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13일 군포양정초등학교 4학년 ’참사랑땀’반 학생들이 ’학급 문집 나오는 날’을 기념해 사진을 찍고 있다. 이영근 교사 제공
“<멋쟁이 1학년> 42호 신문이 나왔습니다!”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이하 서울사대부고)에는 ‘학년 신문사’가 있다. 7팀의 취재부와 편집부 1팀 등 30명이 <멋쟁이 1학년>이라는 신문을 만들었다. 지난해 시험 기간을 제외하고 매주 발행한 신문 42호가 쌓여 ‘2017 학년 신문 합본호’도 완성했다. 학생들은 실제 언론사 기자들처럼 학사력을 살펴 취재 아이템을 찾았다. 교내 크고 작은 행사에 펜과 카메라를 들고 나서며 ‘열일’했다. 기획회의, 취재, 마감, 편집, 디자인, 인쇄, 배포 등 전반적인 신문 제작 과정을 스스로 해낸 것이다.
‘마감 압박’마저 즐거운 1학년 기자단
최근에는 학교 소식을 전하는 창구로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등을 많이 활용한다. 글, 사진 등 편집이 쉬운 것은 물론, 터치 한 번으로 접속할 수 있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좋아요’ 버튼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피드백도 장점으로 꼽힌다. 요즘 세대들에게 신문 등 인쇄 매체는 ‘느리고 품이 많이 드는 채널’이라는 인식이 있음에도 서울사대부고 학생들이 주간 종이신문을 고집한 이유는 뭘까?
이 학교 ‘학년 신문 기자단’(이하 기자단) 취재부에서 활동한 2학년 전혜린양은 ‘아날로그의 매력’을 활동 동력으로 삼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디지털 세상에서 초 단위로 무수히 쏟아지는 뉴스가 문득 ‘인스턴트 식품’처럼 느껴졌다. 일주일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제된 뉴스를 만들어보자는 나름의 각오도 있었다.
지난해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학년 신문 기자단’ 학생들은 매주 <멋쟁이 1학년>이라는 신문을 발행했다. 기자단 제공
전양이 1년 동안 <멋쟁이 1학년> 취재부 기자로 생활하면서 동료 기자들과 세운 원칙은 하나다. 바로 ‘가짜 뉴스 없는 신문’이었다. 전양은 “신문은 한 번 인쇄하면 돌이킬 수 없다. 마감하며 몇 번씩 글을 고치는 가운데 ‘팩트’를 확인했고, 독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인지 자문자답해보는 과정에서 인스턴트 뉴스가 아닌 ‘진국 뉴스’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고 했다. “비록 우리 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작은 신문’이지만, 취재 과정에서 사실과 의견, 공과 사에 대한 일종의 감각이 생겼어요. 7일 간격으로 기획, 마감, 발행 등을 경험하며 ‘느리지만 양질의 뉴스’를 생산했다는 뿌듯함도 느꼈습니다.”
7개 취재부는 토요일마다 기사 마감을 한 뒤 이를 카페에 올렸다. 편집부는 기사와 사진, 설문조사 결과 등을 취합해 주말 동안 편집 작업을 했다. 중요도에 따라 기사를 배치하고, 여러 번 상의해 제목을 뽑는 등 일이 간단하진 않았다. 세월호 추모 행사 등 편집부가 볼 때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뉴스가 있으면 다른 어떤 교내 소식보다 사진 크기와 기사의 양을 ‘크게’ 잡고 전면 배치하는 등 뉴스 가치를 하나하나 고민하며 편집했다.
편집부에서 활동한 엄승화양은 “친구들 기사를 교정
·교열하고, 체육대회나 축제 등 학교 분위기에 맞춰 사진 선정하는 작업을 했다”며 “기사 중요도를 판단하는 공부가 필요했다. 일간지를 구해 편집부원들과 레이아웃을 공부하며 신문을 만들었다”고 했다.
