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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상담, 이번에는 아버님이 와주세요”

등록 2018-09-10 21:41수정 2018-09-10 22:02

아이와 아빠. 게티이미지뱅크
아이와 아빠. 게티이미지뱅크
[함께하는 교육] 초등 교실 속 젠더 이야기
학교엔 일 년에 두 번 학부모 상담 주간이 있다. 한데 ‘학부모’ 상담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늘 어머님들이 방문하신다. 교사로 근무한 9년 동안, 아버님의 방문은 한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그동안은 당연하다 여겼는데, 젠더 교육을 시작하고 보니 의문이 드는 거다. 아이 교육은 왜 엄마의 몫인가. 전업 주부이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비율이 높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글쎄, 그건 원인이 아니라 ‘육아는 엄마가’라는 우리 사회의 오래된 고정관념이 낳은 결과 아닐까.

상담 신청서를 나눠주며 이번엔 아버님을 모실 거라니까 아이들은 눈썹을 팔자로 긋고 한숨 쉬며 말한다. “으아~ 아빠 바쁜데! 못 오실 텐데!” 그러게, 바쁘실 텐데. 제안이 강요로 느껴질까 염려했다. 우선 어머님들께 ‘양보해달라, 죄송하다’고 연락드린 뒤, 처음으로 아버님들께 떨리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결과는 어땠냐고? 전화 상담을 포함해 스물여덟 건 중 스물네 건. 고학년임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비율이었다. 이 분들을 직접 만나보니, 아이 걱정에 여념이 없고 아이 칭찬에 웃음 짓는, 어머님들과 다를 바 없는 보호자였다. 수첩을 꺼내 아이에 대한 정보를 빼곡히 적어 가시기도 하고, 내가 전혀 몰랐던 아이의 면모를 알려주시기도 한다. 멋쩍어하며 아이 교육은 전적으로 엄마가 일임해서 잘 모르겠다고, 집에 가서 아이랑 대화해보겠다며 반성도 하셨다. 그 가운데 한 아버님의 고충은 우리 사회의 문화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사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회사에 아이 상담으로 휴가 쓰는 게 눈치 보였어요. 마치 아이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잖아요. 학교에도 유난스런 아빠처럼 보일까봐 걱정됐지요.”

상담 다음날, 아이들은 무척 들떠 있었다. 늘 바쁘다던 아빠가 나를 위해 반차를 쓰고 학교에 방문해 주었다는 게 기쁜 모양이었다. 너무 자연스레 엄마만 학교에 온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한 건 없었다’며 엄마께도 감사하다고 했다. 이 작은 변화의 기운은 교실 곳곳 예상치 못한 부분까지 꾸준히 퍼져나갔다. 수업 중 내가 무심코 든 예시에 “아저씨만 그렇진 않잖아요” 하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도 “그게 남자, 여자랑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 들려왔다.

가정에서의 성역할을 깨는 경험을 준다는 점에서 ‘아버지 상담’을 젠더 교육의 일환이라고 애써 정의하지만, 사실 아직까지는 일회성 이벤트 같기만 하다. 여전히 상담 외의 다른 모든 일에 어머님께만 연락드리기 때문이다. 아직은 아버님께 함께 연락드리는 게 낯설고 어렵다. 이렇게 ‘아빠와 학교’라는 어색한 조합은 ‘엄마와 학교’ 같이 익숙한 조합과 동전의 양면이다. 맞벌이를 하는 경우에도 어머니만 자녀 양육의 절대적 책임자로 여겨진다. 엄마는 아이와 지나치게 밀착되고 아빠는 아이와 멀어진다.

기울어진 부모 역할은, 고정된 성역할을 답습하게 한다. 그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운 문화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익숙하고 편했던 것들과 자꾸 이별해보아야 한다. 아버지가 학교에 와도 이상하지 않다면, 할아버지나 외국인 엄마, 고모나 양아버지가 와도 덜 이상해 보일 것 아닌가. 세상엔 정말 다양한 양육자가 있다. 어머니 상담이 학부모 상담이 되고, 보호자 상담이라는 단어가 더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다양한 시도를 계속 해보려고 한다.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황고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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