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어렸을 적 미술 시간에 미래 사회를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안일을 대신 해주는 로봇이 있고, 식사는 알약으로 대체되고, 날아다니는 자동차가 있으며,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여행을 떠나던 그림들. 모두 한번은 보거나 그려보신 기억이 있을 것 같아요. 당시 저와 친구들이 상상한 미래는 왜 거의 비슷하게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불현듯 궁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고도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20세기의 어린이가 상상하던 미래 사회의 모습은 지금 얼마나 현실화되었을까요. 어떤 상상은 현실화되고 어떤 상상은 단지 상상으로 그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식사를 대체하는 알약이 상용화되지 않은 것은 단순히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의 구현이 어려웠다는 이유뿐일까요. 그보다는 우리가 함께 시간을 써서 식사하는 것, 혹은 혼자 눈으로 코로 즐기면서 식사하는 것에 즐거움과 가치를 아직 부여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성인이 된 지금 되짚어 생각해보면 20세기 어린이였던 제가 그렸던 미래 사회는 인간의 시간과 노동력을 아끼는 ‘효율적’인 사회, 나의 신체가 위치해 있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활동할 수 있는 사회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래 테크놀로지는 이러한 효율성의 극대화와 시공간의 한계 극복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순전해 제 머릿속에서 그리고 마음속에서 꿈꾸었던 미래의 모습이라기보다, 아마도 당시 우리 사회가 추구했던 가치, 우리를 둘러싼 사회 담론이 제시했던 미래의 상을 자연스레 반영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미디어 리터러시, 다시 말해 미디어 환경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복합적인 능력에는 우리 삶의 토대가 되는 테크놀로지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이해, 테크놀로지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이해, 테크놀로지의 발전 방향에 의견을 보태고 참여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공기와도 같이 스며들어 있는 여러 테크놀로지와 미디어의 구조를 드러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바라는 미래 사회상은 무엇인지 우리가 바라는 테크놀로지의 발전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이, 최근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바이지요.
테크놀로지의 발전 과정을 추적하며 테크놀로지와 사회변화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기술사회학자들 역시 테크놀로지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테크놀로지가 어떠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발전하는지는, 단지 기술발전의 가능성뿐 아니라 기술에 투자하고 디자인하는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을 반영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아이들이 상상하는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이 아이들의 상상도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미래 사회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 기대되는 테크놀로지의 모습에 투영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가치는 무엇인지, 그것이 우리가 정말 원하는 미래의 모습인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김아미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이해>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