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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페미니즘은 융합학문…토론 수업 주제에 딱 맞아

등록 2018-02-05 20:25수정 2018-02-06 10:05

‘페미니즘 톺아보기’ 어떻게 할까?
※ 표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페미니즘 열풍이 뜨겁다. 지난해 출판계 ‘핫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페미니즘이 들어갔을 정도다. 청소년들 가운데에도 페미니즘 관련 책을 보는 이들이 많다.

시중에 나와 있는 페미니즘 관련 책은 양극화가 뚜렷하다. 한쪽에는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만 심도는 다소 아쉬운 에세이나 소설, 가벼운 읽을거리 등이 있다. 한쪽에 전문서도 있는데 일독하려면 상당한 각오를 해야 한다. 한 예로 유명한 페미니즘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의 책을 펼치면 첫 페이지부터 난해한 문장과 표현에 머릿속이 어지럽다. 또 페미니즘 안에서도 남녀 불평등, 가부장제의 발생 이유 등을 놓고 의견이 다양하다.

남성과 여성은 과학적으로 따지면 일단 생물학적 개념이다. 한국 학생들은 과학 시간에 진화론을 배운다. 한데 진화론의 현대판인 진화생물학·심리학과 페미니즘은 거칠게 말하면 ‘견원지간’이다. 페미니즘은 “동물계에서 확인된 논리를 인간 사회에 제멋대로 대입한다. 인간은 사회·문화적으로 봐야 한다”고 진화생물학을 비난한다. 진화생물학 쪽은 “인간이 신의 특별한 피조물이 아니라 동물의 하나라는 걸 찰스 다윈이 밝힌 지 15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인간의 특수성만 내세운다”고 상대방을 비판한다.

융복합 지식이 강조되는 지금 “앞으로 인문학과 이공계 지식의 장벽은 없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문과 지식인 페미니즘과 이과 지식인 진화생물학이 남녀를 바라보는 차이는 크다.

페미니즘 관심 뜨거운 가운데
관련 책 읽는 청소년도 늘어
과학 교과 속 진화생물학·심리학
남녀불평등·가부장제 발생 배경 등
페미니즘과 다른 시각 보여줘
문과-이과 지식 장벽 사라지지만
양쪽 남녀 바라보는 차이 너무 커

■ 생물학적 차이 대 문화적 차이

진화생물학은 남성과 여성의 덩치 차이, 힘의 차이에 주목한다. 남성은 여성보다 평균 신장이 10% 정도 크고 몸무게는 20%가량 무겁다. 쥐는 힘인 악력이 50%, 상체의 힘이 100% 강하다. 진화생물학은 진화를 가장 합리적인 과정이라고 본다. 모든 진화생물학자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주류 이론은 이렇다. 진화생물학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는 결과이므로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여기에 수렵채집 사회에서 남성은 사냥과 전쟁, 여성은 야생식물 채집과 육아를 담당하는 성별 분업이 보편적이라는 인류학자들의 조사 결과까지 보태졌다.(공교롭게도 진화생물학자와 인류학자들 대부분이 남성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분석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런 주장이라면 남녀의 성별 차이, 성별 분업, 이로 인한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는 논리로 귀결되기 쉽다.

지난해 말 <나의 첫 젠더 수업>(창비)이라는 책을 펴낸 김고연주 서울시 젠더자문관은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남성은 남성으로 키워지고 여성은 여성으로 키워지는 것으로 본다”고 소개했다. 그는 “수렵채집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이 거의 없었다. 농업시대나 자본주의 시대에 비하면 훨씬 평등했다”며 “이는 단지 생물학적 차이를 남녀 불평등의 원인으로 보기 힘들다는 반증”이라고 부연했다.

미국의 인류학자 로버트 켈리의 <수렵채집사회>(사회평론)를 보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수렵채집민들은 하루에 필요한 열량의 60~70%를 여성의 경제활동으로 충당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20만년 전 아프리카 북동부에서 출현했고 기원전 1만년쯤 농업을 시작하기 전까지 수렵채집 생활을 하며 살았다. 인류 역사 99.5%의 기간은 심각한 남녀불평등이 없었다.

