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울시 성북구 정릉시장에 있는 자오나학교의 자립실습 매장 ‘엘브로떼’에서 학생들이 개업식 준비를 하고 있다. 자오나학교 제공
직원 두 명이 오픈 준비로 분주하다. 재료를 확인해 다듬고 포장 그릇을 정리한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한편에 자리잡은 ‘돈카페’의 모습이다. 이 가게는 작년에 문을 연 일본식 요리식당이다. 돈가스, 카레, 다코야키 등 일본 음식을 파는 거 외에 독특한 점이 있다. 직원이 한국과 일본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청년이라는 것.
돈카페를 운영하는 ‘케이투(K2)인터내셔널코리아’는 히키코모리, 등교 거부 학생, 니트족의 자립을 지원하는 일본의 사회적 기업이다. 29년 전부터 이들을 대상으로 공동생활 공간과 직업 훈련장을 운영하며 2012년부터 한국에서도 활동 중이다.
학교밖에서 위기상황 놓인 아이들
건강하고 안정된 성장 돕는 기관
‘에듀+비즈’ 형태로 카페, 밥집 운영
직업훈련뿐 아니라 협업, 대인관계
몸에 익혀 실질적 자립 가능케 해
지난달 20일 서울시민청 지하 2층 바스락홀에서 열린 자오나학교 토크콘서트 ‘연결고리’에서 청소년 자립실습 매장 관계자들이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자오나학교 제공
코보리 모토무 한국 대표는 “시장 안에 일식가게를 열었는데 처음에는 상인들에게 인사를 안 한다고 혼났다. 서로 관심을 갖고 혼낼 수 있는 관계, 시장 자체가 공동체라고 느꼈다. 직원들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달라졌다. 한국에는 오지랖 넓은 아줌마도 많은데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웃음)”라고 했다.
현재 돈카페에는 한국 청년 1명, 일본 청년 3명이 일하고 있다. 10대 청소년들도 찾아온다. 매니저 오오쿠사 미노루는 “엉망진창으로 무기력하게 지내다 이곳에서 생활하며 안정적으로 바뀌어 대안학교에 간 학생, 스스로 독립하겠다며 아르바이트를 구해 떠난 친구도 있다”고 했다.
사토 쇼(27)도 등교 거부 학생이었다. 고등학생 때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재미가 없어 학교에 안 갔다. 엄마의 권유로 케이투인터내셔널에 들어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거쳐 지금 한국에서 실습 중이다. “처음에는 낯설고 해당 국가 언어가 서툴러 힘들었지만, 살다 보니 해외 생활이 잘 맞았다. 사람들이 감정표현을 더 자유롭게 하더라.” 그는 매장에서 회계 업무도 배우고 있다. 일본과 밀접한 중국을 잘 알고 싶어 국민대 중국학과에 입학했고 나중에 무역이나 관광업 관련한 일을 하는 게 목표다.
여러 사정으로 학교 밖에 머물거나 위기 상황에 놓인 아이들. 공부만 하기도 빠듯한데 이들 일부는 육아나 자립 준비까지 해야 해 또래보다 버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 일을 하려고 해도 고교 졸업장이 없거나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처럼 위기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의 건강하고 안정된 성장을 돕는 기관들이 있다. ‘에듀+비즈’ 형태의 자립실습 매장이다.
지난달 서울시민청에서 이들 기관이 모여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자오나학교에서 연 토크콘서트 ‘연결고리’. 이날 소개한 ‘엘브로떼’는 학생들의 진로와 자립을 위해 마련한 작업장형 카페로 지난 5월 문을 열었다. 바리스타와 꽃차, 플로리스트 과정을 배운 학생들이 음료와 직접 만든 플라워 인테리어 작품, 꽃잼 등을 판매한다.
카페를 운영하는 자오나학교는 청소녀 양육 미혼모와 학교밖 청소녀를 위해 교육과 양육 지원을 해주는 대안학교다. 강명옥 교장 수녀는 “아무리 많은 자격증을 손에 쥐여 줘도 그 자격증을 가지고 버텨내면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 자립실습 매장은 자격 공부를 시키고 실제 그 자격증을 써먹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생활습관이나 태도도 말로 ‘이렇게 해라, 하지 마라’가 아니라 사람들과 지지고 볶고 살면서 익히게 한다. 여러 사람과 지내며 ‘이 사람과 함께 있으니 좋고 이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것이다.”
