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이 지난 25일 오후 충청북도 진천군 국가대표선수촌 빙상훈련장 환영식에서 남쪽 선수단이 내민 꽃을 받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겨레 사설] 남북 화합과 육로 개방, 올림픽 너머까지 계속되길
평창 겨울올림픽이 남북의 평화·화합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남북은 17일 판문점에서 열린 차관급 실무회담을 통해 한반도기를 앞세운 공동입장,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외에 금강산에서 함께 올림픽 식전 문화행사를 열고, 원산 인근 마식령 스키장에서 남북 스키선수들이 공동훈련을 하기로 합의했다. 뿐만 아니라 230여명 규모의 북쪽 응원단은 평창 올림픽 기간 중에 남쪽과 북쪽 선수들의 경기를 응원하고, 남쪽 응원단과의 공동응원도 진행하기로 했다. 북한 응원단이 평창에서 남쪽 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북한 선수단·대표단과 응원단은 경의선 육로를 통해 남쪽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서해선 육로는 개성공단 운영에 이용하던 경의선 육로로,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로 2년간 차단됐는데, 이번에 다시 열리는 것이다. 또 금강산 공동행사와 마식령 스키장 훈련이 진행되면, 남쪽 선수단도 방북을 한다. 이때 이용하게 될 동해선 육로도 2008년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사실상 끊긴 연결로다. ‘평창’이 이처럼 끊어진 남북 간의 길에 다시 숨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남북 선수단이 서로 방북·방남을 하고, 함께 훈련하고, 경기하고, 응원하는 등 오랫동안 사라졌던 하나된 남북의 모습이 실제화되는 것이다. 비록 정치적 의도를 완전히 배제할 순 없겠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평창 올림픽은 남북 화합을 끌어낸 평화 올림픽이 될 것이다.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놓고 공동입장, 단일팀 구성 등에 관해 우리 사회 안에서 여러 논쟁이 일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남북이 서로 만나 머리를 맞대고, 길을 통해 서로 오가는 것이 ‘평화’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단일팀 구성과 공동입장이 자칫 우리 내부에 생채기를 심하게 내지 않도록 세심하게 접근하면서, 화해와 평화를 향한 물꼬를 트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사설] 단일팀·한반도기 합의한 평창올림픽, 논란은 남았다
평창 겨울올림픽에 500여 명 규모의 북한 대표단이 참가한다.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단은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한다. 여자 아이스하키팀은 남북단일팀을 구성해 출전한다. 또 올림픽 개막 전 금강산 지역에서 남북 합동 문화행사를 갖고, 남북 스키선수들은 북측 마식령 스키장에서 공동훈련을 진행한다. 1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실무회담 결과다. 북한 대표단에는 이미 합의한 예술단 140여 명에 응원단 230여 명 등이 포함됐다.
이로써 남북 간에 대체적인 협의는 끝났다. 이제 평화롭게 올림픽이 치러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간 정부의 태도에는 아쉬움이 많다. 한반도기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충분히 설득하기는커녕 ‘색깔론’ ‘무조건적 흠집내기’로 몰아붙였다. 단일팀으로 인한 선수들의 피해에 대해 “메달권에 있지 않다”고 한 이낙연 총리의 말이나 “평화 올림픽을 색깔론으로 몰고 가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유치하고 잘못된 태도”라고 지적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은 대단히 부적절했다. 과거처럼 한반도기를 그저 벅차게 바라보지 못하게 된 것은 북한 핵이라는 엄중한 현실 때문 아닌가. 이날 선수촌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단일팀에 대해 “역사의 명장면이 될 것”이라 했지만, 정치를 위해 스포츠를 희생한 게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표단은 서해안 육로로 들어오지만, 북한은 지난 15일 실무회담에서 예술단의 이동 경로로 판문점을 제안했다. 3개월 전 북한 병사가 피를 흘리고 귀순한 판문점을 예술단이 걸어 넘어오는 평화공세로 보인다. 앞으로도 ‘미녀응원단’,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악단’ 등 평창의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킬 북한 측 카드가 적지 않다. 화합의 무대 평창은 환영이지만, 북한의 ‘평화 이벤트’에 일방적으로 판 깔아 주기 식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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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남북단일팀 참가 1945년 분단 이후 남북은 10회 넘게 단일팀 구성을 추진했지만 남북단일팀이 실제로 경기에 출전한 것은 단 두 번뿐이다. 남북단일팀은 코리아란 이름으로 19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1991년 1월15일과 31일에 제2, 3차 남북체육회담을 거치면서 서로의 입장을 조정한 남북한은 2월12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4차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 대표들은 1991년 4월26일부터 일본 지바에서 열리는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6월15일부터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을 구성·출전시킨다는 역사적인 합의를 이루었다. 이 합의 정신에 따라 남북은 두 대회에 단일팀 ‘코리아’로 출전하여 탁구선수권대회에서 여자팀(현정화·리분희 등)은 단체전 우승, 남자팀은 단체전 4강 진출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남북한 국민에게 큰 감동을 안겼다. 또 이 대회부터 남북한 국기 대신 하늘색 한반도기가 사용됐고, 국가 대신 ‘아리랑’이 불렸다. 이어 그해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도 남북 단일 축구팀이 참가해 사상 첫 8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그러나 이후 단일팀 구성은 남북한 최종 협상 타결을 앞두고 여러 차례 좌절돼 성사되지 못했고,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개·폐회식에서 남북한 동시 입장만 이뤄졌다. 비록 통일축구대회가 정례화되거나 모든 국제대회에 단일팀으로 출전하는 등 스포츠에서의 완전한 통일은 이루지 못했지만 남북한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분단 이후 남북체육회담을 수십 차례 열었고 남북단일팀 참가를 위한 협의가 수차례 있었지만 실제로 남북한 단일팀이 결성되어 대회에 참가한 사례는 그동안 두 차례밖에 없고 이번 평창겨울올림픽이 세 번째다. 그만큼 남북교류의 역사적인 합의를 이룬 데 비하면 이를 둘러싼 국내 찬반으로 갈린 갈등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연재사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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