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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교가 세상의 전부인 십대들, ‘또래상담’이 필요한 이유죠

등록 2019-01-28 20:26수정 2020-02-28 09:50

학교 부적응, 친구관계, 진로 등
‘고민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교실
친구에게 먼저 손 내미는 ‘또래상담자’
‘잠하둘셋’ ‘어기역차’ 등 상담기법 통해
속앓이하는 또래 이야기 경청해줘
“괜찮아. 나도 그랬어” 한마디가 주는 힘
또래상담 현장을 가다

?지난 25일 오후 경기 평택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이하 센터)에서 또래상담연합회(청담고3 윤성준
?지난 25일 오후 경기 평택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이하 센터)에서 또래상담연합회(청담고3 윤성준

새 학년, 새 학기를 앞두고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가운데 하나는 ‘학교 적응’ 문제다. 반이 바뀌거나 전학을 가는 경우, 진로 때문에 단짝 친구와 다른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 자신을 괴롭히는 동급생과 같은 반이 되는 경우들이 그 예다.

부모세대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십대들에게는 학교가 세상의 전부다. 청소년 시기 마음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은 경우, 혼자 속앓이하며 마음속에 자꾸 벽을 쌓기도 한다.

지난 25일 오후 2시, 경기 평택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이하 센터)를 찾았다. 고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학교와 교실에서 또래상담자로 활동하는 십대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이들은 모두 ‘또래상담 기본 교육’을 마쳤다. 센터는 10년 가까이 또래상담 연합회 등을 운영하며 각급 학교에 ‘또래상담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5년 이상 또래상담자로 활동하는 청소년도 있었다. 교실과 기숙사 등 십대들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 ‘학교’에서 이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또래상담은 ‘우정의 마중물’

“저 또한 또래 친구 덕분에 초등학교 때 힘든 시기를 이겨낸 적이 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상담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중학교 2학년 때 ‘또래상담부’에 들어가 고3인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택 청담고등학교 3학년 윤성준군의 말이다. 윤군은 5년차 ‘베테랑 또래상담자’다. 중·고교에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지금은 시 차원의 ‘또래상담연합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윤군은 학교생활 동안 친구들의 다친 마음을 보듬어주는 상담자이면서도, 자신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진로도 정했다. 심리상담사가 되어, 보다 전문적인 상담기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천천히 다른 친구들과의 ‘접점’도 만들어주는 게 윤군의 역할이다.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우정의 마중물’을 부어주는 것이다. 윤군은 중·고교 시절의 대부분을 또래상담자로 활동해오며 친구 관계, 십대 당사자들의 고민, 상담자와 피상담자의 신뢰 쌓기 등을 고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교과 활동, 성적, 입시 모두 중요하지만 하루 종일 교실에서 얼굴 맞대고 사는 친구들의 내밀한 감정선을 살핀 뒤 아픈 마음을 경청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청소년백서를 보면 십대들은 고민상담 대상으로 친구나 동료(44.4%)를 1순위로 꼽았다. 부모(24.1%), 스스로 해결(21.8%), 형제·자매(5.1%)도 있었지만,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또래 친구를 ‘적합한 상담자’로 생각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하 개발원)이 2016년 전국 초?중?고등학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을 보면, 청소년들은 고민이 있을 때 대화를 나누고 싶은 대상 1순위 역시 또래친구(37.8%)였으며, 이는 교사와 대화하고 싶은 청소년 비율(13.8)의 약 3배, 청소년상담사와 대화하고 싶은 청소년 비율(18.5%)의 약 2배에 해당한다.

십대들의 고민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평택 한광여고 2학년 송채은양은 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자치법정 동아리 활동을 하며 또래상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교칙을 어기게 된 친구들이 자치법정에 찾아와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해당 의견이 수용돼 교칙을 조정하는 활동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치법정을 통해 ‘교칙을 왜 어겼느냐’며 징계하는 것도 절차로서는 필요하겠지만, 일단 먼저 ‘듣는 것’이 우선이라고 느꼈다.

송양은 “당시 왜 지각했는지, 어떤 이유로 ‘일탈 행동’을 하게 됐는지 등을 물어보다가 느낀 것이 있다. 저 친구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확신이었다”고 말했다. “또래상담을 하다보면 친구의 고민이 지난날 내 고민이기도 했어요. 부모님과의 관계나 학업 스트레스 등 마음이 아팠던 부분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공감해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습니다.”

교실에서 이름으로 장난치는 것도 십대들에게는 큰 고민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괴롭힘이 학교 폭력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친구의 이름을 자꾸 이상한 별명으로 만들어 부르는 것도 교실 안에서는 심각한 갈등 요소라는 이야기다. 또래상담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평택고 2학년 박재호군은 “교실에서 생활하다보면 어느 순간 갈등 상황이 감지될 때가 있다. 이름으로 놀림 받는 친구는 너무 마음이 상하는데, 그걸 표현하면 ‘뭘 그런 거 가지고 화를 내느냐’라는 반응이 있다”며 “그럴 때 그 친구의 속마음을 들어주고, 교실 안에서 갈등을 조정?중재하는 것까지 또래상담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또래상담을 하다보면 우리들 고민이 거의 다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은 일 같지만 큰 상처가 되기도 하고, 기숙사나 교실에서 몰래 우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또래상담자의 역할은 그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손 내밀어 주는 것이고요.”

신한고2 강민주 학생(오른쪽)이 친구에게 또래상담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신한고2 강민주 학생(오른쪽)이 친구에게 또래상담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어기역차’ 상담법을 아시나요?

또래상담이라고 해서 아무런 훈련·교육 없이 이뤄지는 게 아니다. ‘솔리언 또래상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솔리언(solian)이란 ‘솔브’(solve, 해결하다)와 ‘이언’(ian, 사람을 뜻하는 접미어)의 합성어로 또래의 고민을 듣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돕는 친구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솔리언 또래상담은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하 개발원)에서 제작하고 보급하는 또래상담 프로그램의 고유 명칭이다.

잠하둘셋 기법, 어기역차 상담법, 원무지계 기법…. 생소한 단어지만 개발원에서 십대 또래상담자 교육을 위해 만든 상담기법들이다. 잠하둘셋은 ‘잠깐, 하나, 둘, 셋’의 줄임말이다. 김란희 평택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상담원은 “잠하둘셋 기법의 핵심은 ‘잠시 멈춤’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안 좋은 감정이 생길 때는 일단 ‘잠깐’ 대화를 멈춘 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면서 여유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상담원은 “또래상담자 교육을 진행할 때 ‘아이 메시지’(I-message) 기법도 충분히 설명해준다. 아이들 대부분이 ‘나’를 주어로 감정이나 기분 변화 등을 말하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또래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상태’를 말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무지계’ 또래상담 기법도 있다. 원(원하는 게 뭐니?), 무(무엇을 해봤니?), 지(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계(계획을 세워보자) 등 어른들이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또래상담을 할 때 이 네 단계를 거쳐 경청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개발원이나 센터 등에서 또래상담자 교육에 힘을 쏟는 이유다. ‘어기역차’ 상담법도 솔리언 또래상담자들에게 중요한 교육이다.

평택 신한고 2학년 강민주양은 “어(어떤 이야기인지 잘 들어준다), 기(기분을 이해해준다), 역(역지사지로 공감해준다), 차(생각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상담법은 실제 또래상담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강양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또래상담자로 활동해왔는데, 5년 동안 활동해보니 ‘어기역차’ 방법만큼 신뢰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없다고 강조했다. “평소에 또래 관계 조정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평택시 또래상담연합회에서 기본?심화 교육을 받으면서 이런 상담기법들을 평소에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비롯해 제가 속한 학교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역지사지’처럼 와닿는 게 없더라고요.”

김란희 상담원은 “공감하기, 잘 들어주기 등은 아주 중요하면서도 쉽게 잊을 수 있는 ‘상담 덕목’”이라며 “이야기를 들을 때 시선을 맞추는 것부터 ‘음’, ‘맞아’, ‘그래’ 등 짧게 동의하는 말만 해봐도 친구들 대부분이 마음 편하게 또래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에는 학생 상담이 진로 상담의 개념이었지요. 진로?진학도 중요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관계’에 대한 상담이 무척 중요하다고 봅니다. 실제 위기청소년에게도 효과가 있고요. 또래 상담의 시작과 끝은 ’경청하고 공감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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