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성폭행 예방교육이 해로운 이유

등록 2018-01-15 21:10수정 2018-01-16 10:19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0교시 페미니즘】
성폭행은 피해자가 예방할 수 없다. 끔찍한 진실이다. 내 아이를 어떻게 조심시켜도 운이 나쁘면 성폭행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로 이루어지는 성폭행 예방교육은 유용하지 못한 것을 넘어 해롭다.

아이들은 예방교육에서 배운 것들을 지킬 수 없다. 깜깜한 밤에 돌아다니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오후 5시만 되어도 어둑해지는 겨울이 있지 않은가. 이른바 ‘학원 뺑뺑이’를 돌고 집에 가는 시간이면 이미 어두워져 있다. 학원이며 학습지에 쫓기느라 친구들과 약속 하나 잡기 어려운 아이들이다. 혼자 다녀선 안 된다는 말도 지키기 어렵다.

간단해 보이는 예방수칙은 사실상 지키기 불가능에 가깝다. 실효성도 없다. 어린이 성폭행 가해자가 ‘모르는 사람’인 경우는 35%에 불과하다. 아버지와 절대 단둘이 있어서는 안 된다거나, 동네 어른들에게 아는 척도 하지 말라고 가르칠 수 없는 이상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켜도 65%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범죄가 이미 이루어졌을 때 유일한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안 돼요, 싫어요!”는 오히려 범죄자를 겁에 질리게 해 아이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성폭행을 당했을 때는 임신 위험도 있고, 몸을 많이 다쳤을 수 있으니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한다는 내 설명에 “성폭행을 당했는데 왜 임신을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많은 아이들, 노골적으로 말해 포르노를 접하기 이전의 아이들이 성폭행에 대해 갖는 생각은 ‘부끄러운 부분을 맞는 것’에 가깝다. 순결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는 성교육은 성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게 막는다.

심지어 교육이 아이에게 해를 끼친다. 지킬 수 없는 규칙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아이들은 손쉽게 이를 어기고 실효성이 없으니 범죄는 실제로 벌어진다. 피해자가 된 아이들 입을 오히려 지침이 막기도 한다. 아이가 ‘밤늦게 다녔다고 혼날까 봐’ ‘입지 말라는 짧은 옷을 입어 꾸중 들을까 봐’ 성폭행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보호자들 인식도 그렇다. 안전수칙을 잘 지키는 내 아이는 절대로 피해자가 될 리 없으리란 환상이, 내 아이의 일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비난을 피해자에게 퍼붓게 한다. 피해자 행실을 비난함으로써 내 아이와 피해자 사이의 선을 확고히 하고 그 존재하지도 않는 선이 내 아이를 지켜주리라 믿는다.

학교폭력 예방교육에서 친구에게 맞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행동 수칙을 가르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는가? 당연히 없을 것이다. 피해자가 어떤 행동을 하건 폭력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 덕분이다. 성폭행 피해자가 어떤 행동을 했건 성폭력을 당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합의가 필요하다. 성폭행의 유일한 원인이 가해자라는 생각이 필요하다. 모두가 이 생각에 동의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가해자가 되지 않는 교육, 가해자를 키워내지 않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서한솔(서울 상천초등학교 교사, 초등성평등연구회 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단독] 경찰들 “윤석열 출퇴근 쇼, 힘들었다”…가짜출근 정황 파문 1.

[단독] 경찰들 “윤석열 출퇴근 쇼, 힘들었다”…가짜출근 정황 파문

김건희 모교에 대자보…“부끄럽지 않은 학교 졸업하게 해달라” 2.

김건희 모교에 대자보…“부끄럽지 않은 학교 졸업하게 해달라”

“삼가 故 당의 자진해산 기원”…청년들 국힘에 ‘사망 선고’ 3.

“삼가 故 당의 자진해산 기원”…청년들 국힘에 ‘사망 선고’

법무부 “구속된 김용현 자살 시도…현재는 건강 우려 없어” 4.

법무부 “구속된 김용현 자살 시도…현재는 건강 우려 없어”

임은정 “군인의 내란 명령 불복종 부러워, 검사엔 없는 면모” 5.

임은정 “군인의 내란 명령 불복종 부러워, 검사엔 없는 면모”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