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서연중학교 학생들이 엘지씨엔에스(LG CNS)가 중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하는 ‘코딩 지니어스’ 실습을 하고 있다. 엘지씨엔에스 제공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건 여러분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Everybody in this country should learn how to program a computer, because it teaches you how to think)
스티브 잡스의 이 말은 우리나라 어린이 코딩 학원 상당수 누리집에 걸려 있다. “아이들을 위한 컴퓨터 교육은 빠를수록 좋다”(마크 저커버그),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창의력을 길러준다”(빌 게이츠)도 단골이다. “비디오 게임을 사지만 말고 직접 만들어라! 앱을 다운받지만 말고 직접 디자인해봐라!”고 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등장한다.
스티브 잡스는 미래 사회에서는 인문적 지식과 이공계통 지식의 융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딩 교육은 지식 융복합을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한겨레> 자료사진
교육부가 초중등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강화하면서 학부모들은 급해졌다. 미래 사회에 필요한 창의력을 키워주겠다는 게 목표이지만 모든 게 입시로 귀결되는 한국 현실에서는 왜곡되기에 십상이다. 사교육 업체들은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더욱 자극한다. 결국 교육부는 지난해 12월 소프트웨어 관련 학원 단속을 벌여 허위 과장?과대 광고 등을 한 업체 135곳을 적발하기도 했다.
실제 코딩을 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이런 사태를 어떻게 볼까?
“영어 교육 10년 넘게 받아도 우리나라 사람 영어로 대화 잘 못한다. 코딩도 비슷하다. 소프트웨어 개발 툴(tool) 기능을 많이 알아도 소용없다. 직접 프로그램을 짜봐야 한다.”
스마트폰 게임 업체 ‘모하 게임스’의 방윤석 기술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게임을 좋아해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그는 26년째 ‘코딩 중’이다.
이 회사 이종하 시이오(CEO)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는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기능을 숙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데 더 중요한 건 엑셀이나 파워포인트에 담긴 콘텐츠의 질”이라며 “시이오 입장에서 볼 때 코딩 능력은 출중하지만 아이디어가 다소 떨어지는 인력과 코딩 능력은 약간 부족해도 아이디어가 풍부한 인력이 있다면 후자를 뽑겠다”고 했다.
시(C)·지더블유(GW)베이직·자바·파이선 등 소프트웨어 툴 또는 개발언어는 사진 편집하는 포토샵과 같은 거다. 이전에 포토샵에 숙달한 사람은 타인의 부러움을 샀지만 요즘에는 웹사이트에 사진을 올리면 자동으로 보정해주는 곳도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 툴도 마찬가지다. 성능이 좋아져 전에는 이쪽 분야 은어로 ‘노가다’를 해야 했던 기능이 지금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구현된다.
“2명이 만나면 서로 총격전이 벌어지는 장면, 이전에는 거리·색상·형태 변화 등 변수를 고려해 알고리즘을 짜야 했다. 한데 요즘 ‘유니티’라는 툴에서 ‘둘이 만나면 총격전’ 이렇게 설정하면 만들어준다.”
방 기술이사는 기술이 발전하면 앞으로 ‘자동 코딩기’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코딩 교육이 필요할까?
“구글·페이스북·애플 등의 회사를 보면 개발자가 창업하거나 초기부터 개발자와 함께한 경우가 많다. 코딩을 잘 알면 창의력이 자극될 수 있고 아이디어가 구현 가능한지 더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다. 컴퓨터 세계의 작동 원리를 아는 건 상식이다. 이제는 누구나 코딩을 해야 하는 시대, 그리고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렇게 말한 김석준씨는 포르투갈어를 전공하고 졸업 뒤 사업을 했다가 접고 31살 때부터 코딩을 시작했다. 그는 현재 아이티(IT) 업체 스트리미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코딩 교육 관련해서 가장 피해야 할 것으로 주입식·암기식 교육을 꼽았다.
“어린 학생들 상대로 코딩 교육을 몇 번 해봤다. 일부는 국·영·수 학원에 강제로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코딩의 핵심은 창의력인데 나는 ‘창의력은 심심해야 생긴다’고 본다. 나도 알고리즘 안 풀리면 게임 하면서 머리를 식힌다.”
김씨는 “프로그램 개발도 코딩하는 사람, 아이디어 제공하는 사람, 사업성 따져보는 사람 등 여러 명의 협업”이라며 “학교 코딩 교육도 개발하는 아이, 아이디어 제공하는 아이 등 여럿이 함께하는 협력 작업으로 진행하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흥미’와 ‘재미’가 코딩의 첫걸음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생산성본부가 주최한 제1회 소프트웨어(SW)코딩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광주광역시 송원초등학교 6학년 노현서양은 게임을 즐기다 직접 만들어 보게 됐다. 노양의 어머니 김미영씨는 “아이들이 게임 좋아하는 건 당연하다”며 “월~금요일은 스마트폰 금지, 그 대신 주말은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했다. 아이의 흥미와 재능을 장려했다”고 말했다. 한데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게임을 ‘호환마마’보다도 무서워한다.
코딩 교육과 관련해 중요한 게 학부모들의 인식이다.
서울 대치동의 코딩학원 ‘플레이코딩아카데미’ 심중원 대표는 “입시를 얘기하면 수강생 안 받는다고 학부모한테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사교육 업계에 있는데 입시와 관련짓지 않으면서 경영이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깨어 있는 학부모들은 설명하면 무슨 뜻인지 안다”고 부연했다.
“코딩은 암기가 아니다. 코딩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는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2016년 8월 창업했다. 코딩 교육을 위한 공개형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사업을 확대하는 게 목적이다. 심 대표는 “제가 소프트웨어 개발을 해봤기 때문에 코딩이 주입식·암기식 또는 입시와 연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안다”며 “한국에서 코딩 교육이 점수·등수 매기는 식으로 가는 순간 교육 효과는 별로 없다”고 단언했다.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귀둔초등학교 학생이 화상 교육을 통해 소프트웨어 전문가로부터 코딩을 배우고 있다. 교육부 제공
교육부도 이 점을 알고 있다. 교육부 융합교육팀 장원영 연구사는 “소프트웨어 교육 관련해서는 중학교까지는 100% 수행평가가 가능하다”며 “현재 대부분의 학교가 70~80%는 수행평가, 나머지는 지필 평가인데 100% 수행평가를 하는 학교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능에 코딩 관련 문제를 넣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현재 교육부는 수능에 포함할 계획이 없다”고 강조했다.
생산성본부 소프트웨어코딩경진대회에서 심사위원을 했던 송복민 교육 콘텐츠 개발자는 “코딩 교육을 C나 GW베이직 같은 개발 툴의 기능을 배우는 것으로 협소하게 아는 학부모가 많다”며 “학부모들을 상대로 코딩 교육의 의미를 먼저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다행히 소프트웨어코딩경진대회에 나온 초등학생들의 창의성이 기대보다 훨씬 높았다”며 “스마트 냉장고를 제어하는 프로그램을 짜라는 요구에 유통기간이 지나거나 저장 물품이 떨어지면 자동으로 인터넷 쇼핑몰과 연결해 물건을 주문하는 알고리즘을 짠 학생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김태경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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