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현재 중3 학생이 치를 2022학년도 새 대학 입시제도와 관련해 7일 국가교육회의가 ‘현행보다 정시를 확대하라’고 권고안을 냈습니다.(
▶관련기사: 국가교육회의, 2022년 대입 ‘정시 확대’ 권고) 권고안이 나오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의 전형 확대를 주장했던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공론화의 시작은 딱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절대평가 도입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았던 수능 개편을 1년 유예하고 종합적인 대입정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를 통해 여론을 수렴한 뒤,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관련기사: 현 중3 대입제도 ‘원전식 공론화’…국민이 정한다)
그렇게 등장한 국가교육회의 산하 대입개편 공론화위원회(위원장 김영란)는 지난 3일 숙의의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수능 45% 이상 확대+상대평가’를 주장하는 1안과 ‘수능 확대 반대+절대평가’를 주장하는 2안은 각각 52.5%와 48.1%의 지지를 받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내지 못했습니다. 대신 공론화위는 시민참여단에 추가로 던진 질문의 답변을 분석해 “시민참여단의 82.7%가 수능을 현행보다 확대하고, 53.7%가 중장기적으로 절대평가 과목을 확대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고 밝혔습니다.
■ 공론화 해석에 반발하는 진보·보수 단체들
애초 정해진 4개의 공론화 의제 가운데 하나를 최종 결론으로 제시하지 않고, 공론화위가 부가질문을 통해 얻은 결과를 결론으로 제시하자 진보·보수 단체들은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1안을 채택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반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통계적으로 1안과 2안의 의미있는 차이가 없다고 스스로 밝혔음에도 공론화위는 ‘상대평가-정시확대’가 국민의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조사방법도 잘못됐고 해석도 잘못됐다는 주장입니다. 공론화위는 좀 억울하다는 태도입니다. ‘학자적으로 부끄러움이 없을 만큼 단호하게 분석했다’는 겁니다. 일부 지적받고 있는 문제에 대해 공론화위에 질문을 했습니다.
[공론화위원회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기자: 결과가 오차범위 내에서 나올 때 어떻게 하겠다고 미리 정했나?
위원회: 오차범위 안에 있으면 그렇다고 발표를 하는 게 맞다고 결론을 내렸다. 전수조사는 한 표라고 더 받으면 이기는 것이지만, 표본조사는 샘플링 오류가 있다. 정책적 결정을 한다면 그건 교육부나 국가교육회의가 할 일이지 우리가 할 일은 아니었다.
기자: 왜 의제를 시나리오 방식으로 선택했는가?
위원회: 국가교육회의에서 넘어올 때 하나의 세트처럼 연결이 되어 있었다. 각 의제별로 조사를 하면 모순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능을 대폭 늘리자고 하면서 절대평가를 이야기하면 모순이다.
기자: 애초에 5점 척도 말고 4지 선다형으로 1~4안 투표를 했다면 확실한 답이 나왔을 수도 있었다
위원회: 4가지 안이 상호 배타적이지 않고 겹치는 부분이 있다. 각각의 안들에 비전과 시나리오가 있으니 판단해 보라고 한거다. 그렇게 했음에도 압도적 시나리오가 나오면 시민 다수의 판단으로 볼 수 있는 거다. A안이 마음에 들지만, B안의 이러한 점도 고려해달라 뭐 그런 그림을 보고자 한 것이다.
기자: 왜 절대적 지지를 받는 안이 나오지 못했을까?
위원회: 대표 발제자들이 충분히 시민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고 본다. 1안은 ’교육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2안은 변별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제시하지 못했다. 세밀한 자료도 부족했다.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 위주 전형으로 어떤 학생들이 선발됐는지 보기 위해 대학에 자료를 요청했는데, 주요 대학은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기자: 시민들의 숙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위원회: 공론조사 창시자로 불리는 피시킨 교수 방법론의 기본은 1박2일인데 우리는 그 2배를 했다. 숙의 정도를 판단하는 문제 정답률을 보면 신고리가 74.7%였다. 이번 시민참여단의 정답률도 74%로 유사한 수준이다. 490명 가운데 배타적인 1안과 2안에 모두 높은 점수를 준 사람은 단 7명에 불과했다.
기자: 부가설문 결과로 주요 설문 결과를 뒤집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위원회: 숙의 들어가기 전 미리 준비된 조사였다. 오차 범위 문제도 있지만, 4안과 같이 단순히 수능을 늘리라고 했을 때 어느 선까지 늘려야 하는지도 당연히 물어봐야 했다. 부가 질문으로 돼있지만 핵심 질문이기도 했다.
기자: 공론화 이후에도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공론화 이슈를 잘못 선정한 것일까?
위원회: 대입안 자체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문제다. 대한민국 안의 학벌문제를 그냥 두고서 어떤 안을 가지고 놓더라도 사교육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필요하다면 전문가들이 결론내지 못하는 것을 시민들이 결정하게 하는 제도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여러 공론화가 예정돼 있는 것으로 안다. 공론화를 하기 전에 이 사안이 공론화에 적합한 사안인지 좀더 철저히 검토했으면 좋겠다
■ 첫 단추 잘못 끼운 대입개편 공론화
공론화위 관계자는 시민참여단의 숙의가 훌륭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앞으로는 어떤 주제든 공론화에 부치기 전 적합성을 따져보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이런 우려는 대입제도를 공론화로 결정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나왔습니다. 공론조사 권위자인 제임스 피시킨 스탠퍼드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등주의를 강조하는 프랑스식 교육과 수월성을 강조하는 영·미식 교육은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상황이라면 공론조사가 필요하다”며 국가 교육철학을 토론에 부치는 것은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나라면 미국 대입시험인 SAT 평가 방식을 공론에 부치지는 않겠다”고 지적했습니다.
수능 위주 전형의 비율이 공론화 범위에 포함됐을 때도 이런 지적은 나왔습니다. 진보교육단체 연합인 ‘학교교육정상화를 위한 교육혁신연대’ 역시 “선발 방법의 비율을 공론화했을 때 발생할 혼란과 국민적 갈등은 명약관화하다“며 선발 방법의 비율을 공론화 범위에서 제외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 특별위원장 역시 “수능 비율은 전국적으로 일률적 비율로 제시할 수 없고 정해도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죠.
이에 여러 교육 전문가들은 첫단추가 잘못 꿰어졌다고 지적합니다. 지금처럼 교육부가 대입 이슈를 모두 던져 놓고 공론화로 결정해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현재 정책인 고교학점제 등과 연동해 함께 작동할 수 있는 대입전형을 모색하고 그 안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물었어야 한다는 겁니다.
국가교육회의로부터 권고안을 넘겨받은 교육부는 최종안을 발표합니다.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교학점제 등 정책과 어긋나는 국가교육회의 권고안을 어떻게 발표할 지 주목됩니다.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처럼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고교학점제는 수능이 확대되는 환경에서는 그 취지을 살리기 어렵습니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수능 확대) 제도가 학교 현장으로 들어가서 혼선과 잡음을 내고 그 후폭풍을 경험하고 나서야 다시 길을 돌아갈 것이냐”고 비판합니다.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는 “‘식물 교육부’로 전락한 교육부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2022학년도엔 최소한의 변화를 택하고 2025학년도에 제대로된 개혁을 위한 첫단추를 다시 꿰어나가겠다고 밝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교육부의 최종 선택은 8월 중후반께 발표됩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