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학점제는 학생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고 책임지는 일이다. 교과 선택의 자율이라는 개념을 넘어, 학생이 주체적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교육철학이 담긴 제도이다.”
이중현 교육부 학교정책실장(61·사진)은 2022년부터 전면 도입되는 고교 학점제에 대해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교육부가 지난 11월27일 고교 학점제 5년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고등학교 정책에 관한 새 정부의 방향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국어고·자율형 사립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고교 무상교육 등과 함께 중등교육 주요 개혁 방안으로 꼽히는 고교 학점제는 초·중·고교의 교실 풍경을 어떻게 바꿀까. 초·중·고교 정책을 총괄하는 이중현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의 말을 들어봤다.
이 실장은 학점제가 뿌리를 내리면, 옆 자리 친구한테 자신의 공책을 보여주지 않는 ‘비인간적 교실 풍경’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중3 학생한테 앞으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태반이 ‘꿈이 없다’고 말한다. 정해진 교과목을 배우는 지금의 고등학교는 학생이 ‘열심이 공부해야 좋은 대학 간다’ 수준의 생각밖에 안 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학점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과목을 정하기 때문에 자기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일찍 하게 만든다. 틀 안에서 입시 준비만 하던 아이들이 이제 한 명의 시민으로서 배움의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대학을 졸업해 30년간 초등교사로 일한 이 실장은 지금의 학교가 입시 경쟁으로 그 어떤 장소보다 ‘비인간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같은 반 친구보다 점수가 낮으면 내신등급이 내려간다. 친구끼리 서로 공책도 안 빌려주면서 경쟁만 배운다. 완성된 형태의 학점제에선 내신이 절대평가 될 것이기에 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를 짓밟아야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학점제는 교사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이 실장은 내다봤다. 그는 “지금이야 학교에서 같은 학년을 맡는 교사가 협의해 똑같은 문제로 중간·기말고사를 치르지만, 학점제가 완성돼 교사별 평가를 하면 교사가 자기 수업을 기획·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을 평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생마다 배우는 과목도 다르고 교사마다 시험문제도 달라지니 사교육이 지금처럼 거대 시장을 형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고교 학점제를 전면 시행하겠다고 한 2022년에는 내신 절대평가와 교사별 평가도 함께 이뤄지는 것일까. 이 질문에 이 실장은 확정적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2022년에 학점제가 도입되더라도 대입제도 개선과 맞물려 갈 것이라 어떤 수준으로 첫 발을 뗄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학점제가 안착되는 단계에 이를 땐 당연히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와 교사별 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8월 발표되는 수능 개편안이 학점제와 조응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실장은 학점제가 고교 서열화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도 짚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입시경쟁에 내몰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1974년 고교 평준화를 도입했는데, 평준화 이후 고등학교의 질적 성장이 이뤄지기도 전에 특수목적고, 자사고 등이 생기는 등 또다른 서열화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고에서 외국어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게 해야지 외고를 별도로 만들 필요가 없다. 학교를 서열화하는 대신 학교별로 교육 내용을 다양화해야 한다. 학점제가 그런 구실을 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실장은 2000년대 초중반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초등학교 교장, 경기도교육청 장학관 등으로 일하다 지난 10월16일부터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을 맡고 있다.
세종/글·사진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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