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현재 1비트코인은 1800만원대를 오갔다. 사진은 서울 중구의 한 비트코인 거래소 시세판. 연합뉴스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한겨레 사설] 비트코인, ‘거래 금지’ 않을 거라면 ‘과세’ 서둘러야
정부가 암호화폐(가상통화) 투기거래 대응방안을 내놓은 13일 국내 거래소에서 암호화폐 가격은 큰 변동이 없었다.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한 거래자들의 믿음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다른 나라에도 거래 참여자가 많으니, 우리 정부 대책이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어차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를 고려하면 이번 대책을 통해 정부가 암호화폐를 제도적으로 수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에 더 의미를 둬야 한다. 거래자들은 정부가 더 강력한 추가 대책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부는 암호화폐가 금융상품도 아니고, 화폐는 더욱 아니라는 견해를 분명히 했다. 금융기관의 가상통화 보유와 매입, 담보 취득을 금지한 것에 그런 시각이 담겼다. 비트코인 거래시장에 금융기관 자금이 공급되는 것을 막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는 암호화폐를 재화로 인정할지는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않았다. 일부 당국자들의 말대로 암호화폐 거래가 ‘폰지 사기극’이라면 거래를 금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고 자유 거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 재화로 보고 거래에 세금을 매겨야 할 것이다. 정부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과세 문제를 검토하기로 했다. 거래를 금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기 때문일 텐데, 그렇다면 과세를 서두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투기 심리는 한번 불붙고 나면 정부 대책으로 가라앉히기가 매우 어렵다. 오로지 가격에 낀 거품의 크기를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때 투기판이 깨질 뿐이다. 정부가 암호화폐 가격이나 거래량을 봐가며 조급하게 굴지 말아야 할 이유다. 그보다는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더 신경을 쓰고 대책을 보완해가야 한다.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협조를 얻어 고교생 이하 미성년자의 계좌 개설과 거래를 금지하기로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 투명성 확보와 투자자 보호 강화 조처는 서둘러야 한다. 다단계·유사수신 방식의 암호화폐 투자금 모집에 대해서도 강력히 단속해야 한다.
거래 규제가 블록체인 기술 발전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주장에 정부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암호화폐 거래가 활성화된다고 해서 블록체인 기술개발 기업으로 돈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거래업자만 돈을 벌 뿐이다.
[중앙일보 사설] 비트코인 투기 광풍, 정부가 진정시킬 때 됐다
암호화폐(일명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에 투기 광풍이 불고 있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에서 지난 8일 1비트코인이 2499만원을 기록했다가 이틀 뒤 정부의 규제 검토 소식이 나오면서 1541만원으로 폭락했다. 그럼에도 비트코인은 올해에만 약 20배 상승하며 암호화폐 신드롬을 주도하고 있다. 20대 대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묻지마 투자’에 나서며 하루종일 비트코인 시세만 쳐다보는 ‘비트코인 좀비’들이 양산되고 있다. 이더리움 등 수십 가지 암호화폐가 등장하며 채굴기 판매와 투자 대행을 빙자한 각종 사기도 빈발하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란’을 연상케 하는 현상들이다.
암호화폐 광풍은 유독 한국에서 심하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은 “한국만큼 비트코인에 빠진 나라는 없다. 한국은 일종의 ‘그라운드 제로(핵폭탄이 터지는 지점)’”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최근 “전 세계에서 투자 열기가 가장 뜨거운 시장은 한국”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지만 암호화폐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20%가 넘는다. 한국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은 국제시세보다 무려 23%나 비싸다. 누가 봐도 투기이자 거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암호화폐 기술 자체는 혁신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비트코인의 핵심 요소인 블록체인은 수학적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신기술이다. 중앙은행 등 공급자 마음대로 유통수량을 조절할 수 없어 가치 보존 기능이 뛰어나다고도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을 일으킬 한 분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화폐로 현실화하는 데엔 여러 불안 요인이 남아 있다. 한때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던 마운트콕스의 파산처럼 해킹과 도난 위험에서 안전하지 않다. ‘고래’라고 불리는 1000명의 큰손들이 세계 비트코인의 40%를 갖고 있어 언제든 가격 폭락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 금 같은 다른 화폐 대용물이 담고 있는 내재가치가 없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맘만 먹으면 비슷한 암호화폐를 발행해 비트코인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일본 등도 비트코인을 화폐라기보다는 상품으로 간주하는 게 현실이다. 화폐의 기본 기능인 법적 안정성과 신뢰가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여러모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미래는 확실치 않다. 정부가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를 두고 골치를 썩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투기 광풍은 별개의 문제다. 실체가 없는 게임 아이템에 이렇듯 온 국민이 달려든다면 정부가 가만히 있겠는가. 배춧값이 급등했는데 민간의 영역이라고 손 놓고 있을 건가. 그러기엔 닥쳐올 후유증이 너무 크다. 비트코인의 법적 지위나 화폐·상품 인정 여부는 신중하게 검토하더라도 지금의 과열된 시장을 진정시킬 대책을 서둘러 내놓아야 한다. 아무런 규제가 없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설립을 허가제로 하고 거래 자격에도 일정 부분 제한을 가하는 등의 조치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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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 국내에서는 블록체인을 이용한 전자화폐들을 ‘가상화폐’라고 부른다. 하지만 영문명은 ‘크립토커런시’(Cryptocurrency)로 ‘암호화폐’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암호화폐가 화폐로 쓰이는 까닭은 블록체인 기술에 있다. 각국 정부가 발행하는 은행권(돈)은 국가가 보장하기에 가치를 갖는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이라는 전자 장부 기록 방식으로 가치를 보장받는다. 즉, 거래가 이루어질 때마다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계좌에 암호화폐가 이동한 기록이 남는다. 거래 기록이 ‘블록’이고, 이들이 ‘체인’처럼 서로 연결되었기에 ‘블록체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현재까지 블록체인을 직접 해킹해 복제에 성공한 경우는 없다. 또한,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대부분의 최종 공급량은 제한되어 있다. 2009년 비트코인이 처음 발행되었을 때는 10분에 50개가 발행됐고, 4년마다 발행량은 절반씩 줄어 올해에는 10분에 12.5개가 발행된다. 향후 100년간 발행될 양은 총 2100만개로 정해져 있다. 금과 은은 양이 제한되어 있기에 값어치가 있듯, 비트코인도 무궁무진하게 발행될 수 없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과연 화폐로 기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이미 1000개가 넘는 암호화폐가 시장에 나와 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최근 암호화폐 투자 과열 양상을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벌어졌던 ‘튤립 파동’에 견주곤 한다. 튤립도 희소했기에 가격이 폭등했지만, 꽃 자체의 가치는 높지 않았기에 얼마 가지 않아 가격이 폭락해 유럽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암호화폐도 그 자체의 값어치는 없다. 암호화폐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연재사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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