는 물에 손으로 꾹꾹 눌러 편지를 씁니다.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오늘 새벽에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어요. 눈동자가 생기기 전에, 심장이 생기기 전에… (잠시 침묵) 날마다 몇십 명씩의 일본 군인들에게 문을 열어줘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이 우리만한 나이에 중국으로 끌려가 처참한 생활을 하신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후략)”

“(전략) 김정은과 트럼프가 얼마 전에 만났지요?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시도조차 없었던 예전보다는 훨씬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똑같은 사람이자, 한민족이지요. 나중에 통일되어 하나로 뭉쳐지게 된다면, 서로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북한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서의동 저자의 <다음 세대를 위한 북한 안내서>는 여기에 도움이 될 만한 책입니다. (후략)”

이렇게 발표를 하고 나면 질문 기회를 줍니다. 질문과 답변을 마치면 즉석에서 더 읽고 싶어지는 책, 더 끌리는 책에 손을 들어 지지합니다. 더 많은 숫자의 지지를 받은 책이 다음 라운드로 가게 되고, 결승전에서 만날 책의 주인공은 교실 앞으로 나와 최종 발언 후 최종 투표를 하여 책 월드컵 우승을 가리게 됩니다. 더 적은 지지를 받은 책도 가치 있는 책이라는 점을 강조해주기도 합니다.

더 다양한 책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책을 읽어 오지 못한 친구들도 있지만, 그 친구들도 책을 읽어 올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소개되었던 책들은 반 친구들 사이에 계속 반납과 대출을 반복하는 중입니다. 쉬운 방법이지만 친구들과 읽은 책을 이야기 나누면서 깊이 있는 책 읽기가 됩니다. 책의 내용을 구조화하여 발표하고 모둠원의 피드백을 드는 것은 혼자 읽는 책 읽기보다 더 깊이 있는 방법입니다. 이 과정 모두가 즐겁게 운영되니 학생도 교사도 즐겁습니다.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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