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김상곤 교육부총리가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지난 8월17일 교육부가 2022년 대입개편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수능위주 정시 비율을 30% 이상 확대하도록 각 대학에 권고하고, 수능 절대평가 과목을 제2국어와 한문으로 확대하고(기존 영어와 한국사만 절대평가), 고교학점제를 애초 계획보다 3년 늦춰 2025년부터 전면 시행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7월 550여명의 시민참여단이 2차례 숙의 토의 결과를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1안(수능 상대평가, 수능 정시 45% 확대)과 2안(선발은 대학 자율,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이 각각 52.5%와 48.1%를 얻었다. 그러나 교육부 안이 발표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진보·보수 진영의 대립은 수그러들 줄 모른다. 되레 더 격화하는 양상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좋은교사운동 등이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 교육공약 되찾기 국민운동’은 지난 9월 15일 촛불문화제를 열고 이번 대입 개편안을 비판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구본창 정책국장은 “교육부 2022대입개편안은 2015개정교육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2015개정교육과정을 학생중심, 진로맞춤형 교육과정이라고 규정했는데, 이번 대입 개편안은 이를 전혀 달성할 수 없도록 해놓았다”고 비판했다.
2015개정교육과정은 과정중심평가, 학생참여형수업, 문?이과 지식통합을 핵심으로 한다. 따라서 수업에서 토의·토론, 실험?실습, 프로젝트 활동 등을 중시한다. 한데 오지선다형인 수능 위주 정시 비중이 늘면 각 고등학교는 대입에 맞춰 수업을 진행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교육과정 따로, 대입 준비 따로’가 될 거라는 것이다.
구 국장은 “2022 대입개편이 필요했던 근본 이유는 2015개정교육과정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교육과정이 바뀌었다면 당연히 수능도 바뀌어야 한다”며 “지난 2015년 교육부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 목표라고 밝혔다.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은 지식암기 중심의 교실 수업이 토론·탐구·체험 중심으로 바뀌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교학점제 본격 도입도 3년이나 미뤘다. 이는 문재인 정부 스스로 공약을 파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교학점제에서는 대학처럼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 수강한다. 과도한 성적 경쟁과 입시 부담을 덜고, 고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자기 진로를 설계해 그에 맞게 과목을 고르게 한다는 취지였다.
교육개혁을 위해서는 2015개정교육과정에 맞게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기존 정시 비중 유지, 수능 시험범위는 공통과목으로 한정, 수능최저학력기준 완화 및 폐지, 학종 공정성 담보를 위한 비교과 영역 대폭 축소, 고교학점제의 전면 도입 등을 해야 하는데 단 한 가지도 이뤄진 게 없다는 게 구 정책국장의 지적이었다.
시민단체 ‘교육을 바꾸는사람들’ 산하 이종태 21세기교육연구소장은 “2015개정교육과정에 맞게 교사들이 수업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이번 대입 개편안으로 교육 현장에서 좌절감이 벌써 퍼지고 있다”며 “학교는 다시 교육방송(EBS) 문제 풀이 중심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소장은 “2015개정교육과정은 박근혜 정부에서 준비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0년대부터 창의?융합이 미래의 핵심역량이라는 것을 강조했고, 그걸 한국은 15년이나 뒤늦게 받아들인 게 2015개정교육과정”이라며 “한데 이마저도 이번 대입개편으로 껍데기만 남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고교학점제를 2025년으로 미뤘는데 이건 다음 정권 임기에 해당한다. 고교학점제 제대로 하려면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준비 안 하겠다는 뜻”이라며 “결국 다음 정권에서도 고교학점제는 어렵고 2028~2029년에나 될까 말까 한 지경이 됐다. 한국 교육은 10년 후퇴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능 정시 확대를 주장했던 쪽에서는 이번 교육부 대입개편안이 시민참여단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시확대추진학부모모임 박소영 대표는 “학종의 취지가 좋다는 건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인정한다. 그러나 시행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그 문제점 때문에 공론화 과정까지 거치게 된 것”이라며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학종이 교사나 학교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문제점을 해결하라는 게 학부모들의 요구”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공론화위에서 수많은 토론과 논쟁 끝에 결과가 나왔고 시민참여단은 수능 정시 확대를 훨씬 선호했다. 그런데 교육부가 오차 범위를 내세워 진보 단체들의 눈치를 보고 어정쩡하게 결론을 내니 욕을 먹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수능위주 전형 비율 30% 산출 근거는?
실제 교육부 보도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돼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참여단이 수능위주전형의 일정한 확대를 요구한 것으로 판단하였고, 일반대학의 적정 수능위주전형 비율에 대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21.2%가 30%~40%를, 27.2%가 40~50%를 적정 수준으로 응답하였으며, 누적통계로 보면 응답자의 47.3%가 40% 이상을, 68.5%가 30% 이상을 적정 수준으로 보았으며, 응답자가 적절하다고 본 수능위주전형 비율의 평균은 약 39.6%라고 볼 수 있음. 그러나 대학이 놓여있는 다양한 상황, 대학별 선발방법 비율의 다양성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은 “수능 절대평가는 진보, 수능 상대평가는 보수로 구분하는 프레임 자체가 잘못”이라며 “2015개정교육과정, 수능 한국사?영어 절대 평가 다 박근혜 정권이 만든 것이다. 학종은 박근혜 정부에서 대폭 확대됐다. 수능 절대평가나 학종 찬성이 곧 진보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학생부 기록이 대입 자료가 되는 순간 교사들이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의 온정주의적 문화에서 학생부 기록이 객관적일 수가 없다. 교사가 양심대로 쓰는 순간 학부모와 교장으로부터 압박을 받는다”며 “학종 작성 실태가 어떤지 시도교육청이 관할 고등학교를 상대로 조사를 안 한다. 실제 조사를 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 한다”고 주장했다.
■ “고교학점제 준비해놓은 게 없어”
이 소장은 “이번 대입 개편안을 놓고 결과적으로 사교육 업체에 유리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사교육 업체는 교육정책에 발언권 자체가 없다. 수능 비중이 줄어든다고 학원 관계자들이 머리 띠 매고 시위 못 한다”며 “되레 교육부의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금과 관련 있는 일부 교수들, 진로진학교육협의회 관련 교사들이 학종의 이해 관계자들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서울 목동고 박성현 교사는 “국민공론화위 1안은 학종을 줄여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는 것이고, 2안은 대입 정시 비중을 늘리면 학종 중심의 기존 대입 설계안을 고쳐야 한다는 입장이니까 각 진영에서 반발이 나오는 듯하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입에 큰 영향을 주는 상위 15개 대학에서 학종 비중을 줄일지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상위 15위권 대학들은 논술이나 특기자 전형 등 비 학종 트랙을 손봐서 정시 비율을 조금 늘리는 정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교사는 “고교학점제를 하려면 교원 연수 및 수급, 과목 개설 및 안내 등 준비할 게 엄청나다. 한데 박근혜 정부에서 선행 준비를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다”며 “현 상태로는 어차피 2022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은 힘들었다. 고교학점제 연구학교 105개 지정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태경 <함께하는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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