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교사? 학교도서관? 그게 뭐하는 건데?”
10년차 사서교사로 일하는 제가 가장 많이 받아온 질문입니다. 먼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새 칼럼 연재를 맡은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교사입니다. 2주에 한 번 이 지면을 통해 학교도서관에서 학생들과 해온 수업 이야기, 공교육 안에서 이뤄지는 독서교육 이야기 등을 풀어내고자 합니다. 오늘은 제가 초임 시절, 사서교사를 꿈꿨던 옛날 제자 이야기를 먼저 해보고 싶습니다.
“학교에 별 잡놈이 다 들어오네. 사서교사가 뭐 하는 놈이여?”
10년 전 사서교사로 발령받은 저에게 은사님의 축하 인사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국어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은, 신규 교사의 고장 난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제가 속한 인문사회부 부장님이었고,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식으로 저를 대하셨습니다. 긴장되는 학교생활은 큰 풍랑을 만나 갈 길을 잃은 배처럼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시키는 일을 하다 보면 퇴근시간이 되었지요.
대학에서 배우던 내용은 학생들과 만남에서 전혀 쓸모없었고, 학생들과 어떻게 지내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방향 잡기도 어려웠습니다. 수업에서 학생과 만나는 시간, 업무에서 부장님을 만나는 시간은 너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학교도서관에서 점점 움츠러들었습니다. 연말이 됐고, 학교를 그만둘 갈림길에 서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일 년을 같이 지낸 도서부 학생의 편지였습니다.
“선생님, 제 꿈은 사서교사였습니다. 제가 만난 최초의 사서선생님이 선생님입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꿈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선생님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생님 영향이 큽니다. 선생님을 보면 사서교사라는 직업이 재미없게 느껴집니다. 매일 공문서 처리하느라 바쁘신 선생님, 학교 행사 사진 찍으러 다니시는 선생님. 제가 감히 이렇게 편지를 써서 죄송합니다. 어쨌든 선생님, 힘을 내주세요. 그래야 ‘사서교사’라는 제 꿈을 지킬 수 있을 거 같아요.”
편지를 받고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습니다. 누가 볼까 무서워 얼른 편지를 찢어버렸습니다. 아직도 후회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겨울방학이 된 뒤 학교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확고해졌습니다. 가끔 제가 힘을 내야 그 학생의 꿈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지만, 그 정도 목소리는 금방 걷어차 버릴 수 있었습니다. 2월 개학날이 되었고, 사직서를 들고 출근했습니다. 도서관에서 마지막 고민을 하는데, 제게 편지를 썼던 그 학생이 목캔디를 들고 도서관에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매일 도서관 먼지 때문에 목 아프다고 그러셨잖아요? 목캔디 드시라고 사 왔어요.”
그 친구는 더 이상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을 빠져나갔습니다. 저는 목캔디를 하나 먹으면서 왈카닥 눈물을 쏟았습니다. 한참을 울고 나서 목캔디 껍질과 사직서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은사님을 원망하던 못난 마음도 함께 버렸고,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나약함도, 무능함도 버리려고 여전히 노력 중입니다.
교사는 학생에게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그랬고, 여전히 학생에게 배우는 중입니다. 학생은 저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겠지요? 여전히 부족한 교사이지만 학생의 꿈을 흔들리게 하는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아 노력합니다.
학생들과 울고, 웃고, 화내고, 사랑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10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들과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인연을 이 지면에 그려보려고 합니다. 학생들과 함께 읽은 책, 함께한 여행, 함께 나눈 이야기, 함께 했던 활동들을 하나씩 꺼내 그 친구에게 ‘늦은 답장’을 부쳐볼 생각입니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모르겠지만 2008년 중마고등학교에서 사서교사에게 편지를 썼던 친구야, 혹시 이 답장을 본다면 너의 꿈을 응원한다고 전하고 싶다. 너무 늦은 답장에 실망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된다. 답장할 용기도, 방법도 없었는데 이제야 답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2주에 한 번씩 너에게 답장을 한다고 생각할게. 언젠가 우연히 학교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미안하고, 고맙다. 나의 첫 제자이자 스승에게.”
황왕용 광양백운고등학교 사서교사, <학교도서관 활용 수업: 중·고등>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