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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울 학교에 ‘아빠 어벤저스’ 떴다

등록 2018-01-08 20:43수정 2018-01-08 20:47

[함께하는 교육] 세종 소담초 아버지회
지난 4일 세종 소담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버지회가 마련한 겨울놀이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이 메기 잡기 체험을 하고 있다.
지난 4일 세종 소담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버지회가 마련한 겨울놀이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이 메기 잡기 체험을 하고 있다.
체감온도 영하 2도를 가리켰던 지난 4일 오전. 세종시 소담초등학교 운동장에 메기 100마리가 담긴 야외수영장이 떡하니 들어섰다. 그 옆으로 커다란 솥에 어묵탕이 끓고 장작을 넣은 군고구마 통에는 고구마와 감자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운동장에는 투호, 제기, 윷, 팽이, 연 등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모든 준비 완료.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삼삼오오 운동장으로 모여들었다.

곧이어 준비체조가 끝나고 메인 행사인 메기 잡기 체험이 시작됐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발이 꽁꽁 얼어붙는 날씨에 찬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는다? 행사 주최 쪽은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미리 수영장을 둘러 커다란 천막을 치고 온풍기로 실내 온도를 데워놓았다. 덕분에 찬물에 잠깐 발을 담글 때만 빼면 큰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은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장갑 낀 손으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메기를 잡느라 신이 났다. 어른들이 이제 그만 나오라고 몇 번을 소리쳐야 할 정도였다. 옆에서는 연을 날리기 위해 줄을 붙잡고 운동장을 내달리고 친구와 투호놀이나 제기차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직장 핑계로 자녀교육 무관심하거나
학교 일 맡는 걸 서로 미루던 아빠들
지난해 아버지회 꾸려 80여명 활동중
‘아빠랑 학교 가자’ 행사로 교내 캠핑,
겨울놀이 등 직접 기획부터 진행까지
‘재밌고 추억 가득한 학교 만들기’ 목표

이날 겨울놀이 행사에서 아버지회 임환수 집행이사는 아들 준혁군과 고구마를 구워서 나눠줬다.
이날 겨울놀이 행사에서 아버지회 임환수 집행이사는 아들 준혁군과 고구마를 구워서 나눠줬다.

직접 행사 기획하고 재능 기부하는 ‘프로 아빠들’

이 행사는 ‘소담초등학교 어벤저스’를 자처하는 아버지회가 직접 기획한 ‘얘들아, 아빠랑 학교 가자-신나는 겨울놀이’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6월 창립한 아버지회는 학교 일에 참여하라는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6명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그 수가 늘어 80여명이 활동 중이다. 슬로건은 ‘아이에게 아빠를, 아빠에게 아이를, 엄마에게 자유를’. 바쁜 직장생활 속에서도 자녀들에게 멋진 추억을 만들어주고자 뭉쳤다.

이날 겨울놀이에는 300여명 학생과 학부모가 참여했다. 특히 학부모들은 겨울이라 춥다고 움츠러들고 집에서 스마트폰만 갖고 노는 아이들에게 바깥에서 뛰어놀 수 있게 해준 점을 만족해했다. 할머니, 아빠, 엄마, 6개월 된 동생까지 온 가족과 참여한 김준환(4학년)군은 “메기 두 마리 잡았다. 발은 시렸지만 잡는 게 어렵지 않아 재밌었다”고 했다. 옆에 있던 엄마 권민주씨는 “학교 행사는 처음 와본다. 아이가 좋아해서 남편도 휴가 내고 왔다. 멀리 체험학습 가면 멀미를 할까 봐 걱정하게 되는데 가까운 학교에서 가족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보통 학부모들은 회사나 가정에서 바쁘다 보니 학교 일을 맡아야 할 경우 서로 눈치를 보며 미루는 일이 많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먼저 나서 재능 기부를 하고 평소 네이버 밴드 등에서 활발히 소통하며 아이디어를 나눈다. 신도시라는 지역 특성상 다양한 지역에서 와서 아는 사람이 없었던 아빠들은 아버지회 덕분에 돈독한 친구가 생겼다.

아버지회에서 주최하는 행사는 수차례 회의를 거쳐 1~4개월 전부터 꼼꼼히 계획한다. 보도자료 작성, 동영상 촬영 등 역할 분담을 해 행사를 추진하고, 끝난 뒤엔 참여자 대상 만족도 조사까지 진행한다. 이전 행사와 비교하는 그래프까지 만들기도 한다.

