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학교도서관 동아리 학생들과 무엇을 어떻게 할지 생각합니다. 교사 입장에서 ‘나만의 특기’를 살려 동아리를 운영하면 편하긴 하겠지만, 아이들과 어울려 즐거워지려면 함께 고민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해마다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지금까지 라디오 진행, 출판, 소셜 디자인, 영상제작기법 등을 익혔지요.
지난해에는 동아리 학생들과 ‘그림자 인형극’을 함께 배워봤습니다. 그림자 인형극은 인형, 사물 등을 조명에 비춰 생긴 그림자와 목소리로 연기하는 극을 말합니다. 아이들과 처음부터 그림자 인형극을 준비했던 것은 아닙니다. 매주 한 번씩 그림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점점 그림책에 매료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림책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기 위해 ‘그림책 읽어주기 봉사활동’도 계획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림자 인형극을 제안했고, 동아리 학생 16명 만장일치로 우리가 읽었던 책을 각색해서 그림자 인형극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일 년 동안 30권이 넘는 그림책을 읽고, 4개의 그림자 인형극을 만들었지요. 실제 유치원생, 초등학생 대상으로 공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의견처럼 나온 제안이었고, 아무런 준비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학생들도 저도 막막했습니다. 특별히 배울 곳이 없어 ‘그림자 인형 제작법과 표현론’이라는 책을 사서 읽고, 유튜브 동영상을 분석하고, 풀리지 않은 궁금증은 서울에 있는 극단에 전화해서 묻기도 했습니다. 그림자 인형을 위해 무대를 제작하고, 빔 프로젝터를 쏘는 방식으로 배경에 포인트를 줬습니다. 인형은 두꺼운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오려 만들었고요. 인형 지지대로 어묵 꼬치용 막대, 풍선 막대 등 여러 개를 해봤지만 튼튼하지 못해서 고민하던 중 집에 있는 빨래 건조대를 분해해서 튼튼한 지지대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림자 인형극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스토리보드를 써서 필요한 인형과 배경을 만듭니다. 대본을 쓰고, 대본에 맞는 배경음악과 효과음을 만들고, 목소리와 인형 연기와의 합을 맞춰봅니다. 간단히 세 줄로 요약했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두 달 이상의 시간과 ‘협동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인형극 대본에는 그림책의 기본 주제를 담아냈지만, 그림자 인형극으로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에 대해서는 각색을 했습니다. 정성훈 작가의 <사자가 작아졌어!>, 박정섭 작가의 <감기 걸린 물고기>,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 광양백운고등학교 학생이 직접 쓰고 그린 <세 잎이어도 괜찮아> 등 4편의 책으로 그림자 인형극을 만들었습니다. 공연은 30~40분 정도 진행합니다.
최근 2018년도 마지막 공연을 순천시립신대도서관에서 했습니다. 검정 커튼 뒤에 쪼그려 앉아 목소리 연기를 하고, 인형을 움직이는 학생들은 달뜬 표정이었습니다. 극이 끝나고 무대 인사를 나온 학생들은 인형극을 보러 온 어린이들의 감사 인사를 전해 들으며 즐거워했지요. 수험생이 되어도 그림자 인형극을 놓지 못하겠다며 고3이 되더라도 꼭 함께하자고 합니다.
가끔 ‘봉사활동 시간을 8시간 줄 테니 와달라’고 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봉사활동 시간은 한 시간만 받고 7시간은 거절했습니다. 물론 연습과 제작 시간을 포함하면 8시간도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심(機心) 없이 시작한 그림자 인형극의 ‘맑은 뜻’을 훼손하기 싫었습니다. 동아리 학생들은 한 편의 그림자 인형극을 직접 제작·연출해보며 음향, 배경, 인형 연기, 목소리 연기 등 각자의 위치와 역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형극의 기술뿐만 아니라, 그림책에 담겨 있는 정직, 진심, 우정, 사랑, 소통의 중요성을 배운 듯합니다.
글·사진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