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근로기준법 개악 중단 및 노동시간 특례폐기 촉구 과로사 아웃(OUT) 대책위’ 기자회견 모습.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겨레 사설] ‘주 52시간’ 처벌 유예, ‘시행 유예’는 아니다
새달 1일 300인 이상 사업장에 도입되는 주 52시간 근무와 관련해, 당정청이 6개월간 계도기간을 두고 처벌을 유예하기로 20일 결정했다. 고용노동부는 ‘시정기간을 최대한 6개월 부여한다는 의미’라고 했지만 사실상의 처벌 유예다. 노동계는 “기업들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고 반발하고 이날 방침이 실정법 위반이란 지적도 나온다. 불과 시행 열흘을 앞두고 정부가 준비 부족을 자인한 셈이 된 것은 분명하다. 다만 원래 목표가 기업의 ‘처벌’ 자체가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의 성공적 안착임을 생각하면, 충격 최소화와 연착륙을 위한 고육책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이것이 마치 ‘시행 유예’처럼 인식되어선 곤란하다. 그러면 6개월 뒤 같은 혼란이 반복될 뿐이다. ‘주 52시간’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여유있는 삶과 자기계발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있지만, 노동강도가 급증하거나 실질소득이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도 크다. 선제적으로 유연근무제 등을 도입해 시행에 들어간 대기업이 있는 반면, 아직 동종 업종 눈치만 보는 곳도 많다. 서둘러 노사 협의로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고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조정해가야 한다.
사실 더 큰 걱정은 노동집약 업종 쪽이다. 기업의 비용 증가와 생산성 저하, 안전사고 우려 등을 과장이라 볼 수 없다. 건설업은 총비용이 4%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대형 버스업체가 운전기사 스카우트에 나서면서, 지역과 마을버스 기사들이 급감해 ‘교통대란’이 일 것이란 우려도 크다. 정부는 고용안정기금 213억원을 활용해 임금감소분 보전과 신규인력채용 지원 등을 한다는 계획이지만, 기업들이 부족 인원을 모두 신규채용으로 채우리라 보는 건 장밋빛 기대다. 특히 지역이나 열악한 환경의 업체는 채용하려 해도 사람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최대 17만개 일자리 증대’나 돈 지원만 강조할 게 아니라, 업종별 특성에 맞춘 구체적인 단축 방안과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 또 하반기 중 실태조사를 통해 탄력근무제 등 개선을 준비한다고 밝혔는데, 서둘러야 한다. 기업 쪽에선 현재 3개월까지 가능한 탄력근무제 적용을 1년까지 늘려달라지만, 주 52시간 노동을 먼저 안착시킨 뒤 노동변동성을 고려해 검토하는 게 순리다. 2004년 주 5일 근무제 도입 때도 우려는 컸지만, 우리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노동자들도 돈보다 노동시간 단축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중앙일보 사설] 근로시간 단축, ‘6개월 계도 기간’ 넘어 전면 손질해야
주 52시간제 시행을 열흘 앞두고 어제 당·정·청이 경총의 ‘6개월 계도 기간’ 건의를 수용했다. 현장의 혼란을 감안한 현실적인 선택이다. 고용노동부의 준비 부족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김영주 고용부 장관은 “시행해 보고 보완할 부분이 있으면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국민을 정책 실험 대상으로 삼느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부도 기업도 6개월간 시간을 벌었지만 보완할 게 한둘이 아니다. 고용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 법령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게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 확대다. 한국은 2주 또는 3개월에 불과하지만 미국·일본·프랑스는 1년의 단위 기간을 두고 탄력적인 대응을 허용한다. 주문이 몰리면 일을 더 하고 나중에 쉴 수 있어야 한다. 개정 근로기준법 부칙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 확대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논의조차 없었다.
경총의 제안에 포함된 것처럼 ‘인가연장근로’의 허용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 산업의 구조적 특성상 근로시간 총량 자체를 한시적으로 늘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석유·화학·철강업의 대정비·보수작업이나 조선업의 시운전이 그런 경우다. 건설업도 기상 악화로 인한 공기(工期)가 지연되면 날 좋을 때 몰아서 작업해야 한다. 인력 대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장시간 촬영을 해야 하는 방송·영화 제작업도 마찬가지다. 근로시간의 총량이 정해진 탄력적 근로시간제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 본질적인 고민도 필요하다. 현행 근로시간 제도는 공장형 노동 과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직무 패러다임이 확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시간으로 근로 절대량을 따지는 것은 낡은 잣대다. 업무의 성취나 질로 생산성을 판단하는 직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노동시간 규율체계의 근본적 재검토를 시작할 시점이다.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근로시간 변천사 산업화 시기 장시간 노동은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단축 투쟁을 하게 만들었다. 근로자들의 인간다운 생활 영위를 위해 국제적으로 근로시간을 규제한다. 한국에서는 1953년 5월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면서 일 8시간, 주 48시간 근로시간 기준과, 당사자 합의에 따른 주 60시간 근로를 허용했다.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는 사용자의 요구를 수용하여 ‘4주 평균 주 48시간’의 변형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 이후 근로자의 요구에 따라 1987년 개정안에서 변형근로시간제는 폐지되었고 일 8시간, 주 48시간의 기준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해 장시간 중노동을 방지하게 되었다. 1989년 3월 개정안에서는 일 8시간, 주 44시간 기준과, 당사자 합의에 따른 주 56시간의 근로시간 기준을 통해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35년여 만에 법정 근로시간이 단축되었다. 2003년 8월 개정안에서는 주 40시간으로 단축해 2004년 7월부터 주 5일 4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한국 근로자의 평균 연간 근로시간은 1989년 2908시간이었는데, 근로시간의 단축을 시행한 결과 2016년에는 2068시간으로 줄었다. 한국의 근로시간은 지속적인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점차 줄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높은 편에 속한다. 장시간 근로는 근로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의 질 저하 및 건강 악화가 뒤따른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13년부터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기존의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축소하는 개정안이 논의되기 시작해, 2018년 2월 주당 최대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개정안에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의 단축과 휴일 근로시간의 연장 근로수당 지급 여부, 특례업종의 축소, 공휴일 유급휴일의 확대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7월1일 시행 직전 정부가 이를 어기는 사업장에 대한 처벌을 최대 6개월 유예하기로 했다.
연재사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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