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페미니즘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으레 생리통이 없는 여성과 그들이 저지르는 생리휴가 악용, 그것만 봐도 우리 사회가 남성을 오히려 역차별하는 사회임을 알 수 있다는 성토가 쏟아진다. 실제로 여학교에 근무하는 여교사로부터 생리결석을 악용(?)하는 여학생 사례를 듣기도 했다. 현재 제도에 따르면 아이가 아파서 학교에 결석할 경우 출석부에는 구체적인 병명과 함께 병으로 결석했다는 흔적이 남게 된다. 그런데 이런 기록이 남아 있으면 대학 입시에서 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병결석 대신 생리결석을 이용하라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생리결석의 경우 병결석과는 달리 출석부에 아무 기록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똑같이 몸이 안 좋아 결석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여학생만 흔적을 남기지 않을 방법이 있으니 불공평하다는 말을 듣고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아득해졌다.
‘평등’을 위해 사라져야 할 것은 ‘생리결석’ 제도가 아닌 학생 출석부의 ‘병결석’을 게으름의 증거로 보는 시험관들이다. 물론 이런 이들이 실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아직도 “같은 성적이면 당연히 개근한 학생을 뽑지 않겠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학생은 아무리 몸이 아프고 힘들더라도 학교에 가야 한다는 학대에 가까운 인식이 있을 뿐이다. 남학생, 여학생 할 것 없이 몸이 아프거나 힘들 때는 하루쯤 편안하게 쉴 수 있고, 그것이 자신의 미래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상황이 되면 생리결석이란 것을 따로 나눠서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진 일이 있다. 그날 수업 주제는 줄넘기였는데 별생각 없이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의 성취 기준을 낮게 잡았다. 불공평하다고 여긴 남자애들이 나에겐 차마 항의하지 못하고 수업이 끝난 뒤 빈정거린 것이 싸움의 원인인 모양이었다. 근엄한 표정으로 우정과 배려에 대한 바보 같은 설교를 하다 결국 부끄러운 마음에 사과의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의 운동능력 차이에 따른 기준도 아닌 성별에 따른 불공평한 기준으로 테스트한 내가 가장 큰 범인이었고 바뀌어야 할 구조였다.
아이들에게 사과하며 내 옆에 있는 만만한 동료를 탓하는 대신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이득 또는 손해를 끼칠 만한 힘을 가진 이들을 비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선생님도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러분이 쉽게 다양한 의견을 건넬 수 있는 상대가 되려고 노력하겠다는 말도 했다. 물론 선생님처럼 공동체에서 권위가 있는 누군가에게 항의하는 것은 만만한 동급생을 탓하거나 그저 입을 다물고 이득을 보는 것과 달리 어렵고 힘든 일이다. 어렵고 힘든 길을 걷고자 하는 실수투성이 시민으로서 초등학교에서 자라나는 동료 시민들이 우리를 둘러싼 구조를 먼저 살펴보고, 문제가 있을 때 이를 바꾸는 길에 합류해주길 바란다.
서한솔(서울 상천초등학교 교사, 초등성평등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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