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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보지 말라고 안 보나요? ‘제대로 보는 법’ 알려줘야죠

등록 2018-02-20 10:09수정 2020-02-27 15:42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어릴 때부터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
‘유튜버 되겠다’는 아이들도 늘어
뉴스 분석·비판·재생산 교육 중요

‘뭘 말하나’, ‘어떻게 봐야 하나’ 등
비판적 사고력 기르는 훈련 해봐야
콘텐츠 독해하며 사회상 읽어낼 수도

지난해 11월2일 안성 동신초 6학년 학생들이 김자영 교사의 '1인 미디어 알아보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학생들은 '뉴스와 신문 읽고 생각 떠올리기' 활동을 한 뒤 '피엠아이(PMI)' 분석을 진행했다. 김자영 교사 제공
지난해 11월2일 안성 동신초 6학년 학생들이 김자영 교사의 '1인 미디어 알아보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학생들은 '뉴스와 신문 읽고 생각 떠올리기' 활동을 한 뒤 '피엠아이(PMI)' 분석을 진행했다. 김자영 교사 제공

“무조건 안 보게 할 수는 없어요. 교육 과정 안에서 그 영상들이 왜 재미있는지, 어떤 부분이 나쁜지 등 스스로 성찰하는 힘을 키워주는 것만이 답입니다.”

안성 동신초등학교 김자영 교사의 말이다. 김 교사는 지난해 2학년 수업에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장래희망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던 어느 수업 시간, 전통적으로 인기 직업 1위를 차지했던 ‘경찰관, 의사, 교사’는 간데없고 ‘유튜브 크리에이터, 미니어처 디자이너’ 등이 순위권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채널에서 많이 쓰는 ‘앙 기모띠’(기분 좋다는 뜻으로 일본 성인동영상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 등의 말을 교실에서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이런 고민은 학부모 상담 내용과도 연결됐다. “아이들이 집에서 유튜브에만 빠져 있다며, 부모님들도 고민이 많더군요.”

‘생비자’ 입장에서 미디어 독해하는 활동

김 교사는 유튜브 등으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 시대’에 어떤 방식의 수업을 만들어 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특히 ‘생비자’(‘생산자’와 ‘소비자’를 합쳐 부르는 말) 개념에 주목했다. 아이들이 단순히 뉴스·영상 소비자가 아닌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방식에도 관심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해본 것이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인터넷 뉴스, 조회 수 200만이 넘어가는 1인 미디어 방송…. 부모와 교사가 정보의 양과 질을 하나하나 걸러내 ‘떠먹여주듯’ 선별하는 시대는 지났다. 선별할 여유도 없이 아이들 앞에는 수많은 정보가 홍수같이 쏟아진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보통 ‘신문·방송·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이해·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다시 말해 미디어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재생산할 수 있는 힘이다.

김 교사는 ‘1인 미디어 바로 알기’라는 이름으로 수업을 기획하면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 수업은 초등 5학년 국어 교육 과정에 있는 ‘매체로 의사소통해요’ 단원과 연계가 가능했다.

우선 혐오 표현이 주를 이루는 인터넷 1인 방송을 ‘피엠아이(PMI) 기법’으로 분석해봤다. 피엠아이에서 P는 좋은 점(Plus), M은 나쁜 점(Minus), I는 흥미로운 점(Interest)을 말한다. 아이들은 좋은 점으로 ‘돈을 벌 수 있다, 누구나 방송인이 될 수 있다’를, 나쁜 점으로 ‘몰카(불법촬영) 방송을 한다, 욕설이 많이 나온다’를 적어냈다. 흥미로운 점으로는 단연 ‘방송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를 적은 아이들이 많았다.

‘내가 영상 제작자라면 어떤 콘텐츠를 만들 것인가? 어떤 영향을 미칠까?’ 등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었다. 김 교사는 “청소년이 가장 많이 접하는 인터넷 방송 등 미디어 관련 교육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며 “유해 방송 골라보기, 해로운 방송인 이유 생각해보기, 우리 가족 미디어 약속 만들어보기 등 학교와 가정이 함께 관련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다”고 했다.

누리집이나 스마트폰 앱을 열기가 무섭게 매일 쏟아지는 기사와 영상 속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아이들에게 ‘건강한 거름망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김아미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디어 리터러시는 텍스트나 영상이 생산·소비되는 과정부터, 어떤 맥락에서 기능하고 있는지 등을 비판적으로 읽게 해준다”며 “아이들이 뉴스나 특정 영상을 본 뒤에 ‘자기 생각’을 갖고 선별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이 교육의 핵심은 ‘비판적 사고력 기르기’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영상을 공유하며 즐기는 차원을 넘어서, ‘이 영상 제작자가 뭘 말하려고 했는지,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콘텐츠는 없는지, 나라면 어떤 영상을 만들고 싶은지’ 등을 생산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주는 거죠.”

