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이 확정돼 공익위원들이 투표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한겨레 사설] ‘최저임금 8350원’ 갈등 해결, 정부·국회 사활 걸어라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 시급 8350원으로 14일 결정됐다. 외관상으론 두해 연속 두 자릿수 인상이 됐지만,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소상공인 등 사용자는 사용자대로 반발이 크다. 16.4%가 올랐던 지난해보다 갈등은 더 첨예화됐다. 정부와 국회는 영세상공인에 대한 직접 지원책뿐 아니라 이런 갈등을 증폭시키는 구조 해결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내년 시급 8350원을 월로 환산하면 주휴수당을 포함해 174만5150원(월 209시간 기준)이다. 공익위원 안은 ‘중위임금’이 아니라 ‘평균임금’을 기준 삼는 등 진전된 노력이 엿보이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 파장과 고용 충격 논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것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우선 10.9% 인상효과가 온전히 해당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 산입범위 개편에 따라 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단계적으로 내년부터 최저임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결정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에서 멀어진 것은 물론, 산입범위 확대로 실질 인상률은 한 자릿수에 그치는 ‘최악의 인상률’이라고 반발했다. 반면 상여금이나 복리후생비와 별 관계 없는 소상공인들은 10.9% 인상의 충격파를 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2000년과 2001년에 잇달아 최저임금이 16.6%와 12.6%씩 인상된 적 있지만, 최저임금 절대금액이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적었던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는 건 무리다. 소상공인연합회 등은 편의점의 월 1회 공동휴업이나 최저임금 불복종을 계획하지만, 업주들은 ‘휴업할 여지도 없다’고 호소하는 게 진짜 현실이다.
기획재정부가 이번주 내놓을 최저임금 후속대책으로는 지난해 도입한 일자리안정자금과 함께 노동자뿐 아니라 자영업자 저소득 가구에도 혜택을 줄 수 있는 근로장려세제(EITC)를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시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음은 정부 또한 잘 알 것이다.
정부는 좀더 명확한 메시지를 내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 500만명의 생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최저임금 제도가 소득 양극화 개선에 가장 효과적인 정책수단이라고 본다면, 지금처럼 공익위원들에게 떠맡기는 게 아니라 큰 폭 인상을 감당할 수 있는 제도적·구조적 대책을 함께 내놔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카드수수료 개선 티에프를 구성중인데, 자영업자들이 체감할 방안이 시급히 나와야 한다. 그럼에도 2020년 1만원 공약 달성에 시간이 걸린다고 판단된다면, 로드맵을 제시하며 솔직하게 노동계의 이해를 구하는 방안이 차라리 낫다. 국회는 ‘서민을 위한 정치’를 매번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 등 계류중인 민생법안 처리에 최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을’들의 싸움 속에 이익을 얻는 건 ‘갑’뿐이다. 이 구조를 바꿀 책임이 정부와 국회에 있다.
[중앙일보 사설] 대통령이 최저임금 1만원 공약 내려놓고 대국민 설득해야
내년도 최저임금이 2년 연속 두 자릿수로 올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해 7530원보다 820원 오른 8350원으로 지난 13일 결정했다. 이로써 2017년 6470원이던 최저임금은 2018년 16.3%, 2019년 10.9% 올라 2년간 29% 급등했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사용자 측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최저임금 동결과 업종별 차등 적용을 주장했다. 근로자 측은 1만790원으로 43.3% 올려야 한다는 협상안을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사용자 측이 위원회 참여를 거부해 공익위원과 근로자위원들만으로 최종 결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확정안에 대해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은 ‘안 주는 게 아니라 지불능력이 안 돼 못 주는 것’이라며 불복종 운동마저 거론하고 있다. 노측도 ‘상여금의 최저임금 산입과 물가 등 이런 저런 요인을 빼면 실질 인상률이 2.2%밖에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런 갈등의 근본 원인은 최저임금을 경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김동철 바른미래당 비대위원장이 지적했듯 ‘최저임금은 정부가 정하지만 비용은 시장이 감당하는 문제’다. 우리 기업과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지를 근거로 최저임금이 정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은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1만원 달성’ 공약에 맞춰 진행돼 왔다. 이러다 보니 결정된 최저임금에 대해 사측은 ‘지키지 못하겠다’고, 노측은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됐다’고 각각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공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건 좋다. 하지만 현실을 살피는 것도 지도자의 책무다. 올해 한국 경제는 3% 성장도 버거운 형편이다. 게다가 반도체 등 일부 산업만 특수를 누릴 뿐 조선·철강·자동차 등 주력산업 다수가 경기 침체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많은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은 생존의 위협 속에서 고군분투하느라 지금의 최저임금도 감당할 여력이 없다. 이들이 “최저임금 불복종” “폐업 불사”를 외치며 반발하는 이유다. 정부도 이를 인정해 카드 수수료 인하나 임대료 상승률 제한 등의 보완책을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또 다른 시장 왜곡이라는 풍선효과를 낳고 있다. 2020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될 경우 적용 대상 근로자가 전체의 25%, 500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도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의 비현실성을 말해 주고 있다.
대선 공약에서 비롯된 문제는 대통령이 풀 수밖에 없다. 그래야 당사자인 노사와 중재자인 정부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필요하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지지층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한반도 대운하’와 ‘노령연금 100% 지급’ 공약을 “100% 지키지 못하게 됐다”며 사과한 바 있다. 청와대가 15일 내놓은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유체이탈식 화법으로는 갈등을 풀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1만원 공약부터 내려놓고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할 때다.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최저임금제 우리나라의 최저임금법은 1986년 12월31일에 제정·공포되었다. 2000년 11월24일부터는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다. 최저임금법에서는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는 데 있다고 입법취지를 명시하고 있다. 최저임금제도는 소득 불균형이 심화되고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양극화를 개선하는 데 있어 효과적인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최저임금이 적정한 수준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프랑스의 경우는 2005년, 최저임금이 전체 노동자 소득의 중간 값(가장 큰 값과 가장 작은 값의 평균값)의 60%에 다다른 후 추가 인상을 안 하고 있다. 더 이상 오를 경우 저임금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들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올해 인상으로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전체 노동자들의 소득 중간 값의 59.4%에 이르게 되었다. 최저임금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지표가 될 만한 자료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매년 8월5일까지 결정, 고시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해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극심한 노사갈등이 벌어지곤 한다. 올해도 사용자 측은 업종별 최저임금 차별 적용 및 최저임금 동결을 요구하며 최종 협상을 거부했다. 노동자 측도 상여금 지급 방식 등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렇듯 이번 최저임금안도 노사 양측 모두의 반발에 부딪혀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도 공약사항인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어렵다며 국무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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