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복 교육부 팀장이 지난 14일 사단법인 함께교육 창립총회에서 강연한 뒤 포즈를 취했다. 최승복 팀장 제공
원숭이, 코끼리, 펭귄, 개, 금붕어, 까마귀, 물개 등을 앞에 두고 말한다.
“공정한 선발을 위해서는 모두가 동일한 평가를 치러야만 하는데, 오늘의 시험은 앞에 있는 나무에 빨리 올라가는 것입니다!”
누구도 이런 평가가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숭이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금붕어는 뭍에 올라오지도 못한다. 코끼리는 아마 ‘열 받아’ 나무를 코로 감아 뿌리째 뽑아버릴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시험 대부분이 이런 것 아닐까? 학생마다 재능과 소질, 관심과 특성이 다른데 똑같은 시험을 봐 높은 점수를 받는 아이가 우수 학생으로 평가받는 것 아닌가?
방금 소개한 동물들의 나무 오르기 시험과 한국 교육 평가 방식 비유는 최승복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팀장의 책 <교육을 교육답게 우리 교육 다시 세우기> 45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의 부제는 ‘표준화 교육을 넘어 학생 개개인에게 필요한 교육으로’다.
최 팀장을 처음 본 건 지난 14일 사단법인 함께교육 창립총회에서였다. 그는 초청 강사로 강연을 했는데 빡빡 민 머리에 정수리에만 말총처럼 머리카락을 약간 남긴 헤어스타일이었다. 자유분방한 차림새여서 시민단체 인사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교육부 간부였다. 그는 강연에서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공정성, 객관성이 아니라 타당성”, “수능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수능 점수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최 팀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87학번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1996년 교육부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중간에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공공정책학 박사도 받았고 현재 부이사관이니 엘리트 코스를 거쳐 온 셈이다. 어쩌면 국가 표준화 교육의 승자(?)였을 그가 그런 체계를 벗어나 학생 개성·특성에 맞춘 개별화된 교육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지난 24일 만나봤다.
아이마다 재능, 소질, 특성 다른데
‘공정성’ 강조, 같은 잣대로 평가
하긴 하지만 ‘제대로’ 하는 것 없는
집오리형 인재들만 나오는 상황
‘표준화 교육’은 산업화 시기에 필요
이제는 ‘학생 개별화 교육’ 해야 할 때
학생 각자 ‘기민한 선도자’ 구실 해야
■ “교육은 객관성, 공정보다 타당성이 중요”
“표준화된 국가교육이란 학생들이 배워야 할 구체적 지식 내용을 국가가 규정해놓은 거다. 원래 서유럽의 후진국이었던 프로이센이 영국·프랑스 등 선발주자를 빨리 따라잡기 위해 도입한 건데 일본이 이를 모방했고,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에 그대로 정착했다.”
후진국 시절 산업화가 다급했던 한국에 표준화된 국가교육은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자본도 기술도 없던 당시 ‘신속한 추종자’(fast follower)가 살길이었다. 그러나 기초 연구와 응용개발 수준에서 미국을 100으로 봤을 때 유럽연합 95, 일본 93, 한국 78, 중국 70에 이른 지금, 신속한 추종자 전략은 한계에 부닥쳤다. 이제는 ‘기민한 선도자’(fast mover)가 돼야 하는데 수십만명의 학생이 똑같은 문제를 풀고 똑같은 정답을 내야 하는 교육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최 팀장의 생각이다.
그는 “이제는 학생 개성과 특성에 맞춘 개별화 교육을 해야 한다. 국가는 기본 원칙과 방향만 제시하고 중장기적으로 교과서를 자유발행제로 바꿔야 한다”며 “교사가 교과서를 의무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수업 자료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능은 절대평가로 바꾸거나 자격고사화해야 한다”며 “학생 개개인에게 맞춘 교육을 하려면 학급당 학생수를 20명 선으로 낮춰야 한다. 또 개설하는 교과목도 지금보다 2~3배는 많아져야 한다”고 밝혔다.(현재 한국의 초등학생 학급당 인원수는 24명, 중학교는 33명)
“이상은 좋은데, 다른 걸 떠나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현재 한국의 1인당 지디피(GDP·국내총생산)가 3만달러다. 한데 유럽은 1인당 지디피가 1만달러가 안 되던 1970~80년대부터 개별화 교육을 했다. 독일은 2차대전 직후인 1950년대부터 나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국가표준화 교육에서 탈피하려 했다. 당시 독일이 현재 한국보다 잘살았나?”
최 팀장은 “핀란드는 과학 실험 때 학급당 인원수가 16명을 넘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그래야 제대로 실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현재 한국 경제력으로 봤을 때 재원이 없어 개별화 교육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라고 본다.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 “한국 경제력으로 볼 때 재원 아닌 의지의 문제”
한데 과연 개별화 교육을 한다고 한국 교육의 병폐인 사교육이 없어질까?
그는 “사교육이 성행하는 건 국민들의 교육열 때문이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배워야 할 커리큘럼이 정해진 상황에서 먼저 뛰는 애가 무조건 유리하다”며 “표준화된 교육 시스템이 사교육을 조장한다”고 반박했다.
그가 볼 때 유럽이나 미국에 사교육이 없는 건 그쪽 부모들의 교육열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켜봤자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물에서 세포를 배울 경우 한국은 세포의 정의·종류 등 배워야 할 내용이 미리 결정돼 있다. 그러나 유럽이나 미국은 수업 시간이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고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과정이다. 이건 개별 교사가 준비하므로 사교육으로 대비할 수 없다. 그는 교사가 단순히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본다.
최 팀장은 “교사가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결정권과 평가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데 현재 우리는 모든 게 대입에 맞춰져 있다. 교사가 아이를 평가할 기회도 없고 툴도 없다”고 지적했다.
즉 학급당 인원수가 줄어 한 교사가 학생들의 교육과정을 충분히 돌볼 수 있고, 수업 과정에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고 이 평가에 기반해 각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거다. 한국에서 수업 등 학교 활동 과정에서 학생을 평가하자는 취지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나왔지만 이 전형 비중이 주요 상위권대에서 70%에 육박하자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가 볼 때, 현재 학부모들은 1960~7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민주화 세대다. 이들은 그 이전 세대보다 덜 권위적이지만 학생운동의 영향으로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고 ‘객관성, 공정성’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경향이 있다. 또한 학력고사와 같은 선다형 시험이 그 가치에 부합한다는 사고방식도 갖고 있다.
“학종 확대의 전제조건이 학교 평가체제를 과정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한데 과정 중심 평가가 제대로 정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종 비중이 확 늘어나니까 비판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표준화된 객관식 위주 평가로는 ‘집오리형 인재’만 나온다. 오리는 걸을 줄도 알고, 수영도 대충 하고, 약간 날 줄도 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10~15년 뒤를 생각한다면 정말로 우리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ktk7000@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