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교육의 봄 10년 플랜’ 공동운영위원장이 지난 5월28일 서울 관악구 좋은교사운동 사무실에서 <함께하는 교육>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요즘 한국 교육계는 무협 세계와 비슷해 보인다. 무협지를 보면 각종 문파가 등장하고 크게 대립하는 2개 문파가 다투는데, 교육계는 ‘학종(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파’와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파’의 대결장이다.
“수능, 수능 위주의 정시가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수능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언제까지 주입식·암기식 교육에 매달릴 것이냐”는 학종파. 둘의 다툼이 심각하니 정부는 지난해 8월 대입 개편안 발표를 1년 뒤로 미뤘고, 올해는 국가교육회의가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 방식처럼 대입제도를 개편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존재감이 약화돼 “정책 하나 결정 못 하고 국가교육회의에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3일 ‘교육의 봄 10년 플랜’이라는 교육단체가 출범했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가 적지 않지만 이 단체는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노골적 보수 성향을 뺀, 교육 관련 분야 주요 단체나 인물이 상당수 참여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공동대표단은 최현섭 전 강원대 총장,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이원재 랩(LAB)2050 대표(경제평론가), 김상봉 전남대 교수 등 15명, 공동운영위는 이종태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소장, 이승섭 카이스트 교수(전 입학처장),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등 9명으로 이뤄졌다. 발기인만 현재 850명이다. 창립식 때는 김도연 포항공대 총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격려사를 했다.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70~80%인데도 교육 분야는 30%대로 낙제점을 받고 있는 지금 ‘교육의 봄 10년 플랜’을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공동운영위원장인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를 5월28일 만나봤다.
중도성향 ‘교육의 봄 10년 플랜’ 출범
“학생 창의성·능동성 키우겠다면
암기식 교육체계 그대로 두면 안돼”
2015 개정교육과정 역량·과정중심인데
평가는 왜 암기·주입식으로 돌아가나
내년 2~3월 ‘10년 플랜’ 최종안 내놓고
약 1만명 국민참여단 구성해
정책 구체성·현실성 검증할 계획
■ 문 정부 지지율 교육 분야만 낮아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은 역량중심·과정중심 평가, 학생 참여형 수업, 문이과 지식 통합 등이다. 당연히 이에 조응해 대입제도도 바꿔야 한다. 아이들의 창의성·능동성을 높이겠다며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도입해 놓고 대입제도는 암기식·주입식 교육에 맞는 현행 수능(객관식 상대평가)을 그대로 놔두려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지난해 초등학교 2학년까지, 중고등학교는 1학년까지 적용됐고 올해부터는 초등은 4학년, 중고등학교는 2학년까지 적용된다.
김 공동대표가 보기에, 이런 사태가 발생한 건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수능 절대평가 등 애초 입장을 바꿨다기보다는 정치적 외압으로 손발이 묶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취지대로라면, 수능은 절대평가로 바꿔 자격고사화하고 여기에 학생부, 면접 등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는다.
그는 “국가교육회의는 원래 자문기관이다. 한데 현재 진행되는 상황은 교육부는 별 역할을 못하고 국가교육회의가 사실상 결정기관처럼 돼 버렸다”며 “이낙연 국무총리, 민주당 초·재선 의원 모임 ‘더 좋은 미래’ 등이 수능 중심의 정시에 우호적인 태도를 드러낸 뒤 교육부 차관이 일부 대학에 정시 확대 요청을 했다. 정권 핵심부의 인식이 그렇다는 거다”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이중 잣대가 난무한다고 비판했다.
“중·고등학교까지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에서 정답 잘 찾는 아이를 키운다. 이걸 잘하는 아이를 대학에서 선발한다. 그래 놓고는 막상 취직하려면 기업은 ‘그런 사람은 과거형 인재’라며 ‘창의적 인재’, ‘문제 해결 능력 있는 인재’, ‘협업 능력 가진 인재’를 찾는다. 이거야말로 이중 잣대요 사기다.”
■ “정치권은 국민 최대한 설득해야”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론조사는 수능 중심인 정시 지지가 훨씬 높다. 지난 4월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36.2%가 학종 감축, 14.6%는 완전 폐지를 요구했다. 이에 비해 수능 정시 비율을 6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은 55.5%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 않나?”라고 질문을 던졌다.
김 공동대표는 “학종을 제대로 준비하려면 학기당 수행평가를 최대 30개 정도까지 해야 하는 등 학생 부담이 많다. 일부 과다·과장 기록 등의 문제점도 있다”며 “그러나 이런 문제는 기록 간소화, 허위 기록에 대한 처벌 등으로 해결해야지 과거의 평가 방식으로 되돌아가려 하는 건 퇴행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학종을 금수저 전형, 깜깜이 전형이라고 하는데 과장됐다. 주변 일반고 교사들에게 물어보면 학종을 통해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가는 비율이 수능을 통해 가는 것보다 높다”고 밝혔다. 2017년 3월 연세대·고려대·서강대 등 서울 상위 10개 사립대학이 3년간 입시자료를 분석해 펴낸 자료를 보면, 학종을 통해 일반고 63.5%, 특목고 15.5%, 자사고 8.3%를 뽑았다. 출신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이 66.5%, 비수도권이 33.5%였는데, 수도권 출신 비율이 학종에선 56.1%, 정시에선 70.6%였다.
“다른 문제는 몰라도 국가 백년대계인 교육만큼은 정치권이 국민들을 최대한 설득해야 한다. 당장 표만 의식해 여론에 그대로 따르겠다는 건 포퓰리즘”이라고 그는 비판했다.
학종과 수능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은 ‘타당성 대 객관성·공정성’ 구도다. 수능은 똑같은 문제로 시험 보고 결과는 점수로 나타나므로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김 공동대표는 “호랑이·악어·새를 상대로 날기 테스트를 하는 게 공정한 것일까? 일방적으로 새한테 유리한데, 높고 멀리 날았다고 새를 우수 학생으로 뽑는 게 현행 한국 시험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올해 18년차 역사 교사인 그는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주입식·암기식 교육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그렇다면 왜 이를 안 바꾸려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김 공동대표는 인터뷰 도중 5월3일 창립식 때 이혜정 ‘교육과 혁신 연구소’ 소장이 발표한 자료를 보여줬다. 영국·미국·프랑스·독일·한국 등의 대입 제도를 비교한 것인데 한국만이 상대평가였고 다른 나라는 절대평가였다. 이 자료에서 이 소장은 “한국의 교육제도는 (머릿속에) 집어넣는 교육, 다른 나라는 (머릿속의 창의성을) 꺼내는 교육”으로 평가했다.
‘교육의 봄 10년 플랜’은 내년 2~3월께 10년 플랜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중점 사업 가운데 하나가 국민참여단 1만명 구성이다. 전문가들의 모임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근본적 계획을 세우고, 국민참여단을 통해 검증을 받겠다는 것이다.
글·사진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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