지난해 10월30일 서울 마곡중 1학년 학생들이 장은주 교사의 수업시간에 <홍길동전>을 읽고 '백성일보'
지난해 10월30일 서울 마곡중 1학년 학생들이 장은주 교사의 수업시간에 <홍길동전>을 읽고 '백성일보'

고전 소설 ‘홍길동전’ 읽고 카드뉴스 만들어

영상뿐 아니라 고전 소설로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가능하다. 서울 마곡중학교 장은주 교사는 지난해 국어 교과 시간에 <홍길동전>을 활용해 아이들이 미디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수업을 해봤다. 종이신문보다는 ‘클릭하는 뉴스’에 익숙한 아이들이 이 시간을 통해 ‘은수저 신문’, ‘백성일보’ 등을 만들어냈다. 장 교사는 홍길동전에 나타난 왕족, 중인, 천민 등 계급 관계에 먼저 주목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소설을 읽은 뒤 특정 계급의 관점에서 기사를 작성해보고, 아이들 각자 언론사를 만들도록 했다. 장 교사는 “‘우리 신문은 누구를 대변하는 신문인가’ 등을 주제로 활발하게 토론했다”며 “기사, 사설, 칼럼, 광고 등 지면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를 영상, 카드뉴스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왕족이 많이 보는 신문에는 어떤 광고가 나갈까?’, ‘천민 대상의 지면에는 꽃가마보다는 생필품 광고가 더 많이 나가지 않을까?’ 등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홍길동전>을 읽으며 아이들이 주목한 대목도 현재의 사회상을 반영했다. 장 교사는 “부모세대의 경우 ‘의적 홍길동’에 초점 맞춘 교육을 받았지만, 학생들은 홍길동전 도입부의 ‘홍 판서가 몸종인 춘삼을 범했다’는 대목에서부터 문제를 제기했다”고 했다. 1학년 양지원양은 “주어진 텍스트인 <홍길동전>을 부녀자의 관점에서 분석해 카드뉴스를 만들었다”며 “국어 시간에 읽은 고전 소설을 조선 시대 여성 인권과 결합해보면서 역사·사회 공부도 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장 교사는 “지금 시대에는 글자나 영상 등 콘텐츠를 읽어내는 힘이 미디어 리터러시”라며 “현재 아이들이 가진 ‘렌즈’를 통해 고전 소설을 읽고 시대상을 분석한다는 측면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사회 참여 활동의 하나라고 본다”고 했다.

'은수저 신문' 등 계급 요소에 주목한 신문을 만들었다. 장은주 교사 제공
'은수저 신문' 등 계급 요소에 주목한 신문을 만들었다. 장은주 교사 제공

‘소년법’ 등 뉴스 기사 육하원칙으로 풀어내기

부천상원고등학교 권혜령 교사는 포털 사이트 ‘오피니언’ 코너를 활용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고 있다. 언론사별로 사설과 칼럼을 한눈에 볼 수 있어, 한 사건의 맥락과 이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관점을 파악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권 교사는 ‘관심 뉴스 찾기-기사 수집-모둠별 토론-육하원칙으로 요약해보기-개인 의견 말하기-전체 공유’의 과정을 적용했다. 먼저 학생들은 4명씩 모둠을 만든 뒤 관심 가는 이슈와 기사들을 수집했다. ‘소년법 개정’ 문제부터 ‘사드 배치’ 이슈까지 한 교실에서 다양한 주제 토론이 가능했다. 소년법 관련 기사를 수집·요약해본 2학년 신소현양은 “스마트폰으로 터치해 제목 위주로 봤던 뉴스를 육하원칙에 따라 써보니 새로웠다. ‘왜 이런 기사가 나왔을까’ 친구들과 토론한 뒤 소년법 개정에 대한 나만의 입장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고 했다. “클릭이나 터치로 기사를 ‘슥’ 넘겨보던 소비자였는데, 사건을 요약하고 ‘누가, 어떻게, 왜’ 등을 전지에 써보면서 뉴스 생산자가 되어보니 미디어가 새롭게 다가왔어요.”

뉴스 등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관련 자료 및 프로그램은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운영하는 ‘포미’ 누리집(www.forme.or.kr)을 활용하면 좋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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