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대장 안무서워… 까만 풀씨 모으러 가자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얘들아, 풀씨 모으러 가자
‘아이고 추워 벙거지 아이고 추워 춥대장~’
겨울 추위가 바짝 다가왔어. 겨울 하면 떠오르는 수수께끼 하나 내 볼까? 내려올 땐 느림보, 올라갈 땐 총알처럼 빠른 건 뭘까? 답은 콧물. 우리 콧구멍에서 쉴새없이 콧물이 들락날락하는 계절, 겨울이야. 하지만 춥다고 집안에만 콕 박혀 있을 수는 없지. 우리는 개천가로 풀씨 모으러 갈 거야.
빈 과자상자를 비스듬히 잘라 나무젓가락을 붙여 풀씨받기를 만들었어. 페트병을 비스듬히 잘라 주둥이를 손잡이로 해서 풀씨를 받아도 돼. 편지 봉투를 반으로 잘라 풀씨 담을 씨 봉투도 만들고, 플라스틱 통 두 개에 끈을 매달아 하나는 가시가 달린 것, 하나는 솜털이 달린 씨앗을 모을 거야. 둘을 섞으면 가시랑 솜털이 엉겨붙어 엉망진창이 돼. 풀씨 담을 도구들을 모두 준비하고 우리는 옷을 두둑하게 입었어. 개천가는 바람이 차니까 모자도 쓰고 목도리도 두르고 장갑도 끼고 말이야.
개천가에 나왔더니 여름에 무성했던 풀들을 다 베어버렸어. 마른 풀대가 무성했으면 우리가 풀씨를 더 많이 모을 수 있을 텐데…. 달맞이꽃 마른 꽃대를 꺾어 탁탁 털었더니 까만 씨앗이 와르르 풀씨받기에 떨어져. 명아주, 꽃향유 꽃대도 탁탁 털어 풀씨를 받았어. 씨 봉투에 따로 따로 담고 이름도 썼어. 추우니까 삐뚤빼뚤 잘 안 써져. 돼지풀이랑 질경이 꽃대는 손으로 훑으니까 풀씨가 잘 떨어져. 우리가 풀씨를 모으러 다니니까 덤불 아래서 풀씨를 먹던 참새들이 포르륵 다른 덤불로 날아가. 참새들이 먹는 풀씨 얼마나 맛있을까? 배초향, 들깨풀, 장구채 풀씨를 톡톡 털어먹으니 고소한 맛이 나는 것도 쌉싸름한 맛이 나는 것도 있어. 털고 난 꽃대도 안 바스러지게 통에다 담았어.
개천가 둔덕엔 길쭉한 박주가리 열매가 천지야. 박주가리 열매 속엔 보송보송 솜털 달린 풀씨가 한 가득 들었어. 박주가리 열매는 풀씨 날리기 선수, 입으로 후우- 하고 불었더니 하얀 낙하산 달고 박주가리 풀씨가 하늘을 하얗게 채웠어. 박주가리 풀씨는 정말 대단해. 미국쑥부쟁이 꽃대도 손으로 살살 털었더니 조그만 풀씨들이 조그만 낙하산을 달고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사위질빵 하얀 풀씨도 솜털 달고 둥둥 날아가. 풀씨야, 멀리 멀리 날아라. 솜털 달린 풀씨를 모아 통에다 담았어.
뾰족한 가시를 다다닥 달고 있는 도꼬마리는 생김새도 재미나. 꼭 머리에 도깨비 뿔을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도꼬마리 열매를 솜털 달린 풀씨 담은 통말고 다른 통에다 열심히 모았어. 집에 가서 옷에 던져 붙이기 시합할 거 거든. 날씨가 추우니까 콧물이 자꾸 나와 더 있을 수가 없었어. 게다 손가락도 얼어서 곱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기저기 따가워 살펴보니까 우리를 따라온 손님들이 많았어. 도깨비바늘이 겉옷에 잔뜩 붙어 따라왔고, 바지 틈을 비집고 양말에는 미국가막살이 씨앗이 어느 틈에 붙어 있었어.
오는 길에 빈 야구르트 병이랑 껌 통을 주워왔어. 꽃병을 만들려고 말이야. 예쁘게 색한지를 붙이고 사인펜으로 그림도 그렸지. 그리고 안 바스러지게 잘 모아온 배초향, 익모초, 들깨풀, 질경이, 꽃향유, 달맞이꽃 꽃대를 꽂았어. 강아지풀은 칫솔에 물감을 묻혀 손톱으로 긁어 물감을 뿌려서 알록달록 색깔을 들였어. 말라서 누렇게 죽은 강아지풀이 마술처럼 예쁘게 살아났어.
자,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도꼬마리 열매 던지기 시합이다. 나무랑 단이랑 서로 옷에 대고 열심히 던졌지. 그런데 단이 옷엔 도꼬마리 열매가 착착 달라붙는데, 나무 옷에선 자꾸 미끄러져. 가시가 잘 붙는 옷과 잘 안 붙는 옷이 있지. 공평하게 시합을 하려면 벽에다 수건 같은 걸 걸어두고 던지면 좋겠지. 단이가 안 되겠던지 나무한테 다가가 도꼬마리 열매를 그냥 옷에다 붙이기 시작했어. 나무도 단이 옷에 다닥다닥 붙이기 시작했어. 서로 따갑다고 낄낄거리면서 뾰족뾰족 고슴도치가 되어갔어. na-tree@hanmail.net
붉나무는 그림을 그리는 아빠(강우근), 글을 쓰는 엄마(나은희), 그리고 나무랑 단이, 한 가족이다. 펴낸 책으로 <사계절생태놀이>(돌베개어린이)가 있다.
춥대장 안무서워… 까만 풀씨 모으러 가자 ‘붉나무와 떠나는 생태기행’
붉나무는 그림을 그리는 아빠(강우근), 글을 쓰는 엄마(나은희), 그리고 나무랑 단이, 한 가족이다. 펴낸 책으로 〈사계절 생태놀이〉(돌베개어림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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