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샘과 함께 자기방어훈련
성폭력은, 가해자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일어난다. 피해자가 무슨 옷을 입었고, 몇 살이고, 어떤 표정을 지었느냐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 탓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가도 단호하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피해자가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급기야 피해자가 자신일 때, 가장 가혹하게 몰아댄다. 교복을 왜 줄여 입었어? 밤늦은 시간에 왜 번화가에 있었어?
우리는 사회가 이런 부정의한 편견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성폭력이 ‘나에게는’ 없는 일이기를 바라거나 그것을 암시하는 감정을 애초에 묵살해버리기도 한다. 두려움이 그렇다. 두려움은 위험을 감지했을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위험을 감지하는 것과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위험할까? 화재경보기가 있는 건물과 화재경보기가 없는 건물 가운데 어떤 건물이 더 안전할까? 어린 아기는 압력밥솥에서 나오는 뜨거운 증기가 위험한 것을 모른다. 위험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두려움은 똑똑한 감정이다. 위험을 감지했다면 그에 대비하는 계획을 세울 일이다. 인적이 뜸한 어두운 골목길, 자신보다 어린 나에게 말을 거는 척하면서 거리를 좁혀오는 어른이 있을 때 훅하고 두려움이 올라온다.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목격자가 없는 그 골목길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안다는 뜻이다. 늦은 밤 여학생에게(여학생만 골라) 도움을 청하는 어른, 그와 나 사이의 간극, 다른 사람은 들으면 안 되고 오직 나만 들으라는 듯한 음량, 빤히 들여다보는 시선, 구석으로 모는 듯한 몸짓,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바로 그 타이밍. 이 상황에서 나를 향한 공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다.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싶어진다면,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호흡에 집중하면 도움이 된다. 들숨이 내 뱃속 저 깊은 곳까지 내려간다는 기분으로 천천히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리고 그보다 더 천천히 날숨을 내쉰다.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압력밥솥에서 나오는 뜨거운 증기에 놀라, 스스로 화상을 입고 있는 줄도 모른 채 증기가 나오는 구멍을 막아대는 것이 공황상태다. 호흡이 준비되었다면 이번에는 주먹을 꼭 쥐어본다. 평소에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주먹을 쥐어보고 가장 강인한 느낌을 주는 주먹 모양새를 찾아낸다. 복싱 선수가 글러브를 끼지 않고 주먹을 쥐었을 때, 바로 그 모양대로 말이다. 차렷 자세처럼 손을 자연스럽게 내려놓은 상태로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은 뒤 주먹을 꼭 쥐고 있다면 더는 감정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대응 방법도 생각해둔다.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믿는 것이 자기방어의 출발점이다.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고 두려움에 짓눌려버리지도 않는 중간점을 찾아내는 과정이 훈련이다.
물론, 두려움을 잘 다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일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 단호하게 아니다.
문미정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우리학교) 지은이(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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