최근 노경란 성신여대 교수(교육학과)와 함께 공동 연구해 ‘교육과 양립, 자립’을 하나로 연결하는 통합교육 모델을 개발했다. 김정수 교감은 “기존 교육은 청소녀 미혼모는 위탁형으로, 학교밖 청소녀는 검정고시 위주로 따로 떨어져 있었다. 학교로서 틀을 갖추고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학교밖 위기 청소녀의 특징을 반영한 교육과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통합교육은 ‘생활 회복과 기본 학습, 진로와 자립’ 4단계로 이뤄진다. 교양군, 교과군, 진로자립군, 양육군으로 나눠 아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육과정을 짰다.
처음에는 밤낮이 바뀌고 뒤죽박죽인 생활로 건강상태도 엉망이었던 아이들이 정해진 시간을 버티며 공부나 일을 하는 등 규칙적인 생활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이후 뒤처진 학업을 보충하면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거나 자신에게 맞는 진로를 탐색한다. 어느 정도 관심 분야를 찾은 이후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직업훈련과 독거주거 실습, 육아, 경제 등 실생활에 중요한 내용을 배운다. 자오나학교를 다닐 때는 교사들이 일일이 가르쳐주고, 봉사자들이 아이를 돌봐주는 등 도움을 주지만 졸업 후에는 오롯이 혼자 일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성심수녀회에서도 단기와 중기 쉼터를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경제적 자립’을 원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들에게 ‘홀로서기’는 쉽지 않다. 이상은 ‘자유’지만 현실은 ‘퇴소=자립=돈’이었다. 이들을 위해 현재 직업훈련 매장으로 카페 ‘커피동물원’과 ‘로스트앤 파운드’를 운영 중이다.
단순히 카페에서 일한다고 그 분야로 진로를 정하는 게 아니라 실무 외에 협업과 감정 조절, 대인관계 등 전반적인 직업훈련을 한다. 가정이나 학교, 사회와 갈등을 겪어 ‘사람이 싫은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김정미 수녀는 “아이들에게 커피를 팔지만 문화를 나누는 장소고 서비스업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얼굴에 표정이 없고 응대하는 걸 힘들어했다. 수틀리면 그만두고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각자 자립하기 위해 단계별로 성취할 목표를 세워 차근차근 내딛는 중이다. 태아가 엄마 뱃속에서 일정 기간 모든 걸 갖추고 나오듯 이들도 사회에 나가기 위한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 이곳은 학업이나 직업훈련 등 필요한 것을 배우며 마지막 단계를 거치는 과정이다.”
길거리에서 방황하며 생활이 엉망이 된 아이들에게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도전이다. ‘세상을 품은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을 돕는 비영리단체다. 올해 3월 경기도 부천 중동에 ‘허기’라는 분식카페를 열었다. 약 8평형의 작은 공간에서 밥, 면, 찌개 등 50여 가지 음식을 판다.
현재 이 단체 그룹홈에서 자립을 준비 중인 4명의 청소년이 주방보조와 서빙을 맡고 있다. 명성진 이사장은 “아이들은 지금까지의 삶의 습관이 몸에 배어 있고 ‘넌 안 변해’라는 사람들 시선으로 자신을 스스로 낙인찍는다. 이런 아이들 옆에서 함께하고 삶을 지킬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실제 매니저를 맡길 정도로 잘하던 아이가 ‘심리적 다운’ 곡선이 나타나면 폭력적으로 바뀌고 잠수를 탄다. 처음엔 아이들이 ‘의지나 생각이 없다’고 여기기 쉽지만 내적 갈등이 외적으로 드러나면서 갈등을 빚는 것이다. 사람과 공동체 속에서 관계 맺기가 갈등 해결의 시작점이 된다.”
이들 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은 각각의 학교나 매장에 찾아가면 된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