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그냥 개발자 아닌 ‘정보소외계층 돕는 개발자’ 될래요

등록 2018-07-02 20:10수정 2018-07-02 20:16

지난 칼럼들을 통해 플래닝과 독서법을 소개해드렸죠. 이 두 가지는 청소년들이 ‘자기경영자’로 살 수 있도록 돕는 도구들입니다. 자기 삶의 경영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진로’를 정하는 일입니다. 진로를 정한 뒤에야 ‘플래너 쓰기’, ‘독서’의 ’진짜 의미’에 제대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경안고등학교에서 진행하는 ‘사명 중심의 진로교육’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자로 ‘사명’(使命)은 ‘맡겨진 임무’라는 뜻입니다. 보통 종교적인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그러나 진로교육에서 말하는 사명은 ‘자신의 강점을 기반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2017년 10월24일 경안고 2학년 공다희양이 사명선언서를 작성한 뒤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고 있다.
지난 2017년 10월24일 경안고 2학년 공다희양이 사명선언서를 작성한 뒤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고 있다.

제 진로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사명 선언서’를 쓰게 합니다. 이 선언서를 쓰려면 총 3단계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는 ‘후(who), 와이(why), 하우(how)’ 세 열쇳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단계인 ‘후’에서는 자신의 희망 직업이 어떤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인지 적어보게 합니다. 꿈이 ‘의사’라고 치면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 소외계층’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2단계인 ‘와이’에서는 그들을 왜 돕고 싶은지 이유를 써보게 합니다. 이때 문장의 주어는 ‘나’로 시작하면 좋겠지요. 3단계(‘하우’)는 1∼2단계에서 떠올린 대상을 어떻게 만날 것이고, 어떤 직업을 통해 그 방법을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해보는 시간입니다. ‘의사가 되어 인술을 펼치고 싶다, 간호사가 되어 공중보건활동에 힘쓰고 싶다’는 등의 문장을 2∼3가지로 적어보는 겁니다.

지난 5월29일치 칼럼에 소개한 최여명 학생의 경우도 사명 선언서를 쓰기 전에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사람’이라는 다소 두루뭉술한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한데 진로탐방과 독서, 동아리 등 활동을 통해 ‘정보 소외계층을 위한 금융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경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핀테크 전문가’라는 매우 구체적인 사명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지난해 교직에 첫발을 내디딘 이선경 경안고 교사가, 지난 2012년 경안고 3학년 때 썼던 자기소개서 중 일부입니다. 이 교사 역시 ’사명 선언서’를 써본 경험이 자신을 더욱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고, 그것을 토대로 자기소개서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고2가 되어 멘토로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멘티들은 생활습관도 엉망이었지만 가정불화 등으로 내면의 상처가 너무 많았습니다. 이들과 관계를 돈독히 다지기 위해 밥을 사주기도 하고, 생활습관을 잡기 위해 취침·기상 시간에 전화를 하는 등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점점 지쳐갈 즈음, 멘티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언니를 만나서 너무 감사하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멘토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교사는 고1 때 막연히 영어 교사를 꿈꿨다가 학급 영어 멘토, 엘에스피(LSP, 진로탐색·플래닝교육·독서교육을 결합한 경안고의 학생 성장 프로그램) 멘토 활동을 하며 학우들을 돕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진로를 구체화하기 위해 교육철학 자율동아리를 만들었고 유대인 사상가인 마르틴 부버 등의 이론을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생각으로만 남겨둔 ‘꿈과 진로’를 확실한 ‘사명’으로 발전시킨 학생은, 대학 진학 여부와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들이 사명을 구체적으로 적어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교사와 학교 공동체가 아이들의 ’내재된 강점’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미래사회에서는 교사가 ’로봇’ 등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교사의 역할을 과거처럼 지식 전달 위주로 한정한다면 인공지능을 따라갈 수 없을 겁니다. 한데 교사를 ‘사랑과 관심으로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존재’라고 정의 내려보면 어떨까요? 사명이 뚜렷한 교사들의 사랑을 받은 학생들만이 자신의 ’사명 선언서’를 힘있게 작성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글·사진 곽충훈(경안고 교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계엄 해제, 윤석열 체포”…국회 앞 시민들, 계엄군 온몸으로 막았다 1.

“계엄 해제, 윤석열 체포”…국회 앞 시민들, 계엄군 온몸으로 막았다

“윤 대통령, 탄핵으로 들어갔다”…법조계도 계엄 선포에 분노 2.

“윤 대통령, 탄핵으로 들어갔다”…법조계도 계엄 선포에 분노

[영상] “계엄 해제”에서 “윤석열 체포”로…국회 앞 시민들 환호 3.

[영상] “계엄 해제”에서 “윤석열 체포”로…국회 앞 시민들 환호

시도때도 없이 오던 긴급재난문자, 계엄령 선포 땐 안 와 4.

시도때도 없이 오던 긴급재난문자, 계엄령 선포 땐 안 와

법조계 “내란 해석도 가능…윤 대통령 탄핵 사유 명확해져” 5.

법조계 “내란 해석도 가능…윤 대통령 탄핵 사유 명확해져”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