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영아, 이번 여름방학 기숙학원 등록했다.”
평소 학업 관련 학원에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계획을 짜서 공부하는 것을 누구보다 응원해주시던 아버지께서 어느 날 이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하셨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 맞는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설레는 마음을 품었던 제게 2주 앞으로 다가온 기숙학원 입소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죠.
단 한 번도 강압적으로 뭔가를 시키거나 일방적인 통보를 한 적 없는 아버지의 결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고 묻고 싶었지만 의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왜?”라는 질문에도 몇 번, 몇 시간이고 진지하게 대답해주셨습니다. 단순히 답을 알려주기보단 질문이 토론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주셨죠.
사교육 또한 제게 모든 결정권을 주셨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처음 다닌 보습학원에서 매일 예습하는 것에 싫증을 느끼고, 집 근처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어하던 제 의견을 흔쾌히 들어주셨습니다. 이후로도 학원은 제가 필요하다 느끼는 때만 몇 번 다녔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제가 고교생이 된 뒤 가끔 “세영아, 학원 필요하지 않니?”, “고교 공부는 이전과 다르지 않니?”, “학원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대수롭지 않게 “필요하면 말할게요” 이렇게 넘어갔고요. 아버지는 저를 믿었지만 한편으로는 학원에 너무 안 보낸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하고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기숙학원에 입소했습니다. 충격의 기숙학원 등록은 모든 걸 자율적으로 해오던 제게 마치 수감생활과도 같았지만 지금은 부모님과 웃으며 떠올리는 에피소드가 됐습니다. 학업에 대한 도움보다는 오히려 그곳에 들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창립한 한국청소년학술대회(KSCY) 또한 이 시기에 기획하게 됐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가 창의적인 아이로 자라길 원하는 이상과 대학입시라는 현실 사이에서 불안감과 미안함을 느낍니다. 저 역시 기숙학원에 다녀온 뒤 부모님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통해 부모님이 미안함과 불안감에 평소와 다른 판단을 하셨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계획과 공부법에 대해 말씀드리고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죠. 이 일을 계기로 교육을 두고 부모-자녀 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의 중요성도 배웠습니다. 다소 어색하더라도 부모님이 학원을 보내거나 자녀의 교육 방향을 정할 때 생각과 의도가 무엇인지 자녀에게 말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어떤 부분이 힘든지, 자신의 계획은 무엇인지 말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시행착오나 갈등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자녀가 자신의 공부법이나 계획을 아직 찾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부모님들은 자녀를 더욱 못 믿게 되죠. 이때 자녀가 자신의 공부법을 찾도록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학원에 다니더라도 그곳에서 어떻게 가르치는지, 본인과 맞는지 등 한 달 정도 맛보기로 다녀보며 그 학원이 필요한 이유를 찾아보라고 하거나 자녀에게 맞는 또 다른 학원이나 공부법을 알아보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자신의 공부법을 찾고,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법을 배워나간다면 고3 공부를 할 때도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리고 누구도 공부하라 시키지 않는 대학생활 속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근력도 생기게 될 거고요. 새 학기를 앞두고 사교육을 주제로 부모님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여담이지만 아버지는 지금도 그때의 일방적인 기숙학원 등록을 미안해하신답니다.
이세영(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 전공, 한국청소년학술대회 KSCY 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