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방어훈련 강연을 하다 보면 40~50대 성인들이 자신이 만나고 있는 10대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말할 때가 많다. 부모님, 선생님으로서 꼭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치면’ 좋을지를 물어온다. 성교육과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삶은 그대로 내버려둔 채 프로그램 하나를 갖다 붙이는 것으로 영화 속에 나오는 히어로가 기능 좋은 슈트를 입었을 때처럼 순식간에 변신하여 무적무패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부가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것을 일상 속에서 관찰할 때, 학교생활에서 교사와 학생이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유지될 때, 그것이 나의 인권 감각일 때야말로 침해받는 순간 예민하고 냉정하게 거부하는 감각이 살아난다. 공격 상황에서 위축되지 않고, 명민한 상황판단을 통해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은, 그런 용기를 보여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고, 우리 일상 속에서는 용기를 내어 옳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로, 교사로, 이웃으로 또 시민으로서 살아내는 삶이 ‘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프로그램이다.
더 많은 경우는 해준다기보다는 함께 해야 할 일들이다.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대응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라도 폭력과 갈등은 누구에게나 다루기 쉽지 않다.
10대들만 공격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바바리맨’은 50대 여성 앞에도 나타난다. 직장 내 성차별과 성추행이 검사에게도 일어난다는 것을 서지현 검사의 용기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차별의 말과 행동을 거부하고, 폭력의 말과 행동을 바로잡는 일을 ‘아이들’만 배워야 하는 것일까?
확실히 더 많은 신체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분들께는 직접 새로운 신체활동을 경험하시길 권해드리곤 한다. 물론, 부상의 위험 때문에 나이와 상황에 따라 매진해야 할 종목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신체활동의 즐거움, 신체적인 의사소통 감각, 기능이 확장되는 도전의식을 직접 느껴본다면 ‘몸 쓰는 엄마’의 기억과 기운은 그 자체로 좋은 모델이 된다. 함께 여성스포츠를 응원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를 분명히 한 뒤, 방어 시나리오를 함께 써볼 수도 있다. 어떤 방향이고 어떤 크기여야 할지를 머리를 맞대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면 좋겠다.
함께 살아가는 동안, 내 삶을 드러내 보이는 동안, 서로 배우고 다 같이 성장하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 어느 정도 갈등은 품을 들여서 해결하거나 타협할 수 있다는 것, 사소한 폭력이라도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그 방법을 찾아가는 길. 다만 우리는 손을 잡고 걷는 것이다.
문미정(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우리학교) 지은이(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