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 정시 최종지원 전략 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배치표를 보며 전략강의를 듣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올해 수능인 11월 15일 직전 입시 전문가들에게 수능에 임하는 수험생들의 자세를 문의했다. 여러 얘기가 있었지만, 입시 전문가들 가운데 ‘1교시 징크스’ 또는 ‘1교시 멘붕’을 주의하라는 얘기가 많았다. 최근 국어가 어렵게 출제되는 경향이 있는데, 1교시에 국어 시험을 망쳤다는 기분 때문에 페이스를 잃어 이후 다른 과목을 망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은 현실이 됐다.
올해 국어 수능의 표준점수는 150점이다. 지난해에는 134점이었으니 올해는 16점이나 올랐다. 국어 수능 1등급 컷은 132점이다. 즉, 1등급 안에서도 132점에서 150점이 분포한다. 수학 가형은 1등급이 126~133점, 수학 나형은 130~139점에 존재한다. 표준점수를 반영하는 대학의 정시에서는 국어 점수차가 당락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국어 1등급 안에서도 18점 차이가 나는데 수학은 7점 차다. 국어를 못 보면 수학에서 만회가 불가능할 정도”라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학생들의 수준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출제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국어 수능이 어렵게 나왔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었으므로 내년에는 혹시 쉽게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학·기술·철학·경제 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내용을 출제하는 이른바 융복합 지문 출제 경향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 “사고력보다 독해력 테스트”
현직 국어교사인 최승후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정책국장은 “요즘 수능 국어는 내용도 어렵지만 지문이 너무 길다. 시험 시간은 한정돼 있는데 지문이 기니까 누가 빨리 읽고 빨리 푸느냐, 즉 ‘스피드 테스트’ 양상이 됐다”며 “수능은 원래 단순 암기가 아니라 사고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시작한 건데, 현실적으로 수능 국어는 사고력보다는 빠른 독해력을 중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데 지문이 다양한 분야에서 나오므로 결국 배경 지식이 중요하다. 학생들은 특히 과학과 기술, 경제, 철학에서도 촘촘한 논리 구조를 갖춘 지문을 어려워한다. 이 분야에 대해 전혀 모르는 학생과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는 학생들은 독해력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최 정책국장은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같은 고전을 읽을 수는 없다. 그보다는 <이기적 유전자>, <정의란 무엇인가>, <코스모스>처럼 현대에 나온 책으로 포괄적인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을 읽는 게 좋다”며 “이런 책을 그냥 암기하듯이 읽기보다는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의식도 생기고 지적 능력도 생긴다”고 밝혔다.
사실 플라톤의 대화편이나 공자의 <논어> 같은 책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2500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상황을 모르면 텍스트만 읽는다고 내용을 이해하기 대단히 어렵다.
교육방송 국어 강사인 윤혜정 교사(덕수고)는 “초등학교 때부터 독서를 열심히 했던 아이들이 확실히 국어 성적이 잘 나온다. 문제는 고등학교 들어서면 배경 지식을 따로 쌓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이럴 경우 교육방송 교재에 나오는 과학이나 경제 분야 등의 지문을 읽고 거기에 나오는 개념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수능은 교육방송 교재와 70% 연계율을 보인다. 그러나 국어 비문학 지문은 교육방송 교재에서 그대로 나오는 게 아니다. 단 교육방송 교재에 나왔던 개념이나 소재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평소 독서력이 부족했던 학생들은 교육방송 과학·기술·경제·철학 등에 나오는 지문과 개념, 논리 구조 등을 명확하게 파악해 놓는 게 좋다.
아이들 가운데 고등학교 들어서 급한 마음에 처음부터 수능 국어 시험 시간에 맞춰 무조건 문제를 풀어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비추’다.
■ “처음에는 지문 정독하는 연습 필요”
윤 교사는 “처음에는 시간을 재지 말고 국어 지문을 깊게 생각해서 문제를 면밀하게 분석해서 푸는 게 좋다. 그래야 개념이나 용어를 확실하게 자기 지식으로 만들 수 있다”며 “이게 익숙해지면 나중에 수능 시험 시간에 맞춰 국어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는 게 좋다”고 권유했다.
20년째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종로학원 강남본원 우승제 강사도 “요즘 수능 국어 출제 경향을 보면 독해력이 없으면 문제를 풀 수가 없다”며 “처음에는 시간을 재지 말고 지문을 정독하면서 치밀하게 분석하는 식으로 학습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10분 이런 식으로 시간 맞춰 놓고 국어 지문을 푸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런 방식은 별 효과가 없다. 정독해야 지문의 핵심 개념, 단락 사이의 유기적 관계, 정보량이 어느 부분에 들어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며 “특히 학생들이 과학과 경제 분야 지문을 어려워한다. 하루에 이 분야 지문 2개씩을 정독하는 연습을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수능 국어는 문제를 보면 막막하지만 나름의 접근 요령이 있다. 교육방송 국어 강사인 장동준 교사(인천 포스코고)는 “수험생들은 독서(비문학) 영역에서 출제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선택지를 구성하는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출제자들은 선택지를 만들 때 ‘개념’ ‘특징’ ‘관계’ 등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며 “‘개념’ ‘원리·방법’ ‘특징’ ‘관계’ 등에 관한 정보를 변형하거나, 바꿔치기를 통해 선택지를 구성한다”고 말했다.
‘변형하기’는 지문에 제시된 어휘, 어구 등에 변화를 주어 선택지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지문에서 정보의 ‘특징’에 관한 선택지를 만들 때 지문의 말을 그대로 사용하기보다는 그 말의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 다른 어휘나 어구를 사용하는 걸 말한다. ‘바꿔치기’는 짝을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문에 ‘인간은 포유류이고, 개구리는 양서류이다’라는 정보가 있을 때 선택지에서는 ‘인간은 양서류이다’와 같이 짝을 바꿔 서술하는 것이다.
그는 “정보량이 많은 고난도 지문은 정보 간의 관계를 파악하며 지문을 읽어야 문제 해결 과정에서 정보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활용할 수 있다”며 “먼저 개념, 이론, 원리, 과정, 주장·관점, 대상의 기능과 같은 정보가 드러난 문장에 표시를 해 두고, 정보들의 관계를 간략하게 메모를 하는 게 좋다. 그 다음 선택지와의 대응을 통해 선택지 내용의 적절성을 판단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조금 어렵고 길더라도 이런 글을 읽는 연습을 평상시 해야 한다. 요즘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짧고 재미있고 그림이나 동영상이 들어 있는 글만 선호한다. 이런 학생들은 수능 국어 문제 속 긴 지문을 보면 당황하게 된다.
그동안 수포자(수학 포기자), 영포자(영어 포기자)라는 말은 있었어도, 국포자(국어 포기자)라는 말은 없었다. 그러나 최근 국어 출제 경향을 보면 국포자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 수학이나 영어와는 달리 국어는 한국어로 돼 있었으므로 어떻게든 풀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수능 국어 출제 경향을 보면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미리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ktk7000@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