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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멱살·손목 잡혔을 때… 방어 시나리오를 짜보자

등록 2018-05-21 21:23수정 2018-05-21 21:29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과 서울시 은평구 인권센터가 손잡고 학교로 찾아가는 자기방어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0대 여성 자기방어훈련―파워 업’이라는 이름으로 교실에서 여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파워업 시간에 지켜야 할 세 가지 약속. 첫째는 적극적으로 듣고 말할 것, 둘째는 비판하지 않을 것, 셋째는 누구에게도 자기 경험을 말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것 등이었다.

지난 4월에는 은평구 선일여자중학교 1학년 전체 학생들이 자기방어훈련에 참여했다. 우선, 어떤 ‘여자다움’을 요구받았는지를 물어보았다. 여기저기서 “다리 모아라, 예쁘게 말해라, 꾸며라, 너무 꾸미지는 말아라, 여자답게 걸어라, 여자답게 먹어라….” 툭툭 터져 나오는 경험들. “애교 있게 화내라”라는 말에 대해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니까 피구를 할 때, 내가 공격권을 가졌는데도 당당하게 공을 내놓으라고 하는 남자애들이 있었어요.” 그 말을 들은 다른 친구가 말한다. “여자아이들은 피구 하고 남자아이들은 축구 했어요.” 그래서 언제부터 달라졌나요, 어떻게 달라졌나요? 짧은 침묵에 이어 우리는 진지하게 토론을 시작했다. 폭력과 폭력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별할지, 어떤 공격행동이 있는지, 차별이 어떻게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다양한 대응전략을 함께 모색해보고 싶었다. 크고 작은 폭력 상황은 매번 다르다. 주변환경, 공격자, 자기 자신 세 가지 요소 모두를 살펴보는 ‘상황판단’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혼자 생각하면 한두 가지 방어전략이 나오지만 친구들과 함께 나눈다면 각자 훨씬 다양한 방어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성공 경험은 드러내 친구들에게 방어 시나리오를 하나 보태주고, 찜찜하게 남아 있는 실패 경험은 친구들에게 함께 생각해달라고 요청하는 ‘익명상담’ 시간에는 박수와 탄성 그리고 멋진 방어 시나리오가 나왔다.

실기 시간. 짝을 지어 서로의 멱살을, 손목을 잡아보았다. 흔들어보면서 상대방 힘의 크기와 내 힘의 크기를 가늠해봤다. 손목을 잡혔을 때, 빼내는 기술을 연습해봤다. 서로 몸을 잡고 당기고 함께 구르고 몸이 어떤 기술을 깨닫게 되었을 때 차오르는 뿌듯함의 몸짓. 한두 번 연습한 것으로는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몸이 제대로 반응하지 않을 테지만 천번 만번을 잡아보고 빼보면 손목이 잡히고 멱살이 잡히는 그 자체만으로 무력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빠져나오는 길에 운동장에서 축구 드리블을 연습하고 있는 여자 중학생들을 보았다. 운동부인가 싶어 담당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몇몇 아이들이 축구 동아리를 만들고 싶다고 했나 봐요. 체육선생님께서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지도를 해주실 수 있다고 해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운동능력이 뛰어나서 엘리트 선수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축구를 조금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 기술훈련을 받겠다는 것. ‘여자다운 몸짓’을 요구하면서 몸 쓰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세상을 향해 비범한 기운을 뿜어내는 여자 중학생들이 말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고, 잡고, 놀고…. 몸 쓰고 있습니다.”

문미정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우리학교) 지은이(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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