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땀 흘려 운동하는 이유 ‘몸매 관리’만은 아닙니다

등록 2018-06-25 20:15수정 2018-06-25 20:26

격투기 도장에서 처음으로 겨루기를 한 날. 맞을까봐 두려울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상대 선수와 마주하고서는 내가 상대를 때릴까 봐 두려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겨루기에서는 완전히 상반된 두 가지 두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다칠까 봐 두렵고,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워진다. 그러나 이건 자연에서 생존을 걸고 하는 ‘싸움’이 아니다. 운동경기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다. 규칙 안에는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명확하다.

격투기는 사람의 몸에 대해 많은 지식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신체훈련 기술이다. 관절과 힘, 신체적인 기술과 그 한계를 다룬다. 특히 맞는 것과 때리는 것, 제압에 대한 선망과 공포가 있다면 격투기 훈련을 통해 그 실체와 직접 마주해보는 것이 좋다. 맞으면 얼마나 맞을 수 있고, 때리면 얼마나 때릴 수 있는지를 안전하게 알아가는 것이다.

격투기 체육관에서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훈련한다. 처음에는 허공에 대고 동작을 연습하고, 춤추듯 동작을 익혀나가는 경우가 많다. 다음에는 기량이 비슷한 사람이 짝꿍을 이뤄 다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슬쩍슬쩍 상대의 몸과 만난다. 또는 기량이 아주 뛰어난 사범이 나의 파트너가 되어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러다보면 몸에 익힌 기술을 실전에서 자유롭게 써보는 겨루기를 고대하는 날이 온다.

열심히 달려본 사람은 안다.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달릴 수 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달릴 수 있는지, 어떤 느낌이 한계를 알리는 신호가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달릴 수 있는지. 앎의 길에는 끝이 없다. 사람마다 몸이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몸은, 시간과 사건과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끊임없이 알아가는 즐거움이 찾아온다. 신체훈련의 가장 큰 힘은 ‘알게 되는 것’이다.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몸에 대해서 알게 되고,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는 내 몸을 발견하게 된다. 경쟁이 아니라 몸에 대한 발견에 집중하고 훈련에 매진한다면 격투기는 지식의 확장으로 넓어진다.

물론 큰맘 먹고 격투기를 배울 수 있는 체육관의 문을 두드렸는데 실망하게 될 수도 있다. 체육관에서조차 ‘여자다움’에의 강요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10대 여성이 체육관에서 잘하면 여자다운 몸매와 몸짓에 대해 ‘한마디씩’이 날아온다. 못하면 무시한다. 운동의 목표가 ‘몸매 관리’ 라고 단정해버린다. 이 부당한 편견은 몸의 감각과 능력에 몰두하는 우주적인 집중을 깨뜨려버린다. 그럴 때는 생각하자. 바로 이런 말들이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여자들의 신체훈련 자체를 가로막아 왔다는 것을. 때로는 체육관도 ‘자기방어훈련’의 현장이다. 격투기만 배우는 게 아니라 격투기를 못 배우게 방해하는 말들에 대응하는 법도 함께 훈련하자. 머릿속을 가득 메운 파괴 욕구가,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제압 공포가 두두둑 떨어져 나가고 나다운 나, 강인한 내가 드러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문미정(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우리학교) 지은이(공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