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들과 ’영웅 만들어보기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칠판에 적은 20인의 영웅 가운데 남자 영웅은 18명, 여자 영웅은 2명이었다. 아이들의 성 고정관념은 자신의 생활 속에서 많이 보아온 것, 무언가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성별에서부터 시작된다. 최다솜 교사 제공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 <예민함을 가르칩니다> 공저자 얼마 전 <아쿠아맨>이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재밌다고 이야기가 오간다. 수업을 준비할 때 학생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로 교육 자료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인기있는 캐릭터는 단연 ‘영웅’이다. 영웅이란 무엇일까? 독일 청소년들이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14년째 총리직을 연임 중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만 보고 자란 ‘탓’이지 않을까. 보지 않고 겪지 않은 것을 꿈꾸고 상상하긴 힘들다. 아이들의 성 고정관념은, 우리가 수업에서 “‘여자는 이래야 해, 남자는 그래야 해’라는 말은 잘못됐어”라고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자신이 많이 보아온 것, 무언가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성별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수업은 지난번 진로에 관한 성 고정관념 칼럼(여자 축구선수·파일럿,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과 연결되는 두 번째 수업이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영웅이란 어떤 사람일까? “힘센 사람이요” “사람들을 구해주는 사람이요”라고 대부분 답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영웅’의 사전적 의미부터 확인해보기로 했다. 영웅이란,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며 보통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말한다. 먼저 아이들이 잘 알고 있는 영웅의 이름과 그 능력을 칠판 가득 적어보았다. ‘옵티머스, 원더우먼, 토르,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배트맨, 수퍼맨’ 등 각각의 인물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달랐다. 아이들과 영웅 20인을 추려낸 뒤 공통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찾은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①‘~맨’이 붙는다. ②힘이 세고 초능력이 있다. ③좋은 영향을 끼친다. ④희생정신이 있다. 아이들이 대번에 찾아낸 공통점 가운데 하나, ‘∼맨’(man)을 보니, 칠판에 적은 20인의 영웅 가운데 남자 영웅은 18명, 여자 영웅은 2명이었다. 단지 힘이 세기 때문에 절대다수의 영웅이 남자였을까? 머리를 쓰거나 지혜를 사용하는 여자 영웅은 나오지 않았던 걸까? 다음 활동은 생각의 전환, ‘우리가 주변에서 잘 볼 수 없는 영웅을 만들어보자!’였다. 윤태와 준민이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영웅 만들기’라 재밌을 것 같아요”라는 반응이었고 이지는 “여자 영웅은 별로 없으니까, ‘여자 영웅’도 만들어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성별 구분 없이 카드나 팔찌를 사용해도 되나요?”라고 물으며 신나했다. 영웅 설명서에는 영웅의 이름 , 능력치, 영웅이 들고 다니는 소품을 적고 그리도록 했고, 영화 포스터처럼 한 장면 조각상을 만들어보고 발표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이기에 골머리를 앓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 남자 영웅을 만들기는 쉬운데 여자 영웅은 어려워요”라는 애성이의 말에 현서는 “남자 영웅은 우리가 많이 봐와서 그런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 수업이 아니면, 평생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을 주제였기에 아이들과 꼭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었다. 끝나고 소감을 물어보니, “여자 영웅이라니 생각만 해도 멋있었어요.”, “영웅을 생각하면 남자 영웅이 떠올랐는데 이제는 여자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요” 등 자신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영웅이란, 육체적인 힘만을 재능으로 가진 사람이 아닌 ‘똑똑함’이 재능이 될 수도 있고 여러 마법 기술 등을 쓸 수도 있다. 아이들이 이번 ‘영웅 수업’을 통해 꿈꾸고 상상해본 ‘여자 영웅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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