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광양백운고 1학년 5반 학생들이 학교도서관 수업 시간에 빙고 게임을 하며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황왕용 교사 제공
도서관법 제38조 5항: 도서관 이용의 지도 및 독서교육, 협동수업 등을 통한 정보 활용의 교육
학교도서관 업무를 맡으신 분이라면 학기 초 도서관 이용 지도를 하게 됩니다. 위와 같은 법 조항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학생과 만나 도서관에 대한 정보를 준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에 당연히 해야겠지요.
학기 초가 되면 설렘과 긴장으로 수업시간 전 묘한 마음이 듭니다. 신입생들은 첫 시간에 도서관에서 수업을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학교가 낯선 친구들에게는 도서관까지 찾아오는 길이 어려울 것 같아,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합니다. 올해는 우리 학교 도서관에 대한 소개, 분류번호(도서를 분류해 정리하기 쉽게 배치하는 기호)에 대한 설명보다 교사와 학생의 만남, 학생과 학생의 만남을 더 우선하는 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기소개를 해볼까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일어서서 발표하는 자기소개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본인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고민하기 때문에 친구들의 발표를 듣지 않는다는 점, 갑작스러운 발표로 피상적인 내용만 발표한다는 점, 학생 구성에 따라 침체된 모습의 수업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은 자기소개의 걸림돌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빙고 게임을 통한 자기소개를 합니다.
미리 만들어 간 4×4 빙고 게임 종이를 나눠줍니다. 빙고 게임은 16개의 칸에 이미 질문이 쓰여 있습니다. 우리 가족 구성원, 내가 사는 동네, 좋아하는 과목, 여름 vs 겨울, 도서관 vs 영화, 여행하고 싶은 도시, 스무 살이 되면 살고 싶은 곳, 좋아하는 작가, 좋아하는 책 등의 칸을 채울 내용이 있지요. 16개의 칸을 채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나도 나를 잘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16개의 칸이 완성되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빙고 게임이 시작됩니다.
학생들은 모두 일어서서 친구와 일대일 대화를 하게 됩니다. “안녕, 나는 왕용이야” “안녕, 나는 민우야”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리고 서로 한 가지씩 질문을 합니다. 친구와 같은 답이 적혔다면 그 질문이 적힌 네모난 칸의 여백에 친구 이름을 적게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추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여행하고 싶은 도시가 부산이라면, ‘왜, 언제, 어떻게, 누구와’ 등으로 시작하는 질문을 함으로써 친구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봅니다. 또 다른 친구를 만나 계속 빙고 게임을 진행합니다. 이때 다른 친구들이 대화를 하고 있다면 불쑥 끼어들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셔야 합니다.
보통 한 친구가 4줄의 빙고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분 정도입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해서 4줄의 빙고를 완성하는 친구가 나타나면 대화를 마무리 짓고 자리에 앉게 합니다. 인상적이었던 친구와의 대화를 기억하고 발표시키면, 부담 없이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오면 30분이 지나고, 고등학교의 경우 20분이 남게 됩니다. 10분 동안은 교사를 소개합니다. 적게는 1년을, 많게는 3년을 같이 보낼 교사를 소개하는 일은 꽤 중요한 일입니다. 인물에 대한 5지선다형 문제를 만들어 소개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일화를 들어 제 소개를 합니다. 한 시간 수업이지만 서로 마음의 거리를 꽤나 좁힐 수 있습니다. 남은 시간에는 한 학기의 수업 방향을 소개합니다. 수행평가, 고사도 없는 과목이지만 이런 한 시간을 보내면 학생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합니다.
한 달 전, 대학 교수님의 퇴임식에 다녀왔습니다. 너무 많은 졸업생들이 찾아와서 자리가 부족했습니다. 그의 퇴임사 중 한마디를 옮겨봅니다. “매해 2월이 되면 신입생들 이름부터 외웠어요. 개인 신상카드를 보고요.” 교육의 시작은 만남,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하나의 의미 있는 인간으로 인식하는 일, 마음을 나누는 일부터 시작해야 함을 퇴임식장을 채우고도 넘친 열기로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