학년 신문은 매주 월요일 오전 인쇄를 시작해 그날 오후 종례시간에 맞춰 1학년 전체 반에 배포했다.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던 학생들도 그 시간만큼은 <멋쟁이 1학년>의 열혈 구독자였다. 지면을 알차게 만들기 위한 기획회의도 꾸준히 진행했다. 김유림양은 친구들의 칭찬 릴레이를 담은 ‘아주 칭찬해’ 꼭지를 담당했다. 김양은 “일반 신문이나 뉴스에 관심 없던 친구들도 우리 신문만큼은 꼭 챙겨봤다”며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자성어나 명언 등을 찾아 지면에 담는 작업도 뿌듯했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 어린이신문을 구독했거든요. 그때 신문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취재·섭외 등을 진행했어요.”
학생회장 선거 등 교내 큰 행사가 있을 때는 특집 기사도 실었다. 각 후보들의 공약과 포부를 공정하게 담아내기 위해 ‘후보별 기사 글자 수 동일하게 할 것’, ‘사진 크기와 해상도 신경 쓸 것’, ‘기자단 활동을 하고 있는 후보는 기사 작성에 관여하지 말 것’ 등 구체적인 선거 보도 원칙도 만들었다. 전혜린양은 “학생회장 선거 특집호를 기획하면서 언론 보도의 공정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며 “책임감을 갖고 균형 잡힌 기사를 내기 위해 기사 속 단어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봤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작은 신문이지만 그림, 만평 등도 꾸준히 실었다. ‘그림세상’ 꼭지를 맡았던 2학년 이채현양은 “한 달 동안의 학교 대소사를 돌아보며 그림과 짧은 글을 연재했다.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실’을 주제로 이웃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다룬 게 특히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직접 쓴 글과 친구들 그림이 지면을 통해 의미 있는 메시지로 전달되는 게 참 뿌듯했어요. ‘우리 1학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는 뭘까’ 계속 고민하고 공통점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애교심도 더 커졌습니다.”
군포양정초 이영근 교사는 매년 ’참사랑땀 학급 문집’을 펴낸다. 이 교사는 매일 아침 아이들과 함께 ’글똥누기(수첩에 한두 줄 가볍게 적어보기)’를 진행하며 문집의 토대를 다진다. 이영근 교사 제공
14년째 문집 만드는 교사의 ‘참사랑땀’ 교실
군포양정초등학교 이영근 교사는 빠듯한 학사 일정 속에서도 ‘학급 문집’을 포기하지 못한다. <초등 학급운영 어떻게 할까?> 등을 펴낸 이 교사는 학급운영의 중요한 단계로 문집 만들기를 꼽는다. 아이들이 자신의 생활을 글로 써본 뒤 다 같이 소리 내 읽어보고 서로의 감정을 나누는 과정에서 학급 고유의 ‘따뜻한 문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1999년 교직 생활을 시작한 이 교사는 2004년 만난 아이들과 첫 문집을 낸 뒤 한 해도 빠짐없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을 내고 있다. 최근에는 4학년 학생들과 문집 ‘참사랑땀 발자취’를 펴냈다. ‘참사랑땀’은 ‘참(진실), 사랑, 땀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이라는 뜻으로, 이 교사의 교육 철학을 담고 있다.
스마트폰 앱, 컴퓨터 게임, 티브이 영상 등 무엇이든 멀끔하게 완성된 것만 접하던 아이들은 손글씨를 비롯해 직접 찍고 그린 사진·그림을 배치하고 글을 나누는 과정에서 우정도 각별해졌다. 이 교사는 “문집은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도 학급의 역사와 문화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문집에는 일기, 글똥누기, 사진이 꼭 들어간다. 이 가운데 글똥누기는 아이들이 작은 수첩에 ‘오늘 아침에 하고픈 이야기’를 한두 줄로 가볍게 적은 것을 말한다. 매일 아침 쓰는 글똥누기는 교사와 학생이 소통하는 창구가 된다. 이 교사는 “글똥누기를 보면 그날 아이들의 몸과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글을 쓰고 보여주면서 아이들 모두를 만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문집의 토대가 되는 글똥누기를 매일 아침 반복하다 보니, ‘뭘 써야 해요?’라고 묻던 아이들도 어느덧 연필 쥐고 이것저것 쓰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 교사는 달마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글똥누기에서 두 편씩 고르게 한다. 연말에 책으로 엮을 때는 이렇게 모아둔 글똥누기를 스캔해 아이들 특유의 ‘손글씨 매력’을 살려낸다.
