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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열다섯에 실수해봐야 스무 살에 ‘신불자’ 안 됩니다”

등록 2019-01-01 20:03수정 2020-02-29 12:31

새해맞이 경제교육 첫 걸음

세뱃돈 관리부터 시작해보는 경제교육
용돈기입장으로 소비·지출 개념 잡고
6개월 ‘종잣돈’ 모아보면 성취감 쑥쑥
청소년기부터 돈 관리·저축 해봐야
스무 살 된 뒤 ‘실패’ 안 해
‘우리가족 경제용어 사전’ 만들어봐

지난 2007년 3월31일 서울 마포구 청소년경제체험센터에서 ‘어린이금융체험 활짝’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 용돈을 현명하게 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 2007년 3월31일 서울 마포구 청소년경제체험센터에서 ‘어린이금융체험 활짝’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 용돈을 현명하게 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아이들 세뱃돈 관리부터 잘 해주고 싶지요. 적금 통장 만들어주는 것까지는 부모가 안내해 줄 수 있는데, 그 다음부터는 사실 용돈기입장 쓰는 수준이라 ‘경제교육’으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강원도 춘천시에 사는 학부모 김수연씨의 말이다. 새해를 맞이해 자녀들 경제교육에 관심 갖는 부모들이 많다. 일단 가족, 친지들이 준 아이들 세뱃돈 관리부터 잘 해주고 싶지만 정작 3050 젊은 학부모들도 ‘돈 관리’에 밝지 않은 경우가 많아 첫 단추도 제대로 잠그기 힘들다.

김씨는 “고교, 대학 졸업 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돈’에 대해 잘 모르고 사회에 나온 것”이라며 “공교육 과정에서 배운 ‘경제’는 언제나 그래프, 수식으로 가득한 어려운 과목이었다. 실용적인 경제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있다”고 했다. “돈 모으고 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요. 그런데 금리, 보험, 신용등급, 금융설계 등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생소하다보니 경제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경제를 모른 채 학부모가 되더군요. 그래서 우리 아이에게만큼은 잘 알려주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 ‘머니 센스’, 왜 중요한가

경제교육의 가장 큰 걸림돌은 ‘돈’에 대한 이중적인 인식이다. 모든 사람들이 ‘돈이 없는 일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면서, 막상 돈에 대해 이야기하면 ‘돈밖에 모르는 천박한 사람’ 취급을 당하기 일쑤다.

<17살, 돈의 가치를 알아야 할 나이>를 펴낸 한진수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학과 교수(경제학 박사)는 “‘돈을 밝히는 것’과 ‘돈에 밝은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는 돈의 노예로 살기 쉽지만 후자는 돈의 주인으로 산다”고 강조했다. 학생을 잘 아는 교사가 좋은 교사가 되고, 상품 특성을 잘 이해하는 매장 직원이 물건을 더 잘 팔 듯이, 돈의 가치를 알고 쓰임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돈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생애 주기라는 게 있다. 유아기, 청소년기를 거쳐 소득이 중단되는 노년기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라이프 사이클’을 가진다. 공교육 12년 과정에서, 아이들 졸업 뒤 80년을 전망할 수 있는 ‘경제 보는 법’을 가르쳐 줘야 할 이유다. “특히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기 시작하는 청소년들과 대학 입학 뒤 ‘대부업’, ‘신용평가’ 등을 접하는 아이들에게 관련 이해도를 높일 만한 경제교육은 꼭 필요합니다. ‘머니 센스’를 갖출 수 있는 실전형 경제수업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용돈, 모으고 기록하며 첫 단추 채워보자

경제교육 전문가들은 새해맞이 경제교육으로 ‘용돈기입장’ 마련을 추천한다.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경제교육이지만, 이것만큼 아이들이 자신의 ‘소비와 지출’을 한눈에 익히는 방법도 없다.

부모가 가계부를 쓰는 경우 매일 저녁 가족들 모두 둘러앉아 각자의 ‘하루 경제생활’을 기록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문구점 등에서 아이가 직접 골라온 용돈기입장에 ‘오늘 하루는 어떤 것을 샀고, 왜 샀는지’ 써보게 하는 것이다.

소비와 지출을 기록하는 기본 교육을 토대로, 단기 저축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용돈을 얼마씩 모아 ○○○게임기를 사고 싶다’ ‘이번에 받은 세뱃돈의 70%는 통장에 저축한다’ ‘집안일을 도우며 한 달에 얼마를 모으겠다’ 등의 목표를 먼저 정하는 것이다.