초반에는 참여하는 아버지가 적어 어려움을 겪었지만 행사를 할수록 만족도가 높아져 회원도 금방 늘었다. 아버지회 오윤재 회장은 “그동안 아빠들이 접해보지 않아서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던 거였다. 직접 활동해보니 아버지들 각자 잘할 수 있는 일도 찾고, 신이 나서 즐기며 일한다”고 했다.

이들은 아버지회 활동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애들아, 아빠랑 학교 가자!’라는 프로그램을 분기별로 진행한다. 첫 행사는 지난해 6월에 진행한 ‘1박2일 학교 캠핑’이었다. 학창 시절 여름방학 전날 학교 교실에서 하룻밤을 보냈던 한 아빠의 추억에서 시작해 <한국방송>(KBS) 프로그램 ‘1박2일’을 벤치마킹했다. 밥차를 부르고 강당에서 다양한 게임을 해보며 하룻밤을 보냈다. 금강변을 함께 달리는 자전거 라이딩 행사, 원수산 둘레길 걷기 행사 등도 진행했다.

겨울놀이에 참여한 학생들이 아버지회에서 나눠준 고구마를 나눠먹고 있다.
겨울놀이에 참여한 학생들이 아버지회에서 나눠준 고구마를 나눠먹고 있다.

학교에 민원 제기하다 ‘민원 해결사’로 바뀌어

학교 쪽은 처음 학부모들이 학교에 많이 찾아오면 민원이 늘어날까 봐 걱정했다. 한 달에 한 번 학부모 대표와 교사 대표가 회의할 때도 “다른 학교는 이런 게 있는데 우리는 왜 없냐”는 등 불만사항 위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학교와 학부모회가 학교 축제를 함께 준비하면서 달라졌다.

유우석 혁신교육부장 교사는 “보통 학교가 행사를 주최하면 학부모들이 보조로 도와주는 정도였는데 직접 참여해 행사를 마련하니 부모들도 책임감을 더 갖더라. 평가회 때도 단순히 맘에 안 드는 점을 지적하기보다 구체적으로 부족한 점과 개선할 점을 나눌 수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회가 주도적으로 행사를 기획하면 학교는 예산을 지원하거나 가정통신문 보내주는 정도로만 돕는다. 유 교사는 “이전까지는 아버지들이 참여하는 행사는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나 가능했는데 평일에 휴가를 내고 적극 참여하는 등 아빠들의 열정이 남다르다”고 했다.

아버지회가 활성화되면서 교사가 아버지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있다. 한 5학년 교사는 실과 교과에 나온 ‘경제동물 기르기’ 체험을 하며 아이들과 병아리를 부화시켰는데 닭으로 커버리자 더 이상 교실에서 키우는 게 어려워졌다. 기계 설계 분야에서 일하는 오 회장은 아버지회 회의장에 찾아온 교사의 고민을 듣고 닭장 설계도를 그리고 재료를 사다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에 멋진 닭장을 만들었다. 이 닭은 새끼를 낳아 총 세 마리가 학교 안에 살고 있다.

아버지회는 교사의 요청으로 직접 설계도를 그려 아이들과 함께 닭장을 만들었다.
아버지회는 교사의 요청으로 직접 설계도를 그려 아이들과 함께 닭장을 만들었다.

아빠들은 이 활동으로 자녀와 관계가 좋아지는 것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챙기게 됐다. 주대근 부회장은 “아이가 가끔 심한 장난을 치며 반말로 편하게 대할 때는 당황스러웠는데 요즘은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아빠가 아버지회 활동하며 앞에 나서서 일하는 걸 보면서는 존경하는 눈빛을 보내는 것 같다(웃음)”고 했다.

박기찬 재무이사는 “보통 부모들이 자기 자식 아니면 나 몰라라 관심이 없는데 학교에 자주 오면서 다른 아이들과도 친해졌다. 삼촌이라고 부르며 달려와 ‘오늘 뭐 하냐’고 묻기도 한다. 내가 먼저 학교 밖에서 오가다 만나면 ‘잘 지내니?’ 하고 인사도 건넨다”고 했다. 박 이사는 “회사에서 점심을 거르거나 야근하며 학교 행사 자료를 만드니 아내가 오히려 걱정한다”고 했다. “모르는 이들에게는 ‘본업이 없냐’는 말도 들었다. 회사에서는 휴가 쓴다고 하면 이제 ‘학교 가냐, 아버지회지?’라고 먼저 물을 정도다.”

아버지회의 목표는 딱 하나다. 아이들이 “학교가 재밌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것. “아이들에게 추억 가득한 학교를 만들어주기 위해 올해도 사업을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다. 우리의 회의 내용,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진행까지 관련 자료를 모두 학교 누리집에 올려놨다. 다른 학교 아버지 등 누구라도 참고해서 학교 활동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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