■ ‘가부장제’를 둘러싼 다른 의견

가부장제의 탄생과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견해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주장이다. 그가 쓴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두레)은 잉여생산물·사유재산제가 생기면서 재산을 독점한 남성이 자신의 자식(특히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서 가족 안에서의 남성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여성을 억압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진화생물학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 주목한다. 특히 인간 아기가 다른 동물과는 달리 너무 무력하게 태어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헬렌 피셔는 그의 <성의 계약>(정신세계사)에서 “인간 아기는 3~4년 젖을 먹어야 하고 제대로 구실을 하려면 최소 15년을 키워야 한다”며 “엄마 혼자 아기를 키우기 힘들다. 아빠의 양육 도움을 받은 아기가 생존 능력이 훨씬 강했을 것이며, 따라서 엄마는 아기가 남편의 아기임을 보증해야 했고, 그게 일부일처제·일부다처제 발생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가부장제는 일부일처제·일부다처제를 기반으로 한다. 가부장제에 따르면 성매매 등을 통해 남성은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지만 아내의 연애는 엄격하게 금지된다. <총, 균, 쇠>(문학사상사)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섹스의 진화>(사이언스북스)라는 책에서 비슷한 견해를 말한다.

상당수 페미니스트 입장에서 볼 때 일부일처제는 여성 억압의 상징인데, 피셔나 다이아몬드 등은 되레 여성의 요구 또는 여성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부일처제가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이정은 성남여성의전화 이사는 “자본주의 발생 이유를 안다고 자본주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라며 “가부장제의 발생 원인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가부장제가 여성의 삶을 억압했느냐, 그리고 남성의 삶에도 얼마나 영향을 미쳤느냐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반문했다.

그는 “가부장제는 젊은 남자 등 남성 자신에게도 피해가 발생한다”며 “한데 성희롱 등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메일 본딩’(male bonding·남성연대)이 발생한다. 이해관계가 다른 남성들이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금방 연대를 해버린다”고 지적했다.

일부 남성우월주의자는 힘이 센 남성이 여성 여럿을 거느리는 일부다처제가 생물학적으로 맞는다며 우월감을 자랑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보면 단 40%의 남성만이 후손을 남겼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 일부다처제에서는 이른바 ‘능력 있는’ 남성이 여러 여성을 차지하므로 ‘능력 없는’ 남성은 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인류와 생물학적으로 가장 가깝다는 영장류를 보면 가족 형태가 제각각이다. 침팬지와 고릴라는 가장 힘센 수컷 지배, 보노보는 암컷 지배, 오랑우탄은 짝짓기할 때만 잠깐 암컷과 수컷이 동거할 뿐 기본적으로 나 홀로 생활을 한다.

김고연주 서울시 젠더자문관은 “백번 양보해 인간 아기가 무력해 아빠의 양육 도움이 필요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쳐도, 현재는 엄마의 ‘독박 육아’가 아닌가?”라며 “지난해 한국 출산율이 1.07명으로 한 사회의 인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2.1명의 절반에 불과한 이유가 뭔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여성의 출산과 양육은 숙명인가?

진짜 핵심 가운데 하나가 여성의 출산과 양육이다. 남성은 유방은 있으나 젖이 안 나온다. 여성이 아기를 낳고 수유를 해야 하는데 이러면 최소 3~4년이 지나가버린다. 일부 진화생물학자나 인류학자들은 수렵채집 시절에 여성이 사냥에서 배제됐던 이유로 생리혈(동물은 피 냄새에 민감하다)과 임신·육아로 인한 몇 년간의 공백기를 든다. 이 논리에 따르면 ‘여성 경력 단절’은 그 시대에도 있었던 셈이다.

장하준 교수는 그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에서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바꿨다”며 “세탁기·청소기 등이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을 덜어줬고 따라서 여성이 취업이 가능해졌고 이 때문에 여성 교육도 실시되고 그럼으로써 발언권이 세졌다”고 분석했다. 1800년대 중반에 개발된 조제분유가 여성 지위 향상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도 있다.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주기 위해 항상 대기해야 하는 부담을 없앴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여성운동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여성의 종속은 역사적으로 아이를 낳고 양육할 필요에서 왔다”며 “여성해방은 여성이 아이를 낳고 양육할 필요가 없어질 때, 즉 남성과 여성이 자연 출산을 포기할 때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미래 시대에 기술 발달로 굳이 인간의 몸을 빌리지 않고도 아기 출생이 가능해진다면? 이때도 남과 여의 구분이 존재할까? 이때도 남녀불평등이 존재할까? 이처럼 페미니즘은 인류 과거 역사와 미래 역사 전체에 대한 조망이 필요하다.

이정은 이사는 “어떤 상황이나 논쟁을 남성 또는 여성의 문제라고 환원하면 서로의 주장만 난무할 뿐 건설적인 방안을 생각하지 못한다”며 “지난 1999년 군복무 가산점 위헌 소송 신청인 가운데 장애 있는 남성 대학생도 있었는데 오직 여성들만 표적으로 삼는다”고 꼬집었다.

<함께하는 교육> 김태경 기자 ktk7000@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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