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성교육을 받으며 ‘임신부 체험 키트’를 착용하고 있다. 탁틴내일청소년성문화센터 제공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을 보는 아이들의 눈은 어떨까? 지하철에 마련된 약자 배려석을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교실에서 임산부 배지를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아이들은 그 배지를 티브이에서 본 적 있다며, 그 배지가 가진 의미도 알고 있었다. “근데 굳이 임산부 배지를 왜 주나요? 당연히 비켜줘야 하잖아요”라고 유나가 말했다.
“임신부인지 언제쯤 티가 날까?”라는 물음에 1개월 2명, 2개월 0명, 3개월 5명, 4개월 3명, 5개월 8명, 6개월 4명, 7개월 이상은 0명이라고 답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는 6개월 정도 되면 한눈에 보기에도 임신부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그 시기 전에는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임신부인가 아닌가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맞아요. 우리 엄마도 동생 임신하셨을 때 갑자기 배가 불렀어요.” 늦둥이 동생이 있는 현서가 말했다.
이날 수업에서 나는 임신부 체험복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직접 임신부 체험복을 입은 뒤 하루를 생활해보는 수업이다. 체험복을 입으면 7개월 차 임신부가 느끼는 무게를 실제로 느껴볼 수 있다. 보통 아기들의 무게인 3∼4㎏에 물(양수)까지 합하면 체험복의 무게는 7㎏에 달한다.
체험복을 본 뒤 아이들마다 반응이 다 달랐다. 재밌어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고, 엄마가 자신을 가졌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다는 아이도 있었으며, 나는 나중에 아기를 안 낳을 건데 이걸 왜 하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교사인 내가 수업 진행 발언을 했다. “직접 체험해보면 그 사람의 입장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어요. 체험복을 입은 뒤 너무 힘들다면 바로 손을 드세요. 다음 사람으로 옮겨 줄게요. 한 사람이 너무 오래 입고 있으면 다른 친구들이 하지 못하니까 최대 15분으로 정해 둡시다. 힘들면 언제든지 손을 들어주세요.”
아이들은 1교시부터 4교시까지 임신부 체험복을 입은 뒤 다른 교과 수업을 들었다. 어느덧 5교시가 됐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1분 지나니까 다리에서 쥐가 나는 것 같았다, 책상에 배가 안 들어가서 글씨 쓰기 불편했다, 엄마가 나를 낳기 전 10개월 동안 매일같이 고생하셨겠구나 등을 소감으로 발표했다.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갔다. 교실 속 아이들 22명 중 18명이 ‘항상 비워 두어야 한다’고 답했다. 어떻게 하면 임산부들이 이 좌석을 마음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모둠별로 토의 시간을 가져봤다.
아이들은 “임산부가 전철 속 벨을 누르면 엄청 큰 소리가 나게 한다” “지하철을 타러 갈 때 경호원을 불러 사람들에게 비켜 달라고 한다” “임산부가 탔을 때 그 칸에 비상벨이 울리게 한다” 등을 이야기했다. 임산부 등 도움이 필요한 이동 약자들이 스스로 벨을 누르거나 큰 소리의 비상벨을 울리게 하는 등으로 부각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 큰 소리를 내어 주변의 주목을 받는 것은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이야기도 오갔다. 모둠별 토의 시간 뒤 임산부 배려석에 대해 다시 물었더니 나머지 네 명의 학생도 ‘별다른 표시 없이도 마음 편히 앉을 수 있도록 항상 비워 두어야 한다’고 생각을 바꿨다.
성 평등 수업, 교실 속 젠더 교육은 역지사지를 배워가는 과정이다. 상대의 상황에 공감하고 도와주려는 마음과 태도는 민주시민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다.
최다솜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 <예민함을 가르칩니다>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