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아시안컵을 앞둔 여자 축구 대표팀의 이민아(7번) 선수가 지난 3월27일 경기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능곡고와의 연습 경기에서 공을 다투고 있다. (파주=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지난여름, 교실에는 한바탕 떠들썩한 열풍이 불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문이다. 남자 17명, 여자 13명으로 이뤄진 초등학교 3학년 우리 반은 여러 종목 가운데 특히 축구에 빠졌다. 너도나도 ‘손흥민’, ‘조현우’, ‘이승우’가 되겠다며 자신의 성에 인상적인 축구 선수의 이름을 붙여 불러 달라고 했다.
무더위가 조금 가신 9월의 어느 날, 가을바람이 시원하게 불기 시작해 우리 반은 운동장에서 자체 축구 시합을 열기 시작했다. 보통 남학생은 12명, 여학생은 7명 정도 참여한다. 그럼 축구를 하지 않고 남은 학생들은 무엇을 했을까? 몸이 아파 참여하지 않은 건 아니다.
필자가 학생일 때, 남학생들은 선택지 없이 강제로 축구에 참여해야 했다. 여학생들은 피구를 하거나 빈 공간에서 술래잡기, 줄넘기 등을 했다. 옛날에는 남학생이 축구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선생님들 대부분이 “남자가 공 좀 찰 줄 알아야지, 수비라도 해 봐, 왜 이렇게 겁이 많아”라는 식의 말로 ‘강제 참여’를 유도했다. 반대로 당시 여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는 코웃음 치듯 “그래 한번 해 봐, (여자인) 네가 하면 얼마나 하겠니”라며 ‘깍두기’ 역할을 줬다.
우리 반은 ‘남학생’이라도 축구를 필수로 할 필요 없다. 축구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이 있거나 라켓 운동을 더 좋아하는 친구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운동을 하면 된다. ‘여학생’이라도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스스럼없이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깍두기’가 아닌, 동등한 선수로서 말이다.
최근 옆 반과 반 대항 축구·피구 경기를 했다. 옆 반 선생님에게 “피구 할 사람들은 피구장에서 경기하고, 축구 할 학생들은 저에게 보내 주세요!”라고 한 순간, 우리 반 친구들이 옆 반 축구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남자는 한 명도 빠짐없이 축구를, 여자는 무조건 피구를 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개의 성별로 깔끔하게 정리된 팀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교사의 일방적인 결정이 있었다.
축구 경기를 시작하기 전, 선수들을 마주 보게 한 상태에서 “축구하기 싫은 친구들은 피구를 하러 가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건네자마자 옆 반에서 5명이 넘는 남학생이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활짝 웃으며 재빨리 피구장으로 뛰어갔다. 축구하기 싫어 죽겠다며 터덜터덜 끌려오던 걸음걸이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바뀌던 순간이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교육 현장에서는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운동을 선택할 수 없다. 젠더 감수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요즘에도, 교실과 운동장에서는 ‘남자 운동, 여자 운동’을 구분 짓는다.
남학생이라고 꼭 학교에서 축구를 할 필요는 없다. 반면 여학생들이 축구할 기회는 왜 쉽게 제공되지 않을까? 넓은 운동장은 왜 항상 남학생들 차지인 걸까? 왜 이런 의문은 자연스럽게 무시되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젠더 교육은 교과 시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하는 모든 현장에서 자연스레 이뤄질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선택과 교사의 존중이다. 더 이상 아이들이 성별 때문에 선택권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진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답게’ 나아가려는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한 때이다.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 정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