용돈기입장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일기 쓰듯 기록해보는 것이 좋다. 아이에게 구체적인 지출 내역과 그 이유를 짧게라도 적어보게 해야 한다. 주 단위로 용돈을 받는 아이의 경우, 하루하루의 소비 생활을 적어보는 게 습관이 되면 점차 월·분기 단위로 ‘경제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중학교 이상의 자녀에게는 물건을 산 뒤 영수증을 챙겨오게 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영수증에는 아이가 산 품목, 시간, 날짜, 장소 등이 적혀있다. ‘내가 가진 돈이 언제, 어디로 갔는지’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경제교육법이다. 용돈기입장을 매일 쓰기 힘들어 하는 자녀에게는 영수증을 요일별로 모아둔 뒤, 주말 저녁에 ‘총정리’를 하게 하는 것도 좋다. 아이 스스로 관리해야 할 용돈 규모를 파악하고, 지출 항목을 확인해보면서 저축·소비 습관을 제대로 들일 수 있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해보면 돈을 쓰는 데 있어서도 ‘자기주도성’이 생긴다. 기분에 따라 예측불가의 소비를 하는 게 자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버튼이 생기는 것이다.

돈 관리 실수, 청소년기에 해봐야죠

이런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부모가 아이들을 믿어주는 것이다. “너, 돈 모아서 게임기 사려고 그러지!”라든가 “학생이 지금 무슨 돈이 필요해!” 등 윽박지르는 방식의 경제교육은 아이들에게 ‘경제적으로 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진수 교수는 “초·중·고교 시절 충분히 ‘돈 관리’에 실수해봐야 성인이 된 뒤 실패하지 않는다”며 “아이가 용돈, 세뱃돈을 허툰 곳에 쓸까봐 부모들이 지레 겁먹는데, 오히려 이때 가족끼리 모여 소비와 지출의 개념을 공부해보고, ‘6개월 용돈관리 플랜’을 짜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부모가 세뱃돈을 일방적으로 저축해버릴 수도 있겠지요. 다만 강조하고 싶은 건, 아이들에게 그 결정권을 줘보자는 겁니다. 청소년기에 저축과 소비 영역에서 실수도 좀 해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야 스무 살, 서른 살에 ‘경제적 실패’를 덜 겪게 됩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다. 신체적으로도 가장 건강한 때다. 부모처럼 급하게 목돈을 써야 할 걱정도 적다. 때문에 자신을 위한 경제 계획을 짜기 가장 좋은 시기다. 부모가 아이에게 저축 목표를 현실적으로 잡도록 지도하는 게 중요하다. 자녀 스스로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보는 게 ‘종잣돈 만들기’의 가장 우량한 씨앗이라는 이야기다.

한 교수는 “이 시기 아이들에게 ‘종잣돈 만드는 법’을 차근차근 알려줄 필요가 있다”며 “짧게는 6개월, 1년, 3년 단위의 ‘저축 청사진’을 그려보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아이와 함께 금융 플랜을 짠 뒤 각각의 통장에 ‘○○지역 맛집 기행’, ‘배낭여행 자금’ 등 이름을 붙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돈을 모으는 중간에 적금 해지를 할 수도 있고, 아이가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수도 없이 그만두고, 실수하고, 계획을 잘못 짤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실전형 경제교육’ 과정이다.

‘무서운 경제용어’, 어떻게 접근할까

부모가 아이들 경제교육을 시작할 때 가장 낯선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제용어’다. ‘나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설명해주느냐’라는 것이다. 환율, 신용등급, 주식 투자, 채권, 화폐 등 매일 뉴스에서 듣는 단어지만 막상 그 뜻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홍현정 한국와이더블유시에이(YWCA) 부장은 ‘경제기사 스크랩’을 추천한다. 신문 경제면에 나온 작은 경제기사 한두 꼭지부터 시작해보는 것이다. 홍 부장은 “경제면을 펼치면 눈에 들어오는 기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1~2개 정도 오린 뒤 공책에 붙이는 게 첫 단계”라며 “기사 내용에서 모르는 경제용어에 밑줄 친 뒤 아이와 함께 뜻을 알아보는 과정을 6개월만 해봐도 ‘경제 뉴스’라는 지도에서 길을 잃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제교육에 관심 있는 학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이 ‘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설명해주지’입니다. 잘 모르니까 많이들 ‘무섭다’고 여기죠. 단언컨대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새해 시작을 ‘우리 가족 경제용어 사전 만들기’로 해보는 건 어떨까요?”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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