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수십억원을 상납받은 혐의로 체포된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왼쪽)과 안봉근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각각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희정(상명대부속여고 교사, 숭실대 철학과 겸임교수)
[한겨레 사설] 꼬리 잡힌 ‘국고 농단’, 박근혜 비자금 이번엔 밝혀야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혐의로 체포된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검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로 돈을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금고에 따로 관리하면서 박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사용했다는 주장도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국정원 예산을 사실상 ‘박근혜 비자금’으로 썼다는 뜻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혐의에 대해 최근까지도 “1원도 받은 게 없다”며 결백을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국가예산을 몰래 감춰놓고 쌈짓돈처럼 맘대로 꺼내 쓰며 ‘국고 농단’까지 저질렀던 셈이다.
청와대 예산에 엄연히 특수활동비가 배정되는데도 국정원 돈을 따로 챙겨 썼다니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 놓고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거나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 운운하며 옥중투쟁에 나섰으니, 그 뻔뻔함에 말문이 막힌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국정원 상납금’은 취임 초부터 이듬해 5월 남재준 국정원장 때까지 매달 5천만원이었으나 이병기 원장 때부터 1억원으로 올렸다고 한다. 조윤선·현기환 등 청와대 정무수석들은 별도로 매달 500만원씩을 국정원에서 받아 썼다. 국정원은 5만원짜리 현찰을 007가방에 가득 담아 이재만·안봉근 등 ‘문고리들’에게 건넸고,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터져 안봉근 당시 국정홍보비서관이 “보내지 말라”고 해서 중단했다고 한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통치자금’ 명목으로 정보기관 특수활동비를 청와대가 갖다 쓴 적은 있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 때 청와대의 안기부 자금 유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없어진 걸로 국민들은 믿어왔다. 이후 국정원 특수활동비 중 일부가 정권 실세에게 개별적으로 건네진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대통령 비자금’으로 정기 상납한 건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다.
사용처 역시 ‘뇌관’이 될 수 있다. 지난해 4·13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경선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국정원 돈으로 지급했다지만 최소 4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비자금을 어디에 썼는지 그 전모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정치자금이나 선거에 사용됐을 가능성도 있어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검찰은 그동안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경제 공동체’로 지목했으나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그 실체와 ‘박근혜 비자금’의 전모를 밝혀내기 바란다.
[중앙일보 사설] 국정원 특활비 파문 … 잘못된 관행 바로잡는 계기 삼아야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이 지출 증빙이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특활비)를 청와대에 정기적으로 제공한 사실이 검찰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전달자는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냈던 이헌수씨, 받은 쪽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었던 안봉근·이재만씨라고 한다. 이들에게 지급된 돈의 규모는 매달 1억원씩 4년여간 총 40억원에 이른다. 돈의 출처는 남재준·이병기·이병호씨 등 차례로 그 조직의 수장을 지냈던 국정원장 특활비였다. 특히 청와대 살림을 책임졌던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이 ‘박 대통령의 지시로 국정원 돈을 받았다’는 폭탄 진술을 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를 ‘국정원에 의한 청와대 상납사건’이라거나 ‘직무관련자끼리 금품을 수수한 뇌물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예를 들어 ‘국정원 댓글 공작’ 같은 특정한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중간에 단서가 튀어나올 때마다 새로운 사건으로 낙인찍어 다른 범죄 혐의를 씌우는 식의 별건 수사는 특정인을 겨냥한 보복 수사 논란을 부를 수 있다. 검찰은 객관적 증거와 법리적 명징성을 제시해 관련자들의 혐의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국정원 특활비의 복잡 미묘한 성격 때문이다. 국정원법에 국정원 예산 전체를 개별 증빙을 요구하지 않는 총액주의를 적용하고, 비밀활동비를 정부 각 부서 예산으로 분산 배치할 수 있게 한 것(12조 1, 2항)은 좌파·우파 정권 가릴 것 없이 국가적으로 그럴 만한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청와대 인사나 청와대가 지정한 인사가 제3국으로 나가 북측 인사를 만나면서 적지 않은 돈을 집어주는 일은 정보사회에선 상식처럼 되어 있다. 이럴 때 청와대가 쓰는 돈은 모두 국정원의 특수활동비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종류의 국익을 위해 공개할 수 없지만 불가피하게 지출해야 하는 정보·공작비는 어느 나라나 국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투명한 민주 정부를 자임하는 문재인 정권이 2018년 정부 예산안에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493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로 잡아 국회 동의를 받겠다고 올린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돈이 청와대에 흘러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은 곤란하다. 그럴 경우 과거 정권 전체에서 벌어졌던 특수활동비 사건을 모두 추적해야 한다는 반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다만 특수활동비를 둘러싸고 국정원의 부정부패나 개인 비리, 청와대의 권력 남용 가능성은 철저하게 견제·감시돼야 한다. 또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국회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다각적인 제도적 장치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정원 적폐청산 TF팀도 박근혜·이명박 정권의 정치사건에만 몰두하지 말고 특수활동비 관행의 문제점을 조사해 대안을 내놓는 쪽으로 방향을 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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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 지난 2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서훈 국정원장은 청와대에 상납된 자금 출처는 특수공작사업비라고 밝혔다. 특수공작사업비는 국민 안전, 대북 사업, 해외공작 등의 업무에 배정된 돈으로 특수활동비에 포함된다. 국정원은 매년 약 5000억원의 특활비를 배정받는다. 국가정보원법에 의하면 국정원장이 정보와 보안 업무를 총괄한다. 따라서 정보보안 관련 예산을 국정원에 배정하면 국정원이 군, 검찰, 경찰, 관련 부처들에 관련 예산을 할당하는 식이다. 정보와 보안 관련 업무는 기밀성과 밀행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는 현금으로 지급되며 영수증을 증빙할 필요도 없어 사용처를 모른다. 게다가 기밀이라는 성격 때문에 결산 시 집행 내역도 비공개하는 특례를 받는다.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큰돈이 ‘깜깜이’ 예산으로 지급되니 눈먼 돈처럼 여겨 부정행위의 소지가 컸다. 향후 국회에서는 특활비의 세목을 명시해 편성하고, 각 부처의 관련 예산을 국정원에서 분리하며, 사후 결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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