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하기 등 활동을 한 뒤 직접 만든 공약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1시 대전글꽃초등학교 4학년 4반 교실에서는 특별한 수업이 열렸다. 오영아 담임교사와 천수정 민주시민교육 강사가 ‘민주주의 선거교실’이라는 주제로 2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선거?투표의 의미, 공약의 중요성 등을 설명했다. 6?13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날이라 아이들의 관심도는 더욱 높았다.
“‘당’ 만들고 소외이웃 돕는 공약 내봤어요”
“공부 잘하고 돈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예의를 잘 지키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제일 중요한 것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 당 이름은 ‘명예의 정당’으로 하자!”
아이들이 직접 정당을 만들고 공약까지 고민하느라 시끌벅적한 가운데 오범석군이 이런 제안을 했다. 오군은 “우리 당에서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매월 10만원을 추가로 준다’는 공약을 만들었다”며 “빈부 차별 없이, 최소한 사람으로서 누릴 권리를 보장해주는 게 정치인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어려워하는 기색 없이 평소 학교생활 등을 떠올리며 ‘이건 개선해야지’라는 의견을 마음껏 냈다. “친구들과 함께 토론해본 공약으로는 ‘미세먼지 없는 나라 만들기’, ‘세금 줄이기’, ‘과음 방지를 위해 술 한병의 양을 270ml로 제한하기’ 등이 있었어요.”
이날 수업은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기초로 ‘오즈의 나라’를 이끌어 갈 새로운 대표자를 뽑는 게 핵심이었다.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사자, 마녀 등이 각 기호 1~5번에 배정됐고, 아이들은 다섯 모둠으로 나눠 앉아 당 이름을 만드는 활동부터 했다. 당 이름 짓기, 토론을 통해 공약 내보기, 벽보 제작, 유세하기, 투표하기 등 선거의 모든 과정을 경험해봤다.
장애인 주차장을 더 만들자는 ‘어벤져스당’, 동물의 털?가죽으로 옷 만들지 말자는 ‘국민이 먼저당’,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와 운동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무궁화당’, 건강한 사회를 위해 술값을 올려야 한다는 ’약속한당’까지 열띤 분위기 속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대전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소속으로 이날 교육을 진행한 천 강사는, 실제 선거에서 1인 1표가 갖는 의미와 의원들이 하는 일, 투표권의 중요성 등을 설명하며 수업을 진행했다. 천 강사는 “투표를 마치고 나온 부모 손등에 찍힌 ‘빨간 동그라미’의 의미를 교실서 자세히 배워보는 것이다. 선관위 차원에서 민주시민 선거교육을 위해 교안집을 냈고, 공교육 현장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선거 관련 교육은 초등 교과서 속 ‘협력하는 지방자치단체’ 등 교과 단원과 연계할 수 있어 교육 효과는 더욱 크다. 초등세계시민교육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오영아 교사는 “아이들이 학급·전교 회장 선거 등을 경험해봤지만, 실제 당을 만들어보고 토론을 통해 공약의 타당성을 검증해보는 시간은 처음이다. 사회 시간에 배우는 정치의 기능, 시민의 권리 등을 더욱 즐겁게 접해볼 수 있는 수업”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시민 선거교실’ 등 선거 관련 교육은 지역별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신청하면 교실에서 진행할 수 있다.
"부모님 손등 위 빨간 도장 궁금했어요"
6·13지방선거 앞두고 ‘투표 뭘까’ 관심
대전글꽃초, 선관위와 ‘민주 선거교실’
토론 통해 공약·벽보 만들고 유세도
동물권·장애인 주차장...이슈 다양해
창덕여중, 모의 교육감 선거 직접 해봐
교육정책 톺아보고 책임감 느껴본 시간
지난 12일 대전글꽃초등학교 4학년 4반 학생들의 ‘민주주의 선거교실’ 수업 현장. 학생들이 정당·벽보 만들기
지방선거 앞두고 모의 투표로 유권자 경험
지난 8일에는 직접 ‘모의 교육감 선거’를 치러본 학교도 있다. 서울 창덕여자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 손으로 뽑는 교육감’ 모의 선거를 진행했다. ’짝 토론’ 수업 시간을 활용해 각 후보의 포스터와 공약을 꼼꼼하게 검토했다.
실제 표를 던져보는 시간인 만큼 정식으로 선거관리위원회도 꾸렸다. 선거 결과는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가 서울·경기·충북·광주 등 4개 지역에서 진행한 모의 선거에 반영됐다.
이날 모의 투표는 두 번에 걸쳐 진행했다. 박의현 교사는 “첫 번째는 후보들의 포스터만 보고 뽑을 사람을 정하는 ‘이미지 투표’였고, 두 번째는 후보 이름을 가린 뒤 교육정책 등 공약 내용만 보고 결정하는 ‘정책 투표’였다”고 했다. “아이들 손으로 교육감 선거를 직접 해본다 하니 ‘신기하다’, ‘부모님 앞으로 온 공약집을 더 자세히 보게 됐다’ 등 반응이 좋았습니다. 강당에서 실제 투표함에 표를 넣어보며 살아있는 민주시민 선거교육을 경험해본 것이죠.”
학생들은 학교 선택권 확대 및 생존수영 교육 등 안전권, 편안한 교복 등 자신들의 생활에 직접 관련이 있는 의제에 관심을 보이고 분석도 해봤다.
이 학교 이신행양은 “내가 던진 한 표로, 앞으로의 교육정책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생겼다”며 “당장 눈앞에 놓인 공부만 하기 바빴는데, 들여다볼수록 교육 공약이 나와 부모님, 후배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체감했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부모세대는 청소년들이 미숙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미지 투표와 정책 투표를 통해 ‘겉보기’와 ‘알맹이’의 차이를 분석해보고, 아이들 삶에 적용되는 교육정책을 하나씩 뜯어보며 미래 유권자로서 선거의 중요성을 체감하는 시간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공교육 과정에서 ‘일상 속 정치’에 대해 고민해보는 수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치는 ‘나이 많고 양복 입은 남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지금, 우리 세대’가 관심 갖고 참여해야 할 영역이라는 이야기다.
<청소년을 위한 정치학 에세이>를 펴낸 설규주 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당장 아이들 급식 시간에 반찬과 밥을 배식하는 것부터 ‘생활 정치’의 주제가 될 수 있다. 급식 순서를 번호대로 할까, 배고픈 순서대로 할까, 아침식사를 거른 사람부터 먹게 해줄까 등 이런 개인적인 것들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시민 선거교육을 통해 학급·가정 등에서 ‘편 가르기 위한 언쟁’이 아닌 ‘토론을 통한 합의 과정’의 중요성을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독일 등 외국에서는 공교육 시절 선거의 의미와 시민 권리 등을 충분히 배우고, 졸업 뒤에는 지역사회 단체 등과 연계·활동하면서 정치를 실제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요. 민주시민을 키우고 성장시키는 과정을 ‘평생 교육’의 관점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