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제공
[함께하는 교육]
초등 교실 속 젠더 이야기
초등 교실 속 젠더 이야기
초등 4학년 우리반. 여학생과 남학생이 각자의 ‘몸’에 대해 말해보는 수업을 진행해봤다. 다르고도 같은 여자와 남자의 몸에 대해 터놓고 말해보는 시간은 중요하다. 부모세대가 만들어놓은 ‘몸과 성은 부끄러운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평생을 함께 ‘데리고 살아야 할 것’은 타인이 아닌 자신의 몸이다. 해당 수업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우리반에는 주1회 주제에 맞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숙제가 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는 과제다. 글쓰기 주제가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여자·남자가 되어 있다면?’이었던 날, 쓴 글에는 고정관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글들이 나왔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자라 있었다. 갑자기 생리가 시작됐다. 머리 감기 불편했다”와 같은 말이 대부분이었다. 주로 신체 변화에 따른 ‘갑작스러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자신과 다른 성별이 가진 생활 속 불편함이나 어려움에 대해 잘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터다.
겪어볼 일 없는 상대 성별의 어려움을 왜 알아야 하냐고? 당연히, 공감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딱 1인분짜리 삶만 경험하고 이해하고 살면 인간 이해의 깊이는 너무 얄팍해질 테니까. 은연 중에 남성과 여성은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여기며 자랐기 때문에, 고학년쯤 되면 편가르기하는 데 꽤 익숙해져 있다.
“선생님, 남자애들이 저희 때렸어요”, “선생님, 여자애들이 저희 못 만들게 해요”처럼 뭉뚱그려 표현하곤 한다. 결코 아이들에게 득될 리 없는 구분 방식이다. “성별로 구분 말고 ‘현수가 그랬어요, 윤시가 그랬어요’라고 바꾸어 말해보자”고 여러 번 말해봤다. 그러나 습관이 된 아이들 표현은, 어느새 서로의 사이에 투명한 벽을 세운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마침 글쓰기도 했겠다, 국어 ‘다른 이의 관점에서 새롭게 쓰기’ 단원을 활용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보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먼저 전지 네 장에 여자·남자라서 좋은 점, 여자·남자라서 불편하고 어려운 점을 각각 예상해보게 했다.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는 첫 번째 방법은 ‘서로 입장이나 생각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지도했다.
남학생들은 여학생 칸에, 여학생들은 남학생 칸에 이것저것 적어나갔다. 몇 가지 못 적고 머뭇거리기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여러 상황을 가정한 뒤 상상력을 발휘해보라’고 칠판에 단어들을 적어줬다. ‘가정, 카페, 학교, 여행할 때, 백화점, 운동할 때, 잘못했을 때, 싸웠을 때, 여름·겨울, 명절, 티브이(TV)에서, 직업, 진로, 놀 때, 생김새, 성격, 친구관계… 가만히 칠판을 들여다보던 아이들은 순식간에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지 얼른 적고 싶어하며 엉덩이가 들썩였다. 그렇게 적은 의견들은 아래와 같다.
#여학생들이 적은 ‘남자라서 좋은 점’: 머리카락이 짧아 덥지 않다, 외출 준비가 빠르다, 불편한 브래지어를 안 입어도 된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다, 아이를 안 낳고 생리통이 없다.
#남학생들이 적은 ‘여자라서 좋은 점’: 머리카락을 길러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 면도하지 않는다, 화장하고 꾸밀 수 있다.
한 번 상상해보기 시작하니,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빈 칸을 채워갔다. ‘나와 다른 성별의 불편한 점’에도 꽤나 많은 문장들이 적힐 수 있었다.
황고운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 <예민함을 가르칩니다>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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