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6일 오디세이학교 하자센터 학생들이 파쿠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김태경 기자
올해부터 전국 중학교 3210곳 가운데 46%가 자유학년제를 실시한다. 2013년 시작한 자유학기제는 한 학기 동안 시험 부담 없이 학생들이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교육부는 자유학기제 성과가 상당하다고 보고 한 학기 더 연장해 1년간의 자유학년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일부의 우려는 여전하다. “공부 안 하고 1년 동안 노는 것 아냐?”, “학력 수준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등이다. 자유학년제가 어떤 모습이 될지 모델로 보여주는 곳이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위탁운영하는 오디세이학교다. 이곳은 고교 1학년 학생들에게 성찰과 체험 등의 교육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도록 해주는 자유학년제 학교다. 일반학교에서 오디세이학교와 같은 수준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운영하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 자유학년제가 어떤 모습인지 엿볼 수 있다. 2015년 시범학교로 시작한 오디세이학교는 올해 정식 개교해 신입생 90명을 받았다.
오디세이학교에서 ‘나’ 발견하는 아이들
지난 3월16일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 3층 강당. 200㎡(60평) 정도 되는 공간에서 파쿠르 수업이 진행됐다. 영화 <야마카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파쿠르. 파쿠르는 자연과 도심에 있는 지형지물, 의자, 책상, 담벼락, 시멘트 바닥 등을 자신의 몸 하나로 이동하면서 극복하는 운동이다.
“파쿠르는 ‘아트 오브 무브먼트’(art of movement)라고도 해. 움직임을 회복하는 게 왜 중요할까? 원시시대 때 인간은 동물을 잡거나 열매를 따먹을 때 다양한 지형지물에 맞게 행동을 했지. 이건 인간 본연의 능력이야. 한데 문명생활을 하면서 이걸 잊고 내 몸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이 퇴화했어. 요즘 몸 하면 몸무게·키, 예쁘게 생긴 사람, 연예인 몸매…, 남에게 보이는 이미지만 생각해. 우리 몸을 이미지가 아니라 움직임으로 얘기하는 것, 이게 파쿠르야. 자기 몸 안에 있는 가능성·잠재력을 발견해나가는 거지.”
파쿠르제너레이션즈코리아 소속 리조(닉네임, 본명 문현정) 강사가 파쿠르의 뜻을 설명했다. 이어 20명의 아이는 직접 ‘몸의 움직임’을 시도했다. 6~7가지 준비운동을 30분 정도 한 뒤 스텝볼트(Step Vault·장애물 넘기) 훈련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책상 한 개를 한손으로 짚고 넘기, 이어 2개 넘기, 4개 넘기 순서였다. 다음은 싯턴(Sit Turn). 팔로 책상을 짚은 뒤 곧바로 엉덩이를 걸치면서 다리를 들고 180도 빙그르르 돌며 넘어가는 동작이다.
“파쿠르는 ‘경쟁 반대’의 철학을 담고 있어. 달리기만 해도 비교하고 경쟁하지만 파쿠르는 그런 걸 중시하지 않아. 오늘 여기까지 착지했다면 다음날은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식. 경쟁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해서 즐기면 되는 거지.”(리조 강사)
오전 10시에 시작한 수업은 낮 12시30분에 끝났다. 90분의 급식 시간 뒤 아이들은 다음주 여수 금오도로 떠나는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에 몸을 써봤다. 그동안 학교와 학원만 왔다 갔다 했는데….”
지난 3월16일 오디세이학교 하자센터에서 학생들이 파쿠르의 스텝볼트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김태경 기자
닉네임이 ‘퐁’인 안혁군(양화중 졸업, 영등포 구현고)은 수업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안군은 “직업상담사인 엄마의 권유로 오디세이학교에 오기로 결심했다”며 “언론 쪽에 관심은 있지만 아직 명확하게 진로를 정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글쓰기, 사회 이슈를 포함한 토론 등을 하면서 구체적으로 정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유성’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전선희양(숙명여중 졸업, 서울 세종고)은 “오디세이학교 사전 체험도 해보고 아빠랑 많이 고민해서 여기로 왔다”며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면서 나에 대해 생각해보고 진로를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사는 전양은 영등포에 자리한 하자센터까지 오려면 지하철 3·9·5호선 등을 3번 갈아탄다.
글쓰기·
토론 많아 국어·
사회 자신감 키워
오디세이학교는 4개 캠퍼스가 있다. 하자센터(인문학?프로젝트 주제), 민들레(프로젝트·문학과 성장 주제), 혁신파크(문학과 성장·시민참여 주제), 꿈틀(문화예술?인턴십 주제) 등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1년을 보낸 뒤 고교 2학년으로 복교하거나 1학년으로 갈 수도 있다. 2017년 여기에서 공부하고 올해 고교 2학년으로 복교한 이주은양(선일여고)은 “오디세이학교 다닌 뒤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며 “내가 사람들이랑 얘기하는 것과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글쓰기 쪽으로 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올해 1학년으로 복교한 서채연양(서울여고)은 “걱정했던 것보다 일반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며 “나는 항상 열심히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오디세이학교 다니면 부담감을 덜고 마음이 편해졌다. 진짜 마음을 열고 서로 의사소통하면 건강하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오디세이학교가 일반교과 수업을 전혀 안 하는 건 아니다. 1학기에는 수학·영어·한국사를 주당 2시간씩 6단위, 2학기에는 영어·수학 2시간씩 총 4단위다. 그럼 국어와 사회 과목은?
