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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정자·난자 만난 얘기 말고 ‘진짜 성교육’ 필요해요”

등록 2019-03-12 07:13수정 2022-02-07 14:37

[함께하는 교육]
열세살의 성교육, 확 바꾸자

국·영·수만큼 중요한 게 성교육
평생 지니고 살 내 몸 공부하며
다른 사람 존중할 수 있는 눈 키워

첫 성관계 시작 나이 13.6살
성교육 실패하면 백래시 심해져
학교 공동체 문화에도 큰 영향
“성평등·성교육은 수레의 두 바퀴”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지침서는 5살 때부터 성교육을 시작하라고 권고한다.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성교육을 의무화한 나라로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지침서는 5살 때부터 성교육을 시작하라고 권고한다.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성교육을 의무화한 나라로

“고추 만지는 거 싫어? 그럼 너도 ‘미투’ 하든가~.”

“위층에 있는 네 거(여자친구) 가슴이나 만져~.”

“5분짜리 ‘딸 치는’ 동영상 찍어서 ○○한테 보낼 거다.”

지난 7일 강원애니고등학교 스쿨 미투(교내 성폭력 고발)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론화한 학생이 기자에게 말한 내용이다. 남학생이 남학생을 성추행한 뒤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조롱하고 비하하거나, 남학생이 자위 영상을 찍은 뒤 여학생에게 보낸다는 등 사이버 폭력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지면에 차마 실을 수 없는 표현이 많았다.

최근 몇 해 동안 페미니즘 교육과 성폭력 이슈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아이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니애미 창×’ ‘느금마’ 등 유행어의 대부분이 여성 혐오 표현이고, 전국 온갖 지역의 학교에서는 1년 내내 스쿨 미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는 교사뿐 아니라 같은 기숙사를 사용하는 동급생인 경우가 많았다. 이쯤 되면 대체 공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성’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 건지 톺아봐야 할 때다.

■ 정자·난자 만난 얘기는 이제 지겨워

한국에서 성교육은 보건 영역에 속해 있다. 보건교육은 1년에 10~17시간 편성돼 있는데, 보건교사는 보통 두 학기에 걸쳐 15시간 정도의 짧은 성교육을 진행한다. 애매하게 편성돼 있는데다 시간까지 부족하니, 아이들도 이미 다 아는 정자와 난자가 만난 얘기, 몽정과 생리 이야기의 반복일 뿐이다. 그나마 성교육 10시간도 채우지 못하는 학교들이 태반이다.

교육부가 초·중·고교에서 학년당 연간 15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성교육(성폭력 예방교육 3시간 포함)을 진행하도록 지침을 내렸지만, 고등학교의 경우 입시 때문에 성교육 시간에 자율학습을 하거나 체육 등 과목 시간 중 일부를 내어 진행하기도 한다.

학년이 올라가도 매번 같은 레퍼토리의 성교육을 진행하니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리 없다. 자신의 몸은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전후로 급격히 변화했는데, 교실에서 듣는 말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인 셈이다.

오히려 교실 구석에서 또래끼리 모여 알음알음으로 ‘그들만의 정보’를 공유하는 게 살아 있는 성교육이 될 때가 많다. 보호자나 교사에게 질문하면 “애가 못 하는 말이 없네” 등의 피드백을 받지만 또래들은 “이런 건 해도 돼” “이럴 땐 이 방법을 써봐” 등 실질적인 해결책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국어·영어·수학이야 졸업하면 안 배워도 되지만, 아이들의 몸과 성은 다르다.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하는 자기 몸과 성에 대해,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적이다. 타인의 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생리는 참을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건넨다는 게 마냥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중·고등학교에서 보건은 선택 과목이라, 학교장이 선택하지 않으면 성교육을 받기 어렵다. ‘국제가족계획연맹 선언’(IPPF declaration) 가운데 성적 권리 부분을 보면 △청소년은 섹슈얼리티와 성권리, 성건강을 향상시키는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등 청소년에게 ‘성에 관한 정보로부터 소외되지 않을 권리’를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 13.6살부터 성관계 시작한다는데

교육부 등이 2018년 청소년 6만40명을 대상으로 한 ‘제14차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성관계 시작 평균 연령은 만 13.6살로 조사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에서 임신과 피임은 금기어다.

유네스코 국제 성교육 지침서는 5살 때부터 성교육을 시작하라고 권고한다.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성교육을 의무화한 나라로, 만 4살부터 성교육을 시작한다. 중학교 때부터 피임 교육을 진행하고 콘돔을 무료로 나눠준다. 성은 부끄럽거나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닌, 교육과정 속에서 제대로 알려줘야 하는 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에서다.

핀란드 역시 1970년부터 성교육을 필수 교과로 지정했다. 독일의 경우 1992년부터 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지정한 뒤 성관계 시 체위를 포함한 거의 모든 주제를 가르치며, 안전하고 정확한 피임법을 교육하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1992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생리와 사정, 성충동, 이성교제와 에이즈 예방법 등 연간 70시간 이상 다양한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거의 모든 교육선진국이 성교육 체계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것이다.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 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7년 2월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교육 표준안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 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7년 2월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교육 표준안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황당한 ‘성교육 표준안’

제대로 된 성교육을 하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다. 현직 보건교사 등 담당자들에게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은 또 하나의 걸림돌이다.

경기 지역 학교에서 일하는 ㅇ 보건교사는 “교육부가 6억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성교육 표준안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를 비롯해 딱 붙는 바지 대신 치마를 입는 것이 여성의 올바른 옷차림이라는 등 성차별적인 표현이 난무했다”고 전했다.

이 표준안대로라면 성교육 진행 시 자위행위, 야동, 동성애,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용어는 금기어가 된다. 학생들이 실제 알고 싶어 하는 내용 모두가 교실에서는 터부시된다는 이야기다. 청소년들은 교실에서 주체적 시민으로 자라나고 있는데, 학교 성교육만 여전히 아이들의 몸과 성을 ‘나쁜 짓’과 연결해 가르치고 있다.

■ 백래시 시대의 성교육

성교육의 실패는 해당 학교의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남학생들이 페미니즘 동아리 홍보 벽보를 찢어 엉덩이 깔개로 사용하는 등 ‘백래시’ 현상이 최근 자주 일어나고 있다. 백래시는 사회 변화 등에 대해 반발하는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말이다.

경기 ㅈ고등학교의 김아무개양은 “지난해 수행평가를 제출한 뒤 과제와 상관없는 메모지에 ‘소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문구를 한 줄 적었다. 그 이유만으로 최저 점수를 받았다”며 “선생님들도 ‘페미’(페미니스트)는 부담스럽다고 욕한다”고 했다. 이해가 잘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페미니스트는 성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인데, 페미라고 욕하는 건 자기 자신이 성차별주의자라고 인정하는 말이냐는 것이다. 공교육 현장에서의 성교육이 성평등 교육과 궤를 같이해야 하는 이유다.

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는 “성평등 인식을 키워줘야 할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오히려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특히 이성애 외의 성적 지향 용어 사용을 금지하라는 지침은, 교실에서 성소수자 학생들의 존재를 지우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교육은 그 자체로 ‘나와 다른 너’를 이해하며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인데, 현행 성교육 표준안은 이분법적 성역할을 고착화하는 등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야기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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