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로 자라는 아이들②
먼저 ‘공주 파티 영상’을 아이들과 함께 봤다. 무엇을 봤냐고 묻자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 들었다. “화장을 했어요!” “온통 핑크색이었어요!”라며 어렵지 않게 내용을 설명했다. 명은이는 “영상을 보면 공주가 꼭 예뻐야만 하는 것 같아요”라고 발표했다. 명은이에게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묻자, 화장하고 드레스를 입고 꾸미는 모습 때문이라고 했다. 찬형이는 “맞아요! 4살 여동생이 엄마가 화장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계속 립스틱을 발라요!”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동생이 왜 하는 것 같냐고 묻자 유튜버가 하는 것을 다 따라 하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현성이도 여동생이 5살인데 립스틱 사달라고 하고 매니큐어도 사달라고 한다며 찬형이의 말에 동의했다.
문제의식이 생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활동을 묻자 이런 공주 이야기 속 성 고정관념을 주변에서 찾아내고 이를 바꿔 연극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책, 만화, 영화, 유튜브 등에서 공주를 다루는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았다. 어떤 내용이 성 고정관념 같은지 물었다. 아이들은 ‘공주들은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고 예쁘게 꾸몄다.’, ‘무도회장에서 많은 여자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선택한다.’, ‘왕자가 공주를 구해준다.’,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다.’라고 의견을 모았다. 또 ‘공주에게 예쁜 게 가장 중요하다,’, ‘남자는 힘이 세고 중요한 일을 한다.‘ ‘남자가 여자를 선택한다.’며 생각을 정리한 아이들도 많았다.
이제 연극으로 풀어낼 차례. 2학년 학생들이 직접 지은 연극의 이름은 <공주의 하루>. 아이들이 만든 공주는 더이상 예쁘게 드레스를 입고 왕자에게 선택되길 마냥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바지를 입고, 밖에서 노는 것과 먹는 것을 좋아하는 공주와 예쁜 옷을 입고 꾸미는 데 관심이 많은 왕자가 등장한다. 악당에게 납치당한 왕자를 공주가 구하며 행복하게 끝이 난다.
연극이 끝난 뒤 아이들의 소감 중 ‘영화감독이 되어 성평등한 공주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연극했던 내용처럼 성 고정관념이 없는 공주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이들이 영화로 찍고 싶은, 책으로 담고 싶은 공주의 모습이 어떨지 기대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염려가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만날 수많은 공주들은 아직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마치 성장과정 속 당연한 놀이인 양 ’공주 되기’ 조기 화장 교육을 시키는 유튜버, 365일 다이어트에 시달리며 딱 붙는 의상을 입은 여성 아이돌 가수들은 미디어 안팎에 차고 넘친다. 이들은 공주 판타지를 채워주며 아이들 마음에 파고들 것이다. 부모세대인 어른들이 경각심을 갖고 바꾸려하지 않는다면 딸들은 3살부터 립스틱을 사달라고 조를지 모른다.
아이가 화장품 사달라고 하는 것을, 부모나 교사가 단순히 ’역시 딸이라 그렇지’ ’여자는 꾸밀 줄 알아야지’라고 단순히 넘어갈 일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꾸민 뒤 왕자에게 ’선택되어지는’ 수동적인 공주, 과연 ’2019년형 공주’의 모습이 맞는지 고민해보는 게 어떨까.
이예원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 <예민함을 가르칩니다>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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