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2일 서울 은평구 진관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신들이 공유주택 입주민이라고 가정하고 공동생활 규칙을 정하고 있다. 김태경 기자
“금요일 밤마다 모여서 파티를 하면 좋을 것 같아.”
“밥은 지어 먹지 않았으면 해. 왜냐하면 밥 짓느라고 냄새가 나고 쓰레기도 많이 나오고…배달시켜서 먹는 거로 하자.”
지난 10월 11일 서울 은평구 진관고등학교에서는 진로·체험 수업이 열렸다. 학교에서 진로·체험 수업을 하면 대개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진로·직업과 관련된 강사를 초청해 설명을 듣는다. 한데 이날 진관고등학교의 진로·체험 수업은 특이했다. 은평구 관내의 사회적 기업 10곳을 초청해 수업을 진행했다.
맨 앞에 소개한 장면은 2학년 6반에서 사회적 기업 ‘두꺼비하우징’ 수업 도중 ‘공유주택 안에서 규칙 정하기’ 활동이다. 두꺼비하우징은 도시 내 빈집이나 빈 사무실, 빈 고시원 등을 활용해 공유주택을 만들어 주변 시세의 80% 정도의 가격에 공급하는 민간공공임대 사회적 기업이다. 주거 약자들에게 안정적인 주거복지를 제공하며 낡은 집, 마을을 고치고 유지·관리하는 사업을 통해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도시·마을을 재생한다.
이 회사 김승권 대표이사는 아이들에게 공유주택 사업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왜 필요한지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위주로만 개발해. 그러다 보니 저층·중층형 주택이 감소하고 아파트만 퍼져 정겨운 골목과 마을이 사라져. 자연환경도 훼손돼. 예를 들어 은평구만 해도 녹번역과 불광역 사이 통일로 주변의 자연환경이 훼손됐지. 무분별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마을 주민들끼리 갈등이 심하게 발생하고 원주민들은 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
“도시에 건물이 엄청나게 많은데, 의외로 빈 곳이 많아. 특히 개발에서 소외된 곳은 빈집들이 있지. 이런 집을 그냥 방치하면 화재가 발생하거나 쓰레기 더미가 쌓이기도 하지. 범죄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고. 이런 빈 집, 빈 건물을 리모델링해 환경을 개선하고 지역에 맞는 주거·문화?복지시설 등으로 재생할 수 있어. 공유주택(셰어하우스), 숙박 시설, 커뮤니티 공간, 작업실 등으로 활용하는 거지.”
김 대표의 설명을 들은 뒤 학생들은 자신들이 공유주택 입주민이라고 가정하고 공동생활 규칙을 정하기로 했다. 3개의 모둠으로 나눠 토론한 뒤 모둠별 규칙을 발표했다.
■ “셰프가 꿈이라면 식재료 잘 알아야”
‘두터비 파리를 물조’의 김사랑양이 자기 조의 규칙을 발표했다.
“반려동물 키우지 않기, 이성 친구 1박 금지, 공과금은 엔분의 1로 나눠내기, 방청소·설거지·빨래 등은 각자 하기, 외부인 출입 시 미리 연락, 흡연 금지, 쓰레기 돌아가며 버리기, 늦은 밤 통화 금지, 매월 마지막 주 화요일 대청소”
흡연 금지, 깨끗하게 청소하기, 반려 동물 금지, 이성 친구 숙박 제한 등 3개 모둠의 규칙이 비슷한 게 많았다.
이날 진관고등학교가 이런 진로·체험 교육을 마련한 건 우선 관내에서 활동하는 사회적 기업을 소개함으로써 지역 사회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여기에 학생들이 직업·진로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다.
홍정림 학생부장은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뒤 대기업, 또는 잘 알려진 직업만 선택하는 것을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사회적 기업이라는 또 다른 진로·직업도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이번 수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수업에는 두꺼비하우징을 비롯해, 페어트레이드코리아(공정무역), 은평두레생협, 바늘한땀협동조합, 지노도예학교(도자기), 마을무지개(다문화 관련 기업), 우리동네텃밭협동조합(도시농업), 트래블러스맵(공정여행),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좋은이웃(두부 제조 업체) 등이 참여했다.
2학년 10반에서는 우리동네텃밭협동조합의 수업이 열려 문명희 이사장이 도시농업에 대해 설명했다. 문 이사장은 원래 시민단체 활동가로 도시농업에 지난 2010년부터 관심을 가졌다. 현재 우리동네텃밭협동조합은 은평구에서 가까운 경기도 고양 원흥 지역에 800평 정도의 텃밭을 가지고 있고 50가족이 회원으로 참여 중이다. 올해는 200평 부지에서 토종벼도 수확할 예정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농업하면 벼농사나 채소 농사 정도만 떠올리고, 시골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문 이사장은 다양한 도시농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양봉은 시골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지? 한데 도시에서도 가능해. ‘어반비즈서울’이라는 곳에서는 도심에서 꿀벌을 키우고 판매하는 활동을 해. 7년째 열리고 있는 도시형 농부시장 ‘마르쉐@’도 있어. 유기농 농산물·공예품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거지. 미생물도 연구하면서 농자재도 개발·보급하는 ‘흙살림’, 커피 찌꺼기로 퇴비를 만드는 ‘에코11’, 20·30대 젊은이들이 모여 도시농업을 고민하는 ‘파릇한 절믄이’도 있지.”
어반비즈서울은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 도심에 20여곳의 양봉장을 운영 중이다. 파릇한절믄이는 서울 마포의 한 건물 옥상에 200평 정도의 텃밭을 운영 중이다. 올해는 맥주 원료인 홉을 3㎏ 정도 생산해 수제맥주 제조업체에 판매하기도 했다. 3㎏이면 적은 양 같지만 15ℓ짜리 케그(대형 맥주통) 12개의 맥주를 만들 수 있는 상당한 양이다.
문 이사장은 “요즘 셰프가 꿈인 아이들이 많다. 한데 좋은 셰프가 되려면 식재료를 잘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직접 키워보는 게 좋다”며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수확한 채소를 이용해 직접 요리를 만들어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이 분야에 청소년들이 장래 진로?직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공정여행가 되려면 인문학적 소양 필요
그는 “도시농업은 도시의 빈 공간을 활용할 수 있고 삶의 근거지에서 가까우니까 좀 더 자주 찾을 수 있다”며 “도시농업을 통해 아이들은 생태 감수성을 키울 수 있다. 또 도시 텃밭은 이웃과 어울리는 공간이 됨으로써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진로·체험 수업에 강사로 나섰던 공정여행 사회적 기업인 트래블러스맵의 변형석 대표이사는 “지금 세계 상당수 유명 여행지에서 주민들이 관광객을 반대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물가는 오르고 쓰레기는 많이 발생하는데 정작 여행 사업의 이익은 기존 대형 업체들이 가져가기 때문”이라며 “낙후 도심이 개발되면서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빗대 이를 투어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정여행은 해당 지역 주민과 상생을 도모한다. 일반 패키지여행 상품보다 약간 비싸 보이지만 관광객을 상대로 ‘쇼핑몰 뺑뺑이’를 돌리는 이른바 옵션이 없어 실제로는 더 저렴하다. 여행객 입장에서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자유여행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며 “공정여행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면, 현지인들하고 친해지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해외봉사활동을 해보면 좋고 특히 인문학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인문학적 소양이란 예를 들어 이른바 선진국과 저개발국의 차이는 왜 벌어지는지,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등에 관해 고민해 보는 것이다.
김태경 <함께하는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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