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육]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도입 논란
2012년 6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학생들이 철학 바칼로레아 시험을 치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떨어져
논술형 시험 도입 주장 나오지만
제주교육청만 구체적인 움직임
다른 교육청은 “검토중” 원론적 입장
공정성·신뢰성 논란에 발목 잡혀
내신 상대평가에서는 힘들다는 지적
기본·핵심 지식도 중요하다는 반론도 ■ 제주교육청, IB이사회에 한국어로 번역 요청 제주교육청 정책기획과 이강식 교육연구사는 “아이비 이사회의 허가 결정이 나면 1~2개 학교를 시범학교로 지정해 도입할 계획”이라며 “이러면 주변 학교로 확산돼 제주 교육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아이비는 2015개정교육과정의 취지하고도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5개정교육과정은 과정·역량중심 평가, 학생참여형 수업, 문이과 지식통합이 핵심 목표다. 우리나라 학생과 학부모들은 논술형 시험 경험이 거의 없다. 논술 시험 채점은 사람이 하므로, 많은 이들이 공정성·신뢰성 문제를 제기한다. 상당수 시도교육감이 오지선다형 시험에 부정적이면서도 선뜻 논술형 시험을 도입하지 못하는 것도 공정성·신뢰성을 둘러싸고 반발이 나오는 걸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강식 교육연구사는 “공정성·신뢰성 때문에 아이비를 도입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논술형 시험 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엄밀한 채점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데 개별 교사 차원에서는 힘들다”며 “아이비는 역사가 50년 가까이 됐고 국제적으로 공정성·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교육청이 아이비를 한국어로 번역하려는 건 공교육에 적용하기 위해서다. 이미 아이비를 도입한 경기외국어고, 도입을 고려중인 충남 삼성고, 인천 포스코고 등은 영어 아이비를 사용한다. 이 학교들은 모두 자사고로, 전체 학생이 아니라 외국 유학을 계획 중인 1개 반(학년 당)에만 아이비를 적용한다. 아이비 도입을 주장하는 쪽은 논술형 시험이야말로 창의성·능동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시험이 바뀌어야 아이들의 공부 방법이 바뀐다’고 주장한다. 경기외국어고 재직 때 아이비 도입을 주도했던 충남 삼성고 박하식 교장은 “아이비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대다수가 만족해하고 대학에 가서도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며 “아이비는 대학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학문적 능력을 키워준다. 과제 집착력·탐구력이 크게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비는 130개 국가에서 도입했다. 수험생의 재채점 요구도 수용할 정도로 공정성·신뢰성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 “시험이 바뀌어야 공부 방법 바뀐다” ‘아이비 전도사’인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 소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객관식 상대평가를 실시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며 “아이비 도입으로 한국에서도 논술형 시험이 가능하다는 게 입증되면 가칭 케이비(KB·한국형 바칼로레아)로 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대자동차가 제품을 잘 만들기 위해 벤츠 몇 대 도입해 분석하듯이, 지금 아이비 들여오자는 건 케이비를 위한 사전 준비”라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임진왜란·병자호란·정묘호란 발생 순서를 고르는 문제를 잘 맞힌 학생하고, ‘전쟁의 결과가 사회에 미친 영향’ 논술을 잘 쓴 학생하고 누가 학습량이 많겠는가”라며 “아이비는 학습량이 엄청날 뿐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생산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연 한국에 논술형 시험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서울 미양고 이기정 교사는 “원론적으로는 논술형 시험에 찬성한다”며 “그러나 현행 한국 내신 상대평가 체제에서 일부 몇 개 학교는 몰라도 공교육 전체에 아이비 도입은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제주도는 국제학교가 4개나 있고 인구가 적다는 특수성이 있다. 논술형 시험을 공교육 전체에 들여오려면 내신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신 상대평가에서는 논술 내용이 아무리 뛰어나도 다른 학생과 비교해서 평가하므로 결국 줄 세우기가 된다. 윤리 ‘이현쌤’으로 유명한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은 “일본이 아이비 학교를 200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라지만 그래 봐야 전체 고교의 4%”라며 “한국 1600개 고교 4%에 아이비를 도입하면 60~70곳이다. 결국 ‘고교서열화’, ‘특별한 학교’가 탄생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논술형 시험만이 해결책이라는 식의 담론이 유행한다. 프랑스 바칼로레아가 200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그들은 그때부터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한 것인가?”라며 “기본 지식, 핵심 지식이 있어야 창의력·응용력이 나온다. 지식 기반이 없으면 무슨 지식을 찾아야 하는지,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우리나라 교육계는 한때 핀란드가 유행하더니 이제는 바칼로레아 바람이 분다”며 “아이비는 분명 훌륭한 시험이지만 나라마다 상황과 조건이 다르다. 국내 도입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ktk7000@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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