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졸업 뒤 고교 진학을 미루고 1년간 쉬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꽃다운친구들. 꽃다운친구들 제공
지난 9월29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공공그라운드 지하 1층에서는 특별한 발표회가 열렸다. ‘꽃다운친구들 연구 프로젝트 1년 발표회?방학을 1년 가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였다. 꽃다운친구들(이하 꽃친)은 중학교 졸업 뒤 고등학교 진학을 미루고 1년간 방학을 선택한 청소년과 그 가족들의 모임이다. 1주일에 2번 모임을 갖고 나머지 3일은 학생들이 스스로 생활한다.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각종 모임·세미나·발표회는 어떻게 하면 학업 성적을 올릴까, 어떻게 하면 지식을 더 잘 습득할 수 있을까, 이런 게 주요 내용이지만 꽃친은 거꾸로다. 어떻게 하면 푹 잘 쉴까?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니는 게 스쿨링, 집에서 혼자 공부하거나 대안학교 등에 다니는 걸 디스쿨링이라 한다면 꽃친은 언스쿨링이다. 디스쿨링과 언스쿨링의 차이는 앞은 정규 학교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짜인 교육과정에 따라 학습을 하지만 언스쿨링은 이런 게 없다.
“올해가 꽃친 3기째다. 매해 10명 정도의 아이들이 참여하는데, 1년을 쉬고 난 뒤 되레 아이들의 진로 목표가 더 확실해지고 뚜렷해진다. 비우면 채워진다.” 꽃친 이수진 대표의 말이다. 혜민 스님의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비슷하다. 과도한 학습량과 무한 경쟁, 학원 뺑뺑이에 아이들의 두뇌는 지쳐 멈춰버린다. 쉬면 멈췄던 두뇌가 다시 기력을 충전해 활동하게 된다는 말이다.
“중학교 다닐 때 내가 나중에 뭘 하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주위에서 자꾸 물어보니 짜증이 났다. 꽃친 1년 간 학교를 쉬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다. 미디어 모임에 참가해 영화제작을 하고 실용음악도 배워봤다. 고전문학반 모임에 참여해 책도 읽었다. 2달에 한 번 여행도 다녔고 다양한 체험 활동을 했다. 꽃친 1년간 50%는 쉬고 50%는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이게 큰 도움이 됐다.”
■ 어떻게 푹 잘 쉴까 고민
현재 고교 2학년인 이지우군은 3년 전 꽃친 1기로 참여했다. 이군은 “현재 고등학교에서도 진로 체험 설명회를 많이 하는데, 대개 강의식이다. 친구들은 그냥 귀로 듣는 것으로 그치는 듯하다”며 “나는 1년간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고 사고의 폭을 넓혔던 탓인지 그런 진로 관련 강의에서도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이군이 1년을 쉬기로 결정한 것은 애초 본인의 판단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권유했다. 이군은 처음에는 두려웠으나 꽃친 1기 설명회를 듣고 1년간 쉬기로 결정했다.
이군의 어머니 이미경씨는 “아무 생각 없이 고등학교 가는 것보다는 자기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다고 생각해 아들에게 ‘1년 쉼’을 제안했다”며 “나도 고등학교 때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을 읽고 감동 받았다. 한데 그런 생각에 빠지면 낙오된다고 생각하고 딱 접었다.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사는 삶이 올바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군의 여동생도 올해 꽂친 3기로 참여해 학교를 쉬고 있다.
1년간 학교생활을 멈추기로 할 때 부모보다 아이들이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또래 아이들과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결정은 되레 부모의 결단이 더 중요하다.
또 하나는 나중에 고등학교 진학했을 때 적응을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다. 이미경씨는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지우는 일반고로 진학했는데 적응 문제가 전혀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급 반장을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부담임’이라고 할 정도로 잘 해냈다”고 소개했다. 요즘 학급반장은 대개 아이들의 선거로 뽑는다.
이지우군은 “내 첫인상이 좋은 탓인지 친구들이 나를 학급 반장으로 뽑아줬다. 일반고 생활에 잘 적응할지 걱정했는데 문제없었다”며 “꽃친 1기의 경우 대안학교에 가거나 홈스쿨링 하면서 검정고시 준비하는 아이도 있지만 일반고·특성화고 진학한 친구들도 절반 정도인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9월29일 발표회 때 이종철 기독교학교교육연구소 연구원이 꽃친에 참여한 청소년과 부모들의 의식 변화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청소년 28명, 부모 40명을 대상으로 2주간 조사했는데 아이들은 ‘나를 더 알게 됐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타인에 대한 관심이 늘고, 대인관계 능력이 향상됐다’, ‘불안을 이기고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됐다’도 많았다.
꽃친은 1주일에 2번 모임을 갖는다. 따라서 나머지 3일은 자기 마음대로다. ‘홈뒹굴링’을 하든지, 혼자서 요리를 하든지 마음대로다. 그러나 이는 무조건 방치를 뜻하지는 않는다. 3일간은 모임이 없으므로 결국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중요하다.
이종철 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꽃친 1년으로 일어난 가족의 변화에 대해서 ‘부모가 불안을 이기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의연하게 아이를 기다릴 수 있게 됐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부모가 자녀를 믿고 지지해줄 수 있게 됐다’, ‘아이와의 대화가 늘었고 깊어졌다’, ‘자녀에 대해서 새롭게 더 알게 됐다’는 응답도 많았다.
이 연구원은 “조사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1년을 쉬면 적어도 디톡스(독기 빼기)는 될 것이다’라는 한 학부모의 말이었다”며 “경주마처럼 옆은 못 보고 앞만 보고 달리게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아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의 문제점은 교육을 오로지 정부나 사회가 시켜주기만 바랄 뿐 가정의 교육적 역할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삭막한 가정에서 제대로 된 교육은 이뤄지기 힘들다. 부모들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학교 졸업 뒤 고교 진학을 미루고 1년간 쉬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꽃다운친구들. 꽃다운친구들 제공
■ “적어도 디톡스는 될 것이다”
이날 발표회에서 강영택 교수(우석대 교육학과)는 “school의 어원이 헬라어로 schole/skhole이고 이 단어는 ‘여가, 쉼, 학습된 토론, 강의를 위한 장소’의 뜻이 있다. 학교 어원이 여가와 쉼이었다는 건 아주 흥미롭다”고 밝혔다. 그는 “고대 그리스에서 여가(skhole)는 ‘일이 없음’이 아니라 관조(contemplation)였다”며 “그리스 철학은 관조를 사람이 사물의 본질이나 신적 존재에 대한 지식을 얻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봤다. 그들은 관조를 통해 사람의 영혼이 한 단계 높은 단계로 고양된다고 믿었다”고 소개했다.
강 교수는 “생산성 중심 시각에서 교육이란 결국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쉼이 성과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다”며 “그러나 교육의 지향점이 인간다움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본다면, 전혀 쉬지 않고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과 1년 동안 쉬면서 자기자신을 대면한 아이들은 성인이 됐을 때 삶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꽃친 이수진 대표는 “꽃친 활동의 4가지 영역은 ‘자봉여관’(자기탐구, 봉사활동, 여행유희, 관계형성)”이라며 “요즘 100살 인생이라고 하는데, 1년은 아이들 삶의 100분의 1이다. 청소년 시기에 한 번 쉬는 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꽃친(
www.kochin.kr)은 4기 모집 설명회를 오는 27일 오후 2시 서울NPO센터에서 연다. 궁금한 사항은 070-4848-2959로 연락하면 된다.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ktk7000@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