“국어·사회 과목은 여기서 1년 생활하면서 얻는 게 훨씬 많다. 글쓰기와 토론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영어·수학은 다소 부족할지 몰라도 오디세이학교에서 얻는 자신감이라면 복교해서도 쉽게 실력을 회복할 수 있다.”
정병오 오디세이학교 운영지원센터 교사의 말이다.
오디세이학교에 입학하려면 사교육 금지 서약을 해야 한다. 주말에는 수업이 없으므로 사실 몰래 학원에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학생은 없다고 정 교사는 설명한다. “여기서의 생활과 사교육의 분위기 자체가 맞지 않는다. 학생 스스로가 사교육을 받지 않을 거라 본다”고 그는 덧붙였다.
오디세이학교는 술·담배·폭력 등 3가지 금기만 빼놓고 나머지 규칙은 학생들 스스로 토론을 통해 정한다. 이양과 서양은 지난해 둘 다 혁신파크에서 공부했는데 지각하는 경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도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벌칙을 만들었다. 결론은 ‘지각하면 벌로 명상을 한다’로 정했다고 한다.
지난 3월16일 오디세이학교 하자센터 학생들이 파쿠르 훈련에 들어가기에 앞서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김태경 기자
하자센터와 혁신파크에서 학생이나 교사나 모두 본명이 아니라 닉네임을 사용하는 건 ‘선생님=통제하는 사람’이라는 틀을 깨기 위해서다. 오디세이학교는 여행도 자주 간다. 그러나 놀러 가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하자센터는 3월 셋째주 5박6일 일정으로 여수 금오도를 다녀왔는데 어촌 마을에서 자고 직접 밥도 해 먹고, 그곳의 삶을 체험했다. 이제까지 소비자로서 살아왔는데 삶을 만드는 현장을 짧지만 직접 경험해본 거다.
정 교사는 “우리 학교에서 학생 선발 때 가장 중시하는 게 자발성”이라며 “오디세이학교는 아이의 주체성을 길러 스스로 도전할 수 있는 내면의 힘과 용기를 키워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시험과 교과 수업이 없다고 쉬운 학교가 아니다. 일반학교에서는 여러 아이들 가운데 한 명으로 묻어갈 수 있지만 이곳은 학생 개인이 스스로 참여해야 한다.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참여하고, 발표하고, 생각해야 하는 수업이다. 오디세이학교는 능동적이다.”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ktk7000@hanedui.com
오디세이학교 입학하려면: 일반고와 자율형공립고 입학 예정자여야 한다. 매년 11월 중순 서울시교육청 누리집과 오디세이학교 누리집(개설 예정)에 공고가 나며, 원서 접수는 11월 말에서 12월 초까지다. 가장 중요한 게 자기소개서로, 왜 오디세이학교에 오려고 하는지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수업이 곧 평가…학습 몰입도 더 높아져
“한문 하면 아이들이 따분해한다. 획이 많으니까 어렵다고 느끼고. 자유학기제를 하면서 한문 과목을 융합수업으로 바꿨다. 예를 들어 효도에 관한 한문 문장을 배우면 부모님에게 편지 쓰기, 춘하추동(春夏秋冬)을 배우면, 우리나라 날씨와 기후변화 관련 내용으로 확대했다. 예전에는 춘하추동이 분명했는데 요즘에는 왜 폭염과 혹한이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짧아졌는지 학생들 스스로 자료도 찾고 발표도 하는 거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매송중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백지예 교사의 설명이다. 한문 교사는 학교당 한 명씩이다. 백 교사를 비롯한 경기도 남부 지역 한문 교사들은 ‘우분투한문교사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우분투는 아프리카 반투어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다. 이 연구회에서 한문 교습 방법 등을 연구해 서로 공유했다.
특히 2015년부터 자유학기제가 실시되면서 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흥미를 북돋우고 창의성·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올해 교직 17년 차인 백 교사는 “자유학기제 하면서 아이들의 수업 참여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한 자유학기제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자존감도 더 크게 성장하는 듯하다”며 “아이들에게 협동수업을 강조한다. 예전에는 한 명만 잘해도 모둠 점수가 좋았지만 지금은 안 그렇다. 모둠 안에서 각자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유학기제·자유학년제는 필기시험이 없다. 이런 식의 수업에 대해 처음에는 학부모들이 학력 저하를 우려했으나 이제는 학부모들이 취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분투한문교사연구회는 지난해 말 교육부 주최 ‘자유학기제 우수 교사연구회’로 뽑혔다. 이때 함께 우수 사례로 선정된 경기도 광명 충현중학교의 ‘충현진로융합연구회’는 ‘비주얼 싱킹’을 활용했다.
이미경 과학 교사는 “아이들 생각을 시각적 요소를 활용해서 그림이나 글, 도식으로 나타내는 수업 방식이 비주얼 싱킹이다. 예를 들면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을 감상하고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며 “그림으로 활용하면 한 번 더 생각을 해 창의성을 더 잘 끌어낼 수 있다. 외우거나 글로 표현하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충현중학교는 국어, 도덕, 사회, 수학, 과학, 기술·가정, 음악, 체육, 영어 등 전 과목에 비주얼 싱킹을 활용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교사들은 교과 내용을 재구성하고 미리 충분한 협의와 토론을 했다.
이 교사는 “지필 평가가 있을 때 시험 끝나면 아이들은 그냥 풀어졌다”며 “자유학기제·자유학년제는 수업 자체가 곧 평가다. 7월 말, 12월 말 등 방학을 앞두고도 아이들이 꾸준히 열심히 수업을 한다”고 밝혔다.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