군포양정초 이영근 교사가 지난해 4학년 아이들과 함께 펴낸 ’참사랑땀 학급 문집’의 사진 페이지. 이 교사는 평소 다양한 활동 사진을 찍어둔 뒤 문집에 싣는다. 이영근 교사 제공
교사와 학생이 학교 안팎에서 함께 만든 추억도 아이들한테는 글감이 되어 문집에 실렸다. 5학년 강영현양은 “목요일 아침마다 도시락을 들고 선생님과 작은 동산에 오르는 ‘아침햇살’ 활동이 기억에 남는다. 한여름엔 다 같이 물총 놀이 한 즐거움을 글로 썼는데, 책으로 만들어져서 신기하다”고 했다. “문집에 실린 친구들 글도 살펴 읽게 돼요. 휴대폰 메시지로 주고받는 대화와는 또 다른 따스함이 느껴지거든요.”
이 교사는 “글똥누기, 일기 등으로 이루어진 문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오탈자를 아이들과 함께 찾으면 자연스레 국어 공부도 된다”고 했다. “문집 만드는 건 사실 힘든 일입니다. 쉽지 않죠. 그럼에도 매년 문집을 받고 손에 쥔 아이들 표정과 눈빛 하나로 보람을 찾습니다. 처음부터 좋은 문집을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할 수 있는 만큼 작게, 서툴게, 거칠게 내보세요. 왁자지껄한 1년 교실 생활이 소중하게 담길 겁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일기부터 사진까지 담은 우리반 추억상자
문집, 어떻게 만들까?
‘시나 문장을 모아 엮은 책’을 문집이라고 한다. 학급 문집은 교실 생활을 담아내는 매체이자 아이들 생각이 스며 있는 추억상자가 된다.
학급 문집에는 보통 학생들의 일기뿐 아니라 수필, 시, 독후감, 그림 등이 실린다. 문집을 처음부터 ‘작품’처럼 만들 필요는 없다. 매일 한두 줄이라도 쓴 일기가 있다면 그것을 모아 엮어내는 것도 문집이다. 이영근 교사의 ‘글똥누기’처럼 평소 아이들이 짧게 써낸 문장들을 달마다 모아 정리해두는 것도 좋다.
1. 문집에 꼭 들어가야 하는 항목을 정하자
학기 초 회의를 열어 ‘우리 반 문집에 꼭 들어갔으면 하는 내용’, ‘우리 반 1년 목표’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이 단계는 기획회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 관심사를 고려해 주별, 월별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등을 말해보게 하면 학급 운영을 어떻게 할지 밑그림이 그려진다.
2. 사진을 넣으면 문집이 풍성해진다
문집을 받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사진이 실린 면이다. 학사 일정을 토대로 체육대회, 체험학습 등 굵직한 행사에 따라 사진을 찍고 분류해두면 편집할 때 큰 힘이 들지 않는다. 학생별로 다양한 표정의 사진을 25장 정도 찍어두고, 문집을 엮을 때 학생마다 한 페이지씩 지정해 사진을 넣어주면 ‘학년 앨범’도 겸하는 문집이 된다. 사진은 ‘포토스케이프’ 등 프로그램으로 간단하게 작업할 수 있다.
3. 표지를 직접 그려보게 하자
학급 문집 이름과 표지 그림은 모든 아이들의 주요 관심사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면서 공모를 받는 식으로 진행하면 좋다. 기한과 주제, 양식 등을 정해주고, 접수된 표지를 아이들이 직접 고르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앞뒤 표지로 뽑히지 못한 그림은 문집 사이사이에 간지로 넣어준다. 문집 끝에 ‘표지를 만든 이’로 아이들 이름을 써주는 것도 잊지 말자.
4. 목차 등 형식도 신경 쓰자
문집 첫 장에는 글이나 사진을 바로 찾을 수 있게 쪽수를 써준다. 목차에 해당하는 쪽수는 문집 편집을 모두 마치고 해야 한다. 글이 한 편이라도 밀리거나 바뀌면 쪽수를 모두 수정해야 하는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도움말: 군포양정초 이영근 교사>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