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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4살짜리에게 립스틱을? ‘공주’로 자라는 아이들①

등록 2019-01-14 20:35수정 2019-01-14 20:41

초등 교실 속 젠더 이야기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공주가 되고 싶었다. ‘백설공주’ ‘신데렐라’처럼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멋진 왕자님을 만나 행복하게 사는 삶을 꿈꿨다. 그래서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예쁜 마론 인형이었고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인형을 공주처럼 꾸미는 인형놀이였다. 학습지는 하지 않고 늘 미루면서도, 연습장에는 매일 드레스를 그려 부모님께 된통 혼이 나기도 했다. 초등학교 입학 뒤에도 공주를 동경하는 마음이 이어지다 십대가 되면서 차츰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우리 반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아홉 살배기들은 형형색색의 치마와 반짝이는 머리핀으로 치장한 뒤 등교한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이 꼬마 공주들은 입고 있는 옷이 불편해 놀이 시간에 제대로 달리지를 못한다. 또는 “벗으면 안 돼요? 저 이 안에 바지 입어서 괜찮아요!”라며 갑갑함을 호소한다.

‘신데렐라’ ‘인어공주’ 같은 공주 이야기를 접하지 않고 자란 아이들이 있을까? 내가 그랬듯, 아이들에게 지금은 한창 ‘공주를 꿈꾸는 시기’일 거라 여겼다. 시간이 지나면 주렁주렁 달린 레이스는 유치해지고 치렁치렁한 원피스는 귀찮아지겠거니 했다. 그래서 치마를 입고 괴로워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기 전까지.

우리 반 아이들도 다 아는 인기 키즈 크리에이터인 ‘에이치’(H) 유튜버가 지난해 여름 ‘공주 파티’에 초대한다는 영상을 올렸다. 영상 속 유튜버는 핑크빛 배경 속에서 핑크색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핑크 드레스를 입고 있다. 빛나는 왕관과 목걸이까지 정말 ‘공주’의 모습이다. 영상 속에서 그 유튜버가 단장을 하는데, 뺨에 ‘선 팩트’를 두드리고 입술을 붉게 칠한다. 손톱을 분홍색으로 바르는 모습까지 아주 세세하게 나온다. 화장품이 아동용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케이스에 그려진 아기자기한 캐릭터 그림뿐, 성인용과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유튜브에는 이 콘텐츠 외에도 기껏해야 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대결을 하며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한다. 유치원생이 장난감 화장품으로 화장 놀이를 하는 영상이 너무 많았다. 그 속에는 예뻐지기 위한 방법들을 현란하게 전시하며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너무 어린 나이부터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 ‘여자는 이래야 돼’라는 틀에 갇히는 것만 같다.

이제 아이들은 내가 어렸을 때처럼, 단순히 ‘공주 드레스’를 입어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2018년의 공주’는 솜털 가득한 온 얼굴을 하얗게 두드리고 입술과 뺨은 빨갛게 물들인다. 그때의 나는 공주 드레스를 그리며 놀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색칠 공부도 화장 놀이로 한다.

이렇게 아이들의 유년시절 공주 판타지는 사라지지 않고 중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외모 코르셋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주 판타지 속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는, 많은 여성들이 아동복 사이즈의 옷을 입고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고 민낯으로 집 밖에 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 반 꼬마 공주들에게 이런 삶을 물려주게 될까 걱정스러워졌다. 그래서 ‘공주’에 대한 성 고정관념을 깰 프로젝트 수업을 계획했다.

이예원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 <예민함을 가르칩니다>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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