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해고에 분노하는 대학 강사들의 네트워크(‘분노의 강사들’)에 참여하는 강사들(왼쪽 세번째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전유진, 김어진, 조이한)이 24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들이 자행하고 있는 대량해고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사례들을 고발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금 대학들은 강사법을 회피하기 위해 강사들에게 ‘4대보험 가져오면 강의를 주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실력이 아니라 4대보험이 교원을 선발하는 기준입니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누가 지게 됩니까?”
이른바 ‘강사법’이라 불리는 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올해 8월)을 빌미로 대학들이 벌이고 있는 ‘대량해고’ 때문에 하루아침에 강단에서 내몰린 강사들이 어렵게 입을 뗐다. 강사법에 따라 4대보험 가입 등을 보장해야 하는 대학들의 꼼수를 비판한 것이다. 24일 오전 서울 효자동 청와대 앞에서 ‘시간강사 대량해고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고발대회’가 열렸다.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강사제도 개선과 대학연구교육 공공성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강사공대위)와 함께 이 행사를 주최한 ‘대량해고에 분노하는 대학 강사들의 네트워크’(‘분노의 강사들’)는 올해 1학기 강의를 배정받지 못한 강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이다. 그동안 대학에서 ‘유령’처럼 지내왔던 강사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20~30명 가량 강사들로부터 취합한 ‘대량해고 및 학습권 피해’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시간강사 강의를 전임교수들에게 몰아주기”, “겸임·초빙으로 계약하지 않으면 강의를 줄 수 없다고 강요하거나 유도” 등 대학의 다양한 ‘꼼수’들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강사들은 ‘학습권 피해’ 문제에 가장 목소리를 높였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연세대는 교양과목 87개를 축소하고 줄업이수 학점을 100점으로 축소했다. 경기대는 외국인 전용 교양과목 10여개를 완전히 폐강했다. 배화여대는 2년제 졸업이수 학점을 80학점에서 75학점으로 축소했다. 수강인원 정원을 20명에서 40명으로 늘려 ‘대형강의’를 유도하는 학교도, 수업 주간을 16주에서 15주로 줄여 강의 총량을 줄이는 학교도 있었다. 게다가 한창 수업계획서를 입력해야 할 시기에 벌어지는 일로 학생들이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다고 한다.
‘분노의 강사들’이 주도한 이날 기자회견에는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강사제도개선과 대학연구교육공공성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성공회대 학생 등 다양한 학교 주체들이 함께 참여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성공회대 학생들도 “강사법과 ‘대량해고’는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라며 이날 행사에 동참했다. 이들은 “수강신청을 위한 강의목록을 보면서 강사법을 빌미로 삼은 ‘대량해고’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며 “성공회대는 지난해 128명이었던 강사를 올해 102명으로 감축해 수업선택권 침해와 교육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빠르게 시행령 개정안을 만드는 한편 ‘강사고용안정’ 지표를 대학 지원과 연계하는 ‘강사법 안착’을 기본 방향으로 삼고 있다. 앞선 23일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대학 총장들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회의에서 이런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더 강력한 정책적 수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강사고용안정’ 지표와 관련, 교육부는 강좌 수만 제시했는데 강사의 수, 강사가 담당하는 강의 시수까지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 또 이미 대학들이 ‘대량해고’를 자행한 2019년을 기준으로 삼으면 안되고, 2016년 또는 2017년 등 그 이전과의 비교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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