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페미니즘]
남자아이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진로 수업에서 군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아이로 초등학교를 다닌 내가 진로 희망에 해군 대신 교사를 쓰는 것이 적절하단 것을 알게 될 시기 즈음, 남자아이들도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하게 되는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걸까 싶었다.
군대에서 다루는 무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며 내가 두려워하길 기다리는 남자는 많았다. 자신이 겪었던 군대 내 끔찍한 인권침해 사례를 말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는 오직 내가 감탄하거나 두려움을 표할 때만 이어졌다. 동등한 시민으로서 분노하고, 군대를 바꿔보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군대는 원래 그런 것이고 그래서 내가 어른이 된 것도 사실이며 이래서 여자는 조직 생활이 힘들다는 둥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취급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두려워하고 분노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수류탄을 던졌는데 토끼나 다람쥐가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자신이 사람을 죽여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끔찍하게 여겼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알려주었을 때 많은 남자아이들이 그 제도를 이용하겠다고 나섰다. 한국에서는 아직 인정받지 못하는 제도이고 병역거부를 선택한 사람은 모두 교도소에 갔다고 했더니 대단히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군대 이야기를 다시 마주하게 된 건 5학년 진로 수업 시간이었다. 남자아이들이 먼저 군대 이야기를 꺼냈다. 태도는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군대에서 다루는 총기며 탱크 등에 대해 지식이 많은 아이는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지식을 뽐냈다. 궁금한 걸 물어본 여자아이는 “넌 몰라도 된다”는 핀잔을 들었다.
남성 특유의 용맹함이 5학년이 되었을 때 싹터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일까? 생명체로서 다른 생명체를 죽이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군인으로서 하는 행위의 정당성과 상관없이 자연스럽다. 한국의 남자아이들은 그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내보이는 것이 힘들 정도의 압박을 받고 있을 뿐이다. 나도 이 압박에 한몫했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전쟁영웅에 대한 드라마를 시청하며 이루어지는 역사 수업, 추천 도서 목록에 올라 있는 위인전 속 이야기들, 하다못해 ‘보디가드 피구’라고 하여 남학생이 여학생을 지키도록 만들어진 게임에서조차 그렇다. 남자아이들은 타고난 두려움을 숨김으로써 남자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들키면 남자 됨에서 탈락한다는 새로운 두려움을 맞이한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명백히 정해져 있는 세상에선 해군이 될 수 없는 ‘연약한 여자’도, 군인이 되어야만 하는 ‘강인한 남자’도 행복할 수 없다. 남몰래 꿈을 접은 여자아이들에게, 군대를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자아이들에게 내가 해야 하는 말은 무엇일까.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가르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한솔(서울상천초등학교, 